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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영화 <보통의 가족>

 

원작은 이미 백만이 넘었단다. 

시작부분이 확실히 달랐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고 전신마비가 된 딸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영화는 재벌 자식이 나오니 말이다. 경찰이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이 우리네 감성에서는 이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설경구의 연기, 김희애의 히스테릭한 연기, 자원봉사와 착한 의사로 살아온 것이 자식의 잘못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얼마나 허위 의식 속에서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엄청난 해외봉사, 착한 의사로 성실함의 끝판왕이 말한다.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해왔는가, 노숙자는 이번 겨울에 얼어죽을 수도 있다고. 우리가 그 동안 해온 일로 상쇄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보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고, 인간의 위선이 어디까지 허용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데 형이 아니라 아들을 선택하는 것이 과연 그 아들을 생각하고 살리는 일이었을까. 

죄를 짓고 그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는 것으로 처리가 된 인생은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을 보면 잘 살아간다. 호가호위하면서 양심에 꺼리낌이 없이 자신을 변호하고 눙치면서 아무렇지도 않아 한다. 그의 무의식 속에는 무엇이 넘실거릴까.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또다시 되풀이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도 남는다. 문학에서는 수많은 친일파들이 그렇게 살았고, 박정희 같은 경우 남로당을 배신하고 친일을 자처하며 유신까지 18년 장기 집권하면서 수많은 의문사와 공포와 독재로 자신을 합리화했던 위인들이다. 지금의 용산 십상시들처럼.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감춰주고 싶겠지만 우리 아이를 위해서 자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나와 자식의 삶이 중요하듯 상대방의 목숨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 무가치한 생명은 없다. 아주 울림이 큰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