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길에 한 장 찍다.
허이허이 휘리릭 보고 나와서 막내가 좋아하는 엽서 몇 장을 골랐다. 이미 보화각에서 소장 작품목록집을 몇 권 산 뒤라서 크게 살 것이 없었다. '여세동보'라는 말 뜻이 좋아서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지하라고 하는 곳이 밖과 연결된 통창이었다. 물 속에 비친 풍광이 더 멋졌다. 안도 다다오식인 물경치, 좀 낙차를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너무 밋밋했다.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가장 사랑하는 도자기중 하나. 이름이 바뀌었다가 다시 되찾은 이름이다. 대구간송미술관에는 고급 설치 디자이너가 없는 모양이다. 도자기를 사방에서 볼 수 없게 벽을 끼고 쭉 늘어선 모양새였다. 아이고야 싶었다. 이게 뭐람. 동대문 플라자에서 도자기 전만 따로 해서 그랬을까. 아주 인상 깊게 봤는데, 조명도 그저 그렇고 위치 선정과 배치는 초등학교 작품 전시 수준에서 넘어서지 못했다. 이게 뭐람.
추사가 돌아가시는 해에 남긴 글귀란다. 평론가들은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는데 잘 모르겠다. 먹의 양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힘이 남으면 남는 대로 글을 쓴 듯하다. 수많은 글귀 속에서 결국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일라는 것을, 임금의 부름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의 남루한 마음 같아서 더 씁쓸했다.
우리 집에도 난이 꽃을 피우고 있다. 향이 희미하나 아주 오래간다. 세상의 모든 더러운 냄새를 이긴 향내이고 싶은 추사의 마음이었을까.
가을 금강산이다. 채색이 되어있는데 어두운 암실에서 전구 빛에 의해서만 볼 수 있어서 선명함이 떨어지고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인도'였다. 가뜩이나 눈이 좋지 않은데 어두침침하니까 색이 죽어서 작품을 죽이고 있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었다.
청풍계. 정선이 살던 경복궁 서편 골짜기 모습이라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호기롭고 호탕한 그림이라 색달랐다.
과로도기, 처음 본 인물도 시리즈로 전시된 곳에서 '마상청앵도' 곁에 전시되어 있었다. 신선 장과로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 강세황이 감탄했다고 한다. 이 그림도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전시 불빛이 작품과 어울리지 않아서 아쉬웠다.
아락서실(亞樂書室), 이현서옥, 옥정연재 중에서 남편은 아락서실이 가장 마음에 든단다. 나는 이현서옥을 골랐더니 "누구랑 함께 하는 집"이냐고 묻는다. 여럿이 함께 하고 싶은 내 마음이 들켰다.
예매는 진작에 해놓았는데 새벽에 비가 오는 바람에 취소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화창해서 즉석으로 가보자고 해서 떠난 대구 나들이였다. 19일에 가려고 했는데 다음 주부터 추워진다고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섰는데 내려가는 동안 날씨가 흐렸다. 우리나라가 좁은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싶었다.
1시에 도착해서 표를 사려고 했더니 성심당 빵집 줄은 양호한 편이다. 겨우 표를 구해서 미인도와 해례본 줄은 또다시 길고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들어갔더니 캄캄한데 은은한 빛도 아니어서 미인도 색감을 살리지 못했다. 왜 이렇게 전시하지 싶을 지경이었다. 보이지 않으니 뭐라고도 할 수 없다. 매장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야, 미인도는 여기 엽서에 나온 것이 더 생생하다야" 할 지경이었다. 아니 왜 이래 싶어서 이걸 어디에다 이야기해야 하나 싶었다. 사람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동대문플라자에서 본 '미인도'의 은은한 색과 멋을 전혀 찾을 수도 맛볼 수도 없었다. 너무 했다.
더 웃긴 것은 신윤복 '혜원전신첩'과 김득신 '긍재전신첩'은 줄이 너무 너무 길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동선 조정도 안되어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얼기설기 엮였는데 사람들은 바글거리고 발꿈치를 들고 보아도 안 보였다. 여기서 휘리릭이다. '혜원전신첩'도 동대문플라자에서 전시했을 때 봤다. 알맞은 높이와 은은한 조명으로 한껏 품위를 높였는데 이곳은 시장통과 같았다.
가장 최악은 '촉잔도권'이다. 심사정이 그린 그림으로 이것을 보려고 국립박물관 특별 전시실을 두 번이나 가서 살펴보고 쳐댜본 그림이다. 그런데 세상에 그냥 늘어서 펼쳐놓긴 했는데 조명이 아주 생경했다. 너무 강해서 색을 다 죽였고, 마지막 장면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도 그냥 허연 하게 보이게 해 놓았다. 너무 속상했다. 어떻게 저렇게 해놓지. 이것 보려고 다시 온 것인데. 실망 대실망이다.
건물은 아주 잘 지어졌다. 창과 조망이 어울려서 더 멋졌다. 다만 전시큐레이터 자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그 좋은 작품들을, 국보와 보물들을 무슨 초등학생 작품 전시처럼 늘어놓을 줄이야. 관리도 안되고 전시도 격이 아주 많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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