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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EIDF -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 22-28.08.2022

19:40 자화상Self PortraitEBS1TV78min15세 이상 시청

리네 이야기다. 

거식증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사진 예술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신부전으로 30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예술성을 이해해준 정신과 의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그 의사선생님이 보여준 따뜻함이 6년 동안 자신을 행복하게 자신감있게 살아가게 했다는 회상은 울림을 준다. 구겨진 마음이 옷으로 핏줄로 다 드러낸다. 날씬해야 한다는 강박감, 누굴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꽤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어떤 마음이 저런 선택을 하도록 했을까. 아프다는 것이 특권처럼 여겨졌을까? 보호받고 싶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었을까.78분 속에 한 인생이 담겼다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생각되었다.  

이타미 준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로, 한국 이름은 유동룡(庾東龍)이다.

하지만 한자 성인 '유(庾)'가 일본에 없는 한자라 건축가로서의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 되자 한국을 올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의 이름과 절친한 음악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야 준'에서 이름을 따와 '이타미 준'이라는 예명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제주 방주교회
제주 방주교회

물과 바람과 자연을 담은 작품이다. 딸 유이화씨 말에 의하면 건축 진행 중에 여러번 고치고 고쳐 애를 많이 먹은 작품인데 다 지어놓고 보니 아버지 생각이 탁월하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인터뷰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지은 건축이 온양 아산 '민속박물관'이라는 점이 또 인연으로 다가온다. 
나의 외할머니가 우리 엄마 시집올 때 손수 지어주신 비단 두루마기, 한복 한 벌을 댓님까지 기증한 곳이기도 하다. 싱거 미싱도 기증을 해주었으면 했는데 이것은 가보로 지니려고 기증하지 않았다. 
기증 받을 때 가져온 왕골로 짠 함을 처음 보았다. 거기에 한 작품씩 종이 깔고 담던 모습이 떠올랐다.
멀리 보이는 산 봉우리를 지붕 위에 구현할 생각을 했다니. 저 건물 자체가 제주도인 것이다. 사면이 물로 쌓여 있는 섬. 근사하다. 
바람이 드나드는 것 자체, 햇빛이 나무 틈사이로 비집고 들어와서 만들어내는 광경, 그것만으로 훌륭한 바람 박물관이 되었다. 
김홍주 회장과 만나 담소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물과 바람 박물관이 제안되고 결정되었단다. 아주 고즈녁하고 제주 바람을 온몸으로 건축 공간에 불러 들인 아름답고 숭고함까지 느끼게 한다. 
제주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되었다. 제주에 있는 이타미 준 건축물을 모두 보고 싶다. 

다큐 중에 나오는 '주주' 선술집은 40년 전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재개발 되면 사라질 건축물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심지어 의자까지 덧대어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유명하다는 포도호텔이다. 숙박을 해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는데 예약하기 어려웠다. 

파리에  기증한 도자기, 병풍, 액자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고 싶은 이타미 준의 마음이란다. 

후배 건축가들에게 건물주와 싸워서라도 자기 작품을 고수하여야 한다고 일렀단다. 딸의 말처럼 행운아다. 김홍주라는 건물주가 지원하고 맘껏 자신의 의지를 펼칠 수 있는 건축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때 후지산과 바다를 보고 자란 것이 자기 자산이 되었단다.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건축사무소를 냈어도 일이 들어오지 않았단다. 일본에서 건축상도 2000년 이후에나 받을 수 있었다. 
21:05/
 
이타미 준의 바다
The Sea of Itami Jun
EBS1TV
112min
 
 
23:05 우리의 목소리Be My VoiceEBS1TV83min12세 이상 시청

이란의 히잡은 여권 침해의 상징이 되었다. 

이슬람에 의해 여성은 히잡을 써야 하고 자전거도 탈 수 없고, 남자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금지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을 거부하고 외국에서 모바일 방송을 통해 히잡의 부당성을, 여권 침해를 하는 이란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오빠가 잡혀가서 8년형을 받고, 이란 정부를 비판한 인권운동가를 이라크로 오게 해서 잡아 고문한 뒤 방송에서 자기가 한 일을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하고 결국 사형을 시키는 이란. 

가족을 볼모로 위협을 함에도 굴하지 않고 방송하는 이란에서 의회 취재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 이혼한 등등 여러가지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 저 작은 몸짓으로 늘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인권 운동가를 보면서 뜨거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