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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수원화성 행궁, 수원 갈비 가보정, 행궁 다과 수제 빙수와 다과 한상

갈비와 냉면과 된장찌개를 시켜서 먹은 뒤 배도 꺼지게 할 겸 수원화성 행궁을 돌아보자고 했다. 해가 나지 않아서 그리 덥지 않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땀이 얼마나 나던지.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된 장소는 모두 재정비를 해서 세련되게 정비된 곳이 많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의 휑한 모습이 아니라 단정하게 꾸미고 보완하고 보존하는데 집중한 티가 났다. 옥에 티는 야간 개방을 한다고 해서 그런지 여기저기 가자꽃들, 모형들이 연못에도 담장에도 꾸민다고 해놓았는데 너무 어색하고 촌스럽고 탁해서 이게 누구 설치 미술도 아니고 뭐람 싶었다. 식구 모두 에구구 저게 뭐람하면서 질겁했다. 
돌아본 중, 정조 수원행차도에서 자주 보던 혜경궁 홍 씨 환갑을 해줬던 공간이 가장 반가웠고, 새롭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남낙헌' 돌계단이 가장 마음을 끌었다. 그 옆에 있는 반은 죽어가는 600살이 넘은 느티나무도 애틋했다. 회갑연 상차림도 구경하고, 임금 수라상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넓어서 찬찬히 보자면 두어 시간은 족히 걸릴 듯했다. 야간 무료 개방을 시작한 날이라서 그런지 주말이라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주차장이 좁아서 기다리는 줄이 큰길까지 이어져서 차가 빠지면 들어가는 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주차하려고 한참을 기다렸다. 

집사청(執事廳) 앞, 600여년이 지난 노거수 느티나무
수원 화성행궁에서 문무과 별시(과거시험)가 열린 곳은 정문인 신풍루 안쪽의 **낙남헌(洛南軒)**. 1795년 을묘원행 당시 정조가 이곳에서 문무과 별시를 시행하고 합격자를 발표한 장면이 《낙남헌방방도》에 남아 있다.

수원화성 행궁은 처음 목적이 아니었다. 
외할머니 살아계실 때 수원에서 먹었던 왕갈비 추억이 우리 가족들에게는 있다. 상당히 큰 갈빗대를 큰애가 손에 잡고 자기 얼굴보다 긴 갈비를 뜯었던 때는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소나무가 있고 정원이 있었던 갈빗집이었다. 
재작년부터 막내도 수원 왕갈비 먹으러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워낙 태중에 있을 때부터 고기를 내내 먹었던 아이라 그런지 우리 집 식구 중에 모닝 고기가 가능한 유일한 아이다. 해서 벼르고 벼르던 수원 왕갈비를 먹으러 광복절을 기념해서 다녀왔다. 
'가보정'이라는 곳이 수원 갈비 맛집으로 가장 많이 이야기가 되기에 그곳으로 정해서 식구들이 모였다. 한우를 시켰는데 어마무시한 가격이었다. 맛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수원 왕갈비는 추억의 맛이 되고 말았다. 식구 모두 그 맛이 아니란다. 별 맛도 없는데 갈비 1인분에 13만 원이라니. 생갈비라고 더 비쌌고, 양념갈비는 좀 쌌지만 오히려 더 씹기 불편했다. 더 야들거려야 정상인데 말이다. 아무튼 3군데 식당과 주차장이 있었고, 양념갈비 택배도 전국 가능하다는데 막내가 일 년 매출액이 500억이란다. 성심당은 2600억이라면서 아직 멀었네 그래서 웃었다. 옛맛을 기대하고 갔었는데 좀 어이없었다. 상차림은 얌전했다. 그런데 차별이 심했다. 5인 이상이면 좀 더 빨리 좌석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번호표를 뽑고 20여분 넘게 기다렸다. 우리는 그래도 12시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자리에 앉아서 먹어서 그런지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정리하였다. 

행궁을 걷고 나니 덥고 습하고 쉬고 싶고, 그 사이 배도 꺼지고 해서 카페를 찾다가 '행궁 다과'점을 찾았다. 팥빙수만 먹자 하다가 욕심이 나서 수제 다과상을 하나 시켰다. 내가 혼자 다 먹었다. 당이 폭발한 탓인지 내려올 때는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팥빙수는 흑임자와 옛날 팥빙수를 시켰는데 둘 다 맛있었고, 양이 어마무시해서 하나만 시킬 것을 후회하고 있는데 다과상을 시키니 남편이 흉을 보았다.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또 욕심만 낸다고, 그 소리 때문에 안 남기려고 무리를 했다. 예쁘기도 하지만 정말 맛있었다. 우리 옛 다과상을 받은 기분이어서 더 좋았다. 

우리 식구들이 앉았던 자리.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