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

집에 오다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다. 
건조한 지대에 있다 보니 손톱에 거스름이 생길 정도였다. 
난주에서 칭다오, 칭다오에서 인천공함까지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까지 넣으면 4시간 반이 걸렸고, 난주 공항에서 입국 수속도 복잡하고 느려 터졌다. 4시 30분 공항버스를 타고 내려오는데 3시간 걸렸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새벽 4시에 깨어 짐을 다시 정리하고 호텔에서 6시에 출발했다. 난주 공항 바로 근처여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기사 아저씨가 열흘 동안 그 많고 무거운 짐들을 옮겨 주셔서 너무 감사해서 짐을 실을 때나 내릴 때 감사하다는 인사를 꼬박꼬박 했다. 정말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막내와 남편이 마중을 나와서 먹고 싶었던 콩나물국밥과 녹두전을 저녁으로 먹었다. 살 것 같았다. 날마다 기름진 음식을 30번 먹으려니 나흘째부터 속에서 받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이 차를 달고 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짐도 풀지 않고 녹다운되었다가 오늘에서야 빨래만 정리하고 나머지는 널브러져 있다. 내일까지 아마 정리가 될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싱크대 수전이 터져서 바뀌었고, 욕실 청소도 말끔하게 되어 있어 더욱 고마웠다. 
오늘 아침은 된장찌개, 고등어조림, 오이무침, 열무 물김치를 내어 놓고 먹었다. 남편이 아주 맛있단다. 이제야 살 것 같다고 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교조 후배들이 핸드크림을 선물로 보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오이가 많아서 오이 피클을 담으려고 택배로 물건을 신청했다. 올해는 오이피클을 넉넉하게 해서 나눔도 하고 맛나게 먹어야겠다. 
비싼 건포도와 먹태 새끼를 샀을 뿐 살 시간도 마음에 드는 물건도 없었다. 
참고로 중국 변소는 여전히 호텔을 제외하고는 박물관조차 쪼그려 앉아야 하고 악취가 심각했다. 그것이 휴게소일 때는 절정이었고 오초령 변소는 최악이었다. 그에 비해 화장지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질이 좋아서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사막에 세워진 수천수만의 태양열판과 풍력 발전기를 보면서 허투루 놀고 있는 땅이 없구나 싶어 에너지 전환을 우리 보다 더 먼저 더 많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건조하고 뜨거운 곳에 있다가 오니 서울의 후덥지근은 끔찍했다. 밤새 내린 비로 밖은 한증막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