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배추 솎아 샐러드용, 겉절이용, 국거리 등을 정리하느라 찬물에 옷이 젖었었다. 그 여파였을까 저녁부터 추위를 느꼈다. 비가 그친 뒤로 기온이 뚝 떨어져 선풍기도 틀지 않게 되었다. 단 하루 사이에. 콧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두통이 왔다. 약을 미리 먹었는데 그도 시원치 않았다. 계속 뜨거운 음식을 먹고 기운을 북돋우려고 밤도 쪄서 먹고 했는데 차도가 없어서 괜히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날벼락이다.
해서 저녁에는 뜨거운 차를 어제부터 계속 마셨다. 인도에서 사왔다며 건네주고 간 민석를 떠올리게 하는 차. 맛있고 좋았다. 그래도 안되겠어서 환을 한 알 먹었다. 추석 명절 지내며 다섯번째 먹는거였다.
일찍 누웠다.
안창모 강좌 2강을 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알게 되고 겸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진다. 일본은 국철이 아니라 사철을 활용하여 마을을 연결하는 것은 사철들이 한다. 더구나 회사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사철을 이용하거나 신작로를 놓아 연결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데 무슨 착취와 공출이 아니라 수출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친일파들이 있다.
조선시대 칙령으로 개항했던 인천, 부산, 원산과 일제식민지 시대 개항했던 곳은 달랐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부산이 동래를 퇴락하게 하고 새로운 도시로 부상을 하였고, 의주 대신 신의주에 철도를 놓아 중국 진출을 위해 뻘밭에 새로운 도시를 지었다는 것도 놀랍다.
그 중 일본은 1930년대 들어서야 인천을 대동아전쟁 일환의 군수 물자를 나르기 위해 비로소 개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개항도시로 진해, 통영, 군산, 목포 등이 꼽히는 것을 보고 이것만으로도 착취한 농사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개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의 행정명이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경주는 나중에서야 관광도시로 신경을 썼지만 상주는 그냥 낙후되었다. 그 까닭은 조선시대는 강을 끼고 마을이 커진 반면 일제식민지는 항구를 끼고 개발을 했기 때문에 내륙에 있었던 도시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상주, 공주, 나주, 전주, 충주, 청주, 강릉, 원주 등이 그러하다고 한다. 100명 정도 들어와서 듣고 있는데 너무 아깝다. 무료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가 보다.
9시 정도에 잠이 들어 깨어보니 12시, 또다시 뒤척이다 잠이 들고 나서 깨어보니 5시. 긴팔을 위에 더 입고 앉아 금요일 공부할 프란츠 교수의 <<황금 당나귀>>를 또 다시 읽어보고 , 지난 달에 작고한 안학수 시인의 <<낙지네 개흙 잔치>>를 읽었다. 안학수 시인의 시선과 마음이 느껴져 숙연해졌다. 소리 표현의 대가다웠다.
틈나는대로 '다시 발제' 한 내용과 아이들 소감 보충해서 올려주는 부분을 재편집하고 있다. 모두들 애를 쓴다. 이렇게 해서 '평화그림책 100권'이 마무리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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