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갤러리가 문을 닫았습니다.
박훈일 관장이 소식을 전한 건 6월 하순이었으나 일정 조정하고 제주로 내려간 건 지난 주였습니다. 형편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박훈일 관장도 2년 넘게 월급을 못 받고 있었더군요. 그런데도 가시리 나목도식당에 가면 꼭 먼저 계산을 했었네요.
잊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영갑 형님이 떠난 지도 한참 됐고, 사진 몇 장 덜렁 걸어 놓은 옛 폐교 건물보다 눈 돌아가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에 더 끌리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아쉬운 건, 내년이 영갑 형님 20주기입니다. 20주기까지는 지켜 드리고 싶었는데... 영갑 형님 5주기, 10주기 취재를 위해 작두 권혁재 형님과 함께 제주도를 내려갔었지요. 그때 농담 삼아 우리가 20주기 기사도 쓸 수 있을까 했었는데, 용케 짤리지 않고 잘 버텼는데... 갤러리가 버티지 못했네요. 속상해서 요 며칠 많이 우울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가 완전히 문을 닫은 건 아닙니다. 일단 4개월 휴관을 결정했습니다. 7월부터 10월까지 밀린 현안들을 해결하고 새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주 갤러리 이사회 이유근 이사장님도 찾아뵀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영갑 형님이 남긴 사진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기로. 2005년 영갑 형님이 죽고 나서 갤러리를 물려받은 박훈일 관장은 영갑 형님 사진을 단 한 장도 팔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작품은 손 대지 않았습니다. 20만 롤이 넘는다는 영갑 형님 사진은 하여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박훈일 관장이 그동안 디지털화 작업을 마친 사진이 4만2000컷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사진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장기 대여도 가능하고, 믿을 만한 분에게는 위탁 판매도 할 계획입니다. 뜻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영갑 형님 작품으로 미디어아트도 만들어볼까 합니다. 갤러리가 다시 문을 열면 새 작품도 걸어야겠지요. 형님 작품을 소재로 다양한 기념품 같은 걸 만들어도 좋겠습니다. 사진 관련한 작업은 작두 형님과 박훈일 관장이 맡고, 저는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삼달리로 내려가고 싶은데... 뭐 얼마 남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포스팅한 사진은 작두 권혁재 형님이 2003년 11월 촬영한 영갑 형님입니다. 영갑 형님은 이 사진을 찍고서 1년 6개월 뒤 볕 좋은 봄날 아침 돌아갔습니다. 영갑 형님의 마지막 얼굴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앞에 걸고 2003년 week& 3개 면을 털어 김영갑을 알리는 기사를 썼었지요(그때는 12p 섹션을 제작할 때입니다). 제가 20년 전부터 오름을 오르내렸던 것도 다 영갑 형님 덕분입니다.
20년도 넘은 추억이 이대로 사라지는 건, 아무리 무력한 삶이라도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갑 형님이 죽기 전에 “도움을 받은 분”이라며 저에게 소개시켜준 사람은 딱 2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죽고 유명해지니까 김영갑과 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더군요. 지금은 물론 아무도 없습니다. 저부터 혹독하게 반성합니다. 김영갑을 기억하는, 그리고 오름을 사랑하는 분들의 관심을 부탁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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