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엄마가 왜 그랬는지
2. 살아 있는 게 미안했어
3. 안전하다고 믿는 세계가 무너져도
4. 길고 긴 터널의 끝
5. 함께라면 어디라도
6. 그 괴로움에 가닿을 수 없어서
7. 흉터 또한 나의 한 부분
8. 사라지지 말아요
9. 동생들을 위한 증언
10. 뿌리가 큰 상처를 입지 않도록
11. 가면을 벗을 용기
12. 나를 지킬 힘
13. 아무도 죽지 않을 거야
14. 서로를 돌보는 일
15. 우리는 다 빛나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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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엄마와 관련된 일이고 가족과 관련된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책을 다 읽고 다시 목차를 보는 버릇이 있어서 되새김하다보니 이렇게 이해되고 연결이 되었다.
소재는 가족 위계간 성폭력이고, 결의 언니 하늘은 아빠에 의한 성폭력을, 결이 엄마는 아빠의 끔찍한 가정폭력과 무시를 사회적 지위라는 것 때문에 고스란히 당한다. 가온 엄마는 운동권에 의한 성폭력으로 괴롭다. 가온이는 성미 이모와 아빠 기춘의 가없는 엄마 지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외롭고 고독하고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 아이, 거기에 미래라는 친구가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갈 힘을 되찾는다.
하늘의 죽음에 '동성애' 탓을 하는 극단적인 기독교 집단의 태도는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거기에 덧씌워진 가부장제의 교묘함과 부자라는 그들만의 계급사회가 만들어낸 허상도 얼마나 굳건한지 하늘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결은 이런 집안 분위기를 못 견뎌한다. 무조건 학원 뺑뺑이를 하든말든, 마음은 죽어가든말든, 시험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 자기들 리그 안으로 진입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는 세계. 그들만의 세계는 온전할 수 있을까. 영원할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역사는 면면히 보여왔다. 퇴보하는 것 같아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퇴보란 없는 것처럼.
형식이 독특했다. 일기를 바탕으로 각자의 시선에서 자기를 말하고 있다. 속마음 털어놓기는 일기장보다 더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요즘은 일기장도 종이 일기장이 아니라 인터넷에 더 많이 쓸 듯하고, 일기를 날마다 쓰는 사람도 드문 시대이다. 카톡하고 트윗하고 페이스북 하기도 바쁜 청소년들이 일기를 쓸까? 궁금해졌다.
이런 내면 고백 형식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더 명확하게 들렸다. 지영 입장은 이래, 하늘이 입장은 저래, 기춘 입장은 저랬구나, 로사수녀 입장은 또 어떠했는가에 대한 자기 입장 설명을 들으면서 하나의 사안에 대해 참 많은 사람들이 각자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행한 일이 트라우마도 되고 치유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80년대 운동권 이야기. 청소년들은 이 시절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 수 있을까. 내 경험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까만 찦차에서 내린 검은 선그라스에 검은 슈트를 입은 4인조 남자 기억이 또렷하다. 젊은 사람을 포위하더니 마구 밟고 피투성이가 되어 찦차에 실리는데도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못하고 쳐다보아야만 했던 그 공포감과 두려움. 연대 지하도 앞에서 막힌 채 페퍼포그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우리들의 20대를 말이다.
운동권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도 어디에다 하소연하지 못했고, 자기가 믿어왔던 세계가 완전히 등을 돌려도 아무말 하지 못하고 견뎌야만 했다. 성폭행도 나쁘지만 믿었던 그 마음이 무너진 것이 더 처참하다. 도와주려던 사람을 이용하고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 떼는 행위가 주는 좌절감을 지영을 통해서 아주 절절하게 드러내어 읽는 내내 치를 떨었다. 지영의 엄마, 수녀님들, 천주교 학생부들이 보여준 태도는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 그대로다. 그렇다면 지금은 더 나아졌을까. 미투 운동으로 조금은 나아졌지만 피해자는 처절히 언론에 흥미거리를 제공하여 다시 2차 가해를 당하는 것은 여전하다.
남편의 자녀 성폭행 사실을 알고 취한 결의 엄마 태도는 당시의 인식으로는 최선이었다고 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을테니까. 늘 시댁 식구들에게 억눌려 살아야 하고 눈치를 봐가며 사는 것으로 신분 상승을 꽤했던 자신의 선택을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는 엄마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가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설 줄 알았는데 자기만 혼자 스페인으로 보냈다' 고 쫓겨나야 할 사람은 자기가 아니고 아빠였다고.
그 시댁 식구들의 요구가 얼마나 교묘하게 잔인한지, 가부장의 폭력을 어떻게 옹호했는지, 그래서 한 아이 인생을 요절시키고도 죄의식조차 없는 뻔뻔함이 현실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다. 오죽하면 아이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남편을 알리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생기고 그 때문에 설왕설래 했지만 그 곳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양육비를 보내왔다는 소식을 듣다보면 인간의 사악함은 어디까지일까 싶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작품으로 담았다. 수작이다.
가족 성폭력으로 자기 목숨을 버리는 아이들 숫자는 통계 자료가 있는지 궁금하다. 남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그 단한번의 성폭력은 피해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폐허로 만든다는 것을 절절하게 당사자 입장에서 드러낸 점이 가장 좋았다. 그 때 그 기분, 그 느낌, 그 냄새, 그 촉각까지 면면히 수십년이 지나도 어느 순간 촉발되면 자신을 잃을 정도로 다시 그 상황 그 현장으로 되돌려져서 공포와 죽음을 맛보게 한다는 점을 지영과 하늘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가정폭력은 밥을 굶기고 매를 때리고 학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기름진 밥과 학원 뺑뺑이 시키면서 부유하고 화려하기까지 한 뒷받침이라는 것도 학대임을 이결을 말하고 있다. 언니가 성폭행 당할 때 그 풍경이 꿈인 줄 알았던 그 동생들을 염려하는 하늘은 그래서 더 괴롭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에 더 좌절을 했을 것 같다. 아빠 친족들이 사죄하지 않으면 그 응어리가 풀어지지 못할 거라는 것에 대한 것과 사회는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 더 이상 살아갈 힘을 빼앗았을 것이다. 하늘의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절절했다. 이 아이가 어땠을까 싶으니까.
당사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써준 점에 공감하고, 강화도 풍광이 자주 나오는데 마치 가 본 것처럼 느껴진다. 새우젓 잡이 배, 노을의 빛깔, 해질녁 지평선, 물가의 철새들 이야기도 앞부분에 배치하여 가족이 있지만 없이 살아야 하는 이결과 엄마가 있지만 없는 것보다 못한 가온을 서로 의지하게 하고, 미래까지 함께 해서 '우리 모두 빛나'라면서 희망을 준점이 현실에서 그리 되도록 우리가 길을 함께 내야 한다는 호소로 들렸다.
김중미 작가는 늘 현실을 바라보고 찾아보고 살펴보고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길을 내고 있다는 생각을 또 하게 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 작가도 쉽지 않았겠다라는 생각을 문장 사이 사이, 주인공들의 말과 시선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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