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손은 역시 고호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나온 손 들이다. 그 어둠침침함 속에서 거짓없이 자기를 드러내놓고 있는 손들이 하는 말들이 압권이다. 고호미술관에 가서 보고 나서야 그 작품에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동생에게 건넨 편지에서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확연해졌다. 그리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바라볼수록. 또 하나의 내게 따뜻한 온기로 남겨있는 손이 있다. 그 부드러운 감촉보다 그 손이 갖고 있던 온기가 잊혀지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있어서 내게 손은 특별하다. 악수를 할 때도 손 맛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느낄 수 있을 때가 간혹 있다. 그래서 그 촉감에 대한 기억을 제법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림이 모처럼 유화이다. 표지 첫장에 가득한 손과 환한 웃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그림상으로는 성별을 알 수 없다. 내용에서는 분명하게 순이라는 여자 아이인데. 더구나 뒷 표지에서는 할머니에게 내미는 운전기사 아저씨의 손과 할머니 손이 확대되어 그려져 있다. 아주 기다란 할머니의 손이다. 아저씨의 손만큼의 크기인 그 손마디에서 할머니의 삶이 어떠한지 어떤 서사도 필요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플롯은 아주 간단하다. 산골 마을을 운행하는 버스 기사 이야기다. 눈 쌓인 날 망설임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을 생각해서 떠난다. 아마 이런 망설임이 없었더라면 버스 기사가 출발하는 부분에서 그에 대한 인간미가 사라지고 박제된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망설임이 도입부분을 살렸다. 그리고 노루를 만나고 두 번이나 멈칫 거리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장면에서 충분하게 어떤 심성을 갖고 있는 버스 기사인지 보여주고 있다. 구구 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은 군더더기 없는 주인공을 그려놓은 점이 세련되어서 '말더듬이 원식이'에서 느꼈던 불만이 상큼하게 사라지게 했다. 또 하나는 순이를 업고 오는 장면에서도 아주 간결하면서도 아저씨가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담박에 느껴지게 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샘재에 사는 승민이 아버지를 기다려주는 마음과 승민이 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나서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그 장면은 고작 15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면서 그 분위기를 한껏 드러나게 해주는 묘사와 분위기 서술은 아주 자연스럽다. 억지가 없다. 작가는 그것도 모자라서 용전마을 해산을 봐주러 가는 할머니까지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할머니 집까지 짐을 들어다 드리는 일까지 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샘재마을 승민 아버지의 넉넉함까지 보태어 훈훈하게 할 줄 안다. 내 욕심은 작가가 여기서 끝을 맺어도 좋았다. 그런데 앞부분에서 암시로 남겨둔 순이 할머니 몸살감기약까지 챙겨서 전해주는 부분과 그 고마움으로 과자를 쥐어주는 할머니, 군더더기 같은 마지막 두 문장이 앞 부분의 팽팽했던 긴장을 한꺼번에 느슨하게 해버렸다. ' 정말 추운 날이었다. 그러나 아저씨 마음은 과자만큼이나 따뜻하였다'
이 두 문장으로 하여금 이건 정말 좀 억지스러운데라고 느끼고 있는 부분에서 그렇구나 하는 확신을 하게 해버린다. 내가 작가라면 '이제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로 끝맺음을 했을 것 같다. 플롯이 서서히 상승을 하고 있는데 그 최고조의 정점이 순이할머니 약을 전달하는 부분까지는 무리라고 보여진다. 그 앞에서 마무리를 했을 때 "맞아, 정말 저런 아저씨가 있었어" 하는 공감을 독자에게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경험한 친절한 버스 기사 아저씨를 기억해 냈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승민이 아버지 같은 사람이 있고, 승민이 아버지를 기다려주는 같은 동네 마을 사람들이 있는 정서적 공감을 마음껏 펼쳐 나간 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버스 기사 아저씨 혼자 잘난 것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앞의 습작시기의 작품을 읽다가 이 글은 반가웠다. 그리고 그림이 텍스트와 어우러져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 같았다. 상당히 그림이 서사를 보완을 넘어서서 의미 깊게 풍부하게 확장을 시켜주고 있어서 큰 미덕으로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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