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고래/김일광 글, 장호 그림/내인생의책/2008
고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소설 '백경'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고래 종류가 많다는 것 정도를 알고 있었고, 반구대 암각화에서 본 고래 그림에서 우리나라 동해가 고래들의 서식지였던 것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만난 귀신고래를 통해서 우리나라 포경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동화의 영역 확대라고 해야 할까? 소재의 확대가 작품의 넓이와 깊이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소재를 어떻게 살려내었는가, 작품 속에 무엇을 녹여내고 있는가, 또 문학성은 얼마나 높은가도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일단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서사를 끌어가는 힘이 탐정소설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배열이 그렇게 만들도록 배치하고 있는 점도 그러하다. '2만년 전의 바다'에서는 넉줄이와 햇살이가 나와서 암시를 해주고 있다. 그 바다에서 엄마가 죽었다고. 그러면서도 이제는 고향인 그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 내용이 '새끼고래 쌍둥이'에서는 연오를 보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다. 연오라는 이름도 작품 속에서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에서 따온 듯 하고, 할아버지와 꼭 닮았다는 이야기에서 쌍둥이하고의 만남을 더 필연적으로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점과 더불어 귀신고래가 간절곶으로 돌아온 것으로 그린 것은 작가의 희망 사항인 것 같다. 그래서 어이없게 끝까지 밀고나가던 서사가 꿈이라는 것으로 종결처리된 부분은 정말 아쉽다. 좀 더 이야기를 진행을 했었으면 하는 것은 넉줄이와 햇살의 이야기가 앞 부분에서만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게 보일 수 없음에도 작품 속에서 걱정한 것처럼 양식장, 그물, 쓰레기 들을 뚫고 해안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 육중한 40톤이나 되는 몸무게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말 처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야기의 전체 흐름을 보면 '고래가 벌이는 잔치'까지가 전개부분으로 완만하나 점점 상승 작용을 주고 있다가 '어미 고래의 죽음'에서 절정을 맞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바로 결말이다. 숨가쁘게 끌고 올라온 절정에서 털보 포장의 고집 부리기와 승선 거부는 털보라는 인물의 전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명이었다. 이미 충분하게 작품 속에서 그의 인상이나 말투, 행동에서 알 수 있었음에도 그들 돋보이기 위해 12쪽에 가까운 서사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아도 그가 살고 있는 집안 풍경, 대포집에서 그가 하는 이야기, 작위적이기도 한 혜미의 권고, 그 사이에 선장과 영일이의 대화는 포경선의 위계질서에 대한 설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그 다음 장인 '계속되는 빈배'도 '소나'의 불법적 사용에 대한 고발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용운호의 철학을 굳세게 드러내는 일 외에는 전체 흐름을 절정으로 끌고 가는데 꼭 필요했던 것인지 하는 생각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부터 이다.
하지만 '귀신고래를 만나다'와 '어미 고래의 죽음'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영일이를 통해서 모두 하였다. 어미 고래를 발견하고 그 조차 작살을 쏘려는 포장에게 덤벼드는 영일이와 바닷물에 뛰어들어 작살 줄을 칼로 끊어내는 영일이를 통해 '어머니'라는 이미지 속에 담겨져 있는 많은 의미들을 일깨워주면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숫놈의 태연자약한 유영부터 시작해서 어미의 죽음까지는 박진감 있고 속도있게 그리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끌려들어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후반부부터 두드러지게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는 교훈이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감소시키고 있어서 아쉽다. 선장의 용운호 법칙 부분, 혜미의 고래가 다니는 길에 대한 정보, 혜미엄마의 불공에 대한 이야기, 연오 할아버지가 들려주고자 하는 귀신고래에 대한 집착 등은 작품을 읽어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이미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읽는 사람이 아이들이라는 생각으로 너무나 많은 설명을 군더더기처럼 붙이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전형성을 살린 사람은 털보포장 뿐인 듯 하다. 주인공인 영일이도 열네살짜리 아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있고, 그 보다 더 세살이나 어린 혜미는 오히려 영일이를 가르치는 영특함까지 보여줘서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귀신고래에 대한 수많은 지식, 포경선의 활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알려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래잡는 일이 작살 한 두개를 꽂으면 끝이나는 싱거운, 그래서 더 생동감이 나거나 긴박감이 더 필요한 서술 등은 작가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미련이 남는 부분이다.
또 하나는 작중인물들이 사투리를 쓰다가 표준말을 쓰는 등 일정하지 않은 말투가 걸렸고, 작중화자가 여러번 바뀌어서 전체 줄거리를 끌어가는 부분이 유효했다면 오히려 읽는 어린 독자들은 별개의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전체의 글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더구나 오오츠크 바다로 쌍둥이 고래를 데려다 주는 장면에서는 많은 부분 억지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충분히 일곱 여덟살 난 아이들 마음으로야 가능하지만 다 큰 아이들과 선장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큰 고래가 나타나 데려가는 모습에서 더 그러했다.
작품 속에 삽화가 텍스트 없이 그림책처럼 연결된 부분이 있다. 무려 10장이다. 영일이가 포장에게 작살을 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 뒤부터이다. 주인공인 영일의 심리 상태를 그림으로 덧붙여 설명을 해주려는 속 깊은 배려로 보이는데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차라리 그림책처럼 장면 장면을 그림책 구성처럼 가져갔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그렇게 할 때 그림도 살고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어지는 연속 그림을 보면서 오히려 건너뛰고 싶었다. 이어지는 서사의 긴박감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의도 했던 편집자가 기획을 한 것이든 이 부분에서 노린 효과를 과연 얻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선명하게 속지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그려진 그림 속에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권두사보다 더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역할을 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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