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이 초판 발행한 날이다.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이라는 말이지.
글의 플롯 구성이 이채로왔다. 그리고 다양한 시선인 듯 분산을 해놓았지만 그것은 결국 작가 한 사람의 시선이고 목소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이렇게 슬쩍 바꿔끼워서 눈치 못채게 마치 그들의 시선과 시각이었음을 능치고 있는 능글스러움도 황석영 답다.
총 13장이다.
1장 그날들 속으로/2장 영길/3장 준/4장 인호/5장 준/6장 상진/7장 준/8장 정수/9장 준/10장 선이/11장 준/12장 미아/13장 준/작가의 말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묘하군 싶었다. 홀수에 배치된 준은 어떤 의미일까. 절대 짝지어질 수 없는 것? 늘 뭔가 빈 듯한 그런 것? 합일 될 수 없는 미지? 이 또한 아, 뭔가 노림수가 있구나 싶어서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고, 어쩌면 생태적인 준의 의식 속의 암호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짐짓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평범한 영길을 통해 준의 겉모습이 그려지고, 그 다음 마음이 맞는 인호를 통해 배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되새김을 하게 하고, 상진을 통해 부유한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 패턴 속의 간접화법의 실체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것이 삶에서 몇 광년만큼이나 진실하고 멀어져 있는가를 말하고, 정수를 통해서 시대적인 연애관이나 결혼관의 패턴이 풍자되고 있고, 선이야말로 보수층의 모습과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마지막 알맹이일 듯한 미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미아는 준을 가장 많이 닮은 존재이고 시대와 상황 속에 비껴갈 수 없었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결국 준이 갖고 있지 않은 많은 부분들의 파편들이 그들의 시선 속에 준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고, 그런 삶들의 편린들이 그를 베트남에 가서 살아올 수 있게 만들었던 자양분이었음을 은근히 고백하고 있다.
첫문장은 '그해 겨울에 나의 베트남 파견이 결정되었다' 와 282쪽의 마지막 문장에서'대위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니까. 기차는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터널을 통화는 중이었다'로 끝맺고 있다. 터널의 상징성, 요란한 굉음은 청춘의 분출하는 좌충우돌의 심연의 소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 터널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지는 하는 것을 두 문장 속에 잘 보여주고 있다. 첫문장에서 문장의 형태가 능동태가 아니고 수동태이다. 누구에 의해 결정이 되어진 것이다. 본인의 결정이었다면 이렇게 서술되어야 한다. '그해 겨울에 나는 베트남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문장을 수동태로 바꿔놓으므로 해서 타의에 의한 개인의 운명에 대해, 그 시대상이 자연스레 꼬리를 물고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의 장치가 기교를 넘어선 경지를 느끼게 했다.
책을 들었을 때 그 다음이 궁금해서 중간에 그만 둘 수 없었다. 풍경묘사와 심리묘사가 많은 글이었지만 그로 인해 상상을 확장시켜주었고, 대화체 문장에서는 줄을 바꿔 쓰는 것으로 우리가 배운 큰따옴표의 의미와 존재를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 그래서 대화이면서도 서술같은 느낌을 받게 했고 그로 인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더 명료하게 좀 더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다.
1장부터 13장까지 결코 30쪽을 넘어가지 않은 분량으로 호흡을 맞췄다. 도입부인 1장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 짧음 속에 앞으로 전개되어질 모든 것들을 암시하고 복선을 깔아놓았다. 마치 수수께끼 보물지도를 보고 그 하나 하나를 실타래 풀 듯 찾아가야하는 식이어서 더 흥미를 높여주고 있다. 30쪽은 긴 호흡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수준을 가늠하고 그리고 좀 더 어린 사람들이 읽어내기 맞춤하게 배려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이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작품 속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행간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개발독재의 박정희와 4.19와 5.16의 시대상이 비스듬하게 음영처리가 되어 있지만 그것이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고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묘사된 풍광 속에서 어린 시절 봄직한 것들이 서술된 부분에서는 훨씬 공감이 컸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여운을 젊은 독자들이 과연 공유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작품들의 순서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연결들이 작품 전체를 하나로 엮어내는 거대한 얼개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보편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표준인 듯한 영길은 준이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현재인 듯하면서도 과거를 회상하는 투의 어미처리는 마치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듯 했다.
영길이는 중길이의 죽음과 그의 유작시를 문집으로 묶어내주는 일을 통해 준을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친해졌다고 하지만 그의 내면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물론 준이가 들여가게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은 얼마나 복잡하고 한 인간을 알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문장에서 준의 말은 소위 문학을 합네 하는 인간들이 저지르기 쉬운 지점을 꼭 짚어주면서 말이다.
<내가 영길이 너나 종길이를 왜 첨부터 어린애 취급 했는지 알아?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구 별이라구 글씨만 쓰구.> 작가의 문학관이 명쾌하게 설명되는 지점이다.
인호를 통해서는 음악을, 정수를 통해서는 그림을, 상진과 영길을 통해서는 문학을, 순이와 미아를 통해서는 극과극의 억압과 갇힘 속에서 갈구하는 영혼들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심미안을 드러내고 있어서 놀라게 했다. 수많은 경험 속에서 작가가 알고 있는 예술적 향취가 깊고 넓구나 싶어서 감탄을 하게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전형을 인호만큼 또렷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또한 마지막에 만난 대위 모습을 통해서 작가가 갖고 있는 인간애가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글 전체가 문학동네 뒤풀이 자리에서 거나해지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거야 라는 생각도 들어서 혼지 피싯 웃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성이 높거나 작품의 완성도가 깊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자기의 젊은 날의 모습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 또한 성장소설이라는 부분에서 그런 측면을 고려했을 듯 하다. <손님>과는 또 다른 가볍고 경쾌하나 조금은 고민스런 그런 청춘의 언저리를 되돌아가게 하는 것 정도이기 때문에 가볍게 한번 읽고 '음, 그 때는 그랬지' 정도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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