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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시인 백석
시인 白石의 미공개 산문 ‘해빈수첩’ <!!--titleend-->
193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시인 백석
<!!--subtitlestart-->1934년 日유학 당시 '伊豆의 해변'이 배경
'개' '가마구' '어린 아이들' 등 세 편의 짧은 글 <!!--subtitle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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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937년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의 백석.그는 1930년대 문단의 최고 미남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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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시사(詩史)의 또 한사람 전설적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의 미공개 산문이 발굴됐다.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으로 불릴 정도로 193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 받던 그가 1934년 일본 유학 당시 쓴 산문 ‘해빈수첩’(海濱手帖)’이다.
‘개’ ‘가마구(까마귀)’ ‘어린 아이들’ 등 세 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진 이 산문은 모두 200자 원고지 12장 정도의 분량. 1980년대 후반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발표한 이후 창작과비평사의 ‘백석 시전집’(1987·이동순 편)과 실천문학사의 ‘백석 전집’(1997·김재용 편)이 나오며 전면적인 재조명을 받았지만, 이 산문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해빈수첩’이 수록된 지면은 조선일보 중흥주 계초 방응모 선생의 장학회인 ‘이심회(以心會·후에 서중회로 발전)’ 회원들이 1934년에 만든 회보 창간호. 이 자료를 발견한 시인 유경환(劉庚煥·66)씨는 “1970년대 중반 입수한 자료”라면서 “당시만 해도 백석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던 시절이라 주목하지 못했는데, 최근 집에서 자료정리를 다시 하다가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평북 정주 출신인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그 해에 계초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는 이 장학금으로 그 해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유학했는데, 이 글은 1934년 귀국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1934년 3월 22일 발행된 이심회 회보에는 부록으로 ‘회원약력’이 실려있는데, 백석은 “1934년 3월 동경청산학원 고등학부 영어사범과졸업예정”으로 적혀 있다.
▲사진설명 : ‘이심회 회보 ’창간호에 실린 백석의 산문 ‘해빈수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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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맨 말미에 ‘남이두시기해빈’(南伊豆枾崎海濱)라고 적어, 이 산문이 씌어진 곳이 일본 동경 근처 이즈반도 남단에 있는 가키사키(枾崎) 해안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창작과비평사 발행 백석 시 전집 ‘모닥불’에는 ‘가키사키의 바다’라는 시가 수록돼 있는데, 이 역시 ‘해빈수첩’과 같은 시기 이즈반도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해빈수첩’은 백석 특유의 향토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모더니즘 풍의 세련된 언어감각을 ‘개’ ‘까마귀’ ‘어린 아이들’이란 소재에 담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로 모이다”를 “~로 ?이다”로 적는 등 1930년대 당시의 표기법인데다 ‘왕구새’(왕골 자리) 등 시인의 고향인 평안도 방언이 자주 사용되어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부분도 적지 않다. 제목으로 쓰인 ‘해빈(海濱)’은 해변(海邊)의 동의어로 일본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다.
1936년 모더니즘 계열의 첫 시집 ‘사슴’을 펴내며 단숨에 한국문학사로 떠오른 문단의 별이었지만, 그의 산문은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 창비와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전집에도 수록된 산문은 각각 7편에 불과하다. ‘해빈수첩’을 검토한 연세대 유종호(柳宗鎬·67) 석좌교수는 “워낙 과작(寡作)이었던 작가이기 때문에 이번 발굴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시인 백석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석은 누구인가
'南엔 정지용, 北엔 백석…' 문단서 평가
최근 10여년 그에 관한 논문만 100여편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같은 정주 출신 시인 김소월과 오산고보 선후배 사이.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모더니즘 계열의 서정시집 ‘사슴’을 출간하면서, 문단의 혜성으로 떠오름. 한정판 100부 출간인 탓에 당시 문학 지망생들에게 이 시집을 필사하는 것은 대유행이었고, 윤동주도 이 필사본 시집을 간직했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녀성’ ‘조광’의 편집을 맡았다.
방랑으로 일관하며 시를 쓰다 일제말 창씨개명 강요와 강제징용을 피해 만주에 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과 함께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으나 김일성 찬양과 체제 선전에 시가 동원되는 것에 반대, 순수서정적인 시를 고집하다 문단에서 소외됐다. 62년 북한 문화계 전반에 내려지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돼 일체의 창작활동 중단했다.
분단 상황 탓에 이전엔 거의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1988년 월북 문인 해금조치 이후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같은 빼어난 시편들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한국 현대 시사(詩史)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그에 관한 학위-연구논문만 100여편 쏟아져나왔다. 문학사상사가 6권까지 발간한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에서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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