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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세요, 새책을 소개해요

<<다온>> 조현미 저자(글) · 원유미 그림/잇츠북 · 2025년 02월 10일

목차

  • 단짝이 필요해 _ 7
    할머니의 기도 _ 20
    나쁜 예감 _ 32
    골탕 _ 44
    사과 편지 _ 53
    여해의 비밀 _ 64
    가리고 싶은 흉터 _ 77
    화해 _ 87
    엄마 _ 96
    하늘나라 환송회 _ 105
    아름다운 끝맺음 _ 117
    무거운 돌덩이 _ 128
    또 다른 시작 _ 143

 

  • 나오는 사람들/ 다온, 여해, 방은혁, 민지, 서현, 할머니, 외할머니, 선생님,102동 할아버지
  • 공간 배경/  할머니와 사는 다온, 쉼터에서 사는 여해, 교실
  • 서술자/ 1인칭 서술
  • 모티브 / 4인 가족에 대한 결손에 의한 심리적 결핍, 보호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가족 구성, 할머니의 돌덩이를 안고 개울 건너기, 생전에 하는 장례식
  • 6학년 여학생인 다온, 단짝이라는 것을 가져보지 못한 결핍이 심하게 다가왔던 것은 자신의 삶이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라서 가슴에 응어리진 결손을 벗어나고 싶고, 벗어날 수 있겠다 싶은 심리 상태여서 더 강렬한 소유권을 강하게 느끼는 집착의 단짝에 매몰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심리를 살펴보면 그런 강렬한 욕구가 안쓰러움을 처음부터 느끼게 한다. 
  • 우리네 할머니들이 시대를 잘못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전쟁과 군인들에 의한 빨갱이 사냥으로 움추리게 한 반공 이데올로기까지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인물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를 어찌하든 이겨내고 살아가려 애쓴 극강의 삶이라서 단단하고 강철같고 흔들림이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강철이라서 작은 미동에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섬세함을 숨겨두고 살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하늘나라 환송회>에서 그 짧은 회환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서수구조의 절정에서 독자가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는 것은 어린이 독자보다는 어른 독자들이 자신의 부모들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회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부분은 어린이 독자가 어찌 느꼈을까 궁금해진다. 
  • 뉴스 속에서 보았던 게임에 미쳐서 어린 자녀을 화상을 입히는 몰지각한 부부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는데, 그 '에미'의 심정을 대변하지 않고 할머니 시선으로, 단정한 '몹쓸 에미'는 좀 억울하겠다 싶다. 아마 이 부분까지 담아내려면 또 한줄기의 서사가 필요할 듯 하다. 결혼해서 겪어내야 했던 다온이 엄마로서의 생활상이나 심리 묘사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에는 서사가 너무 복잡해져 중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잡아야 하고, 그것까지 12살~13살이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갈등을 넣지 않고 단순하게 투명인간 취급해서 스토리를 단순화해서 다온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장치인 듯도 하다.
  •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외모 묘사가 그림보다 대화체에서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버리지 않고 쓰는 할머니와 서울 말씨로 살갑게 말하는 외할머니의 차이는 할머니 캐릭터를 더 잘 드러나게 했다.
  • 그림이 글 내용보다 아주 밝고 화사하고 캐릭터를 잘 살려서 내면 묘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효과를 주고 있다. 
  • 바람직한 선생님 상이 나와서 안도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그럴까. 
  • 여해가 방은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나오는 부분도 스토리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데 여해의 말과 문자로 짓궂은 방은혁이 곰살스럽고 여리고 섬세한 은혁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여러가지 사건이 행간을 채워야 하는 점이 납득될까 싶다. 둘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담임에게 야단 맞은 뒤부터 일까. 여해네 집에 놀러 간 한 두번으로 쉽게 위탁 가정으로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의 다온이가 너무 어른스러워서 더 안타깝고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 뒷 표지에도 강조하고 있는 '마음 먹기에 따라서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라기 보다 '될수도 있다'의 낮은 가능성과 그런 경지까지 이르기에는 할머니쯤의 경륜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씀이다. "마음 먹기 달렸다"라면서 위로와 위안을 주는 저 말이 얼마나 마음 먹기가 어려운 당사자 입장에서는 강요와 강권으로 들리지는 않을까 싶다. 저런 마음을 '오기'라고도 한다. 어쩔 수 없어서 끝까지 자기를 버텨야 하는데 비빌 언덕을 스스로 만들어야 할 때 저런 독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은데 작가는 어쩌자고 독자들에게 그런 권고를 끝까지 할까 싶었다. 
  • 다온이나 여해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이런 작품을 읽으며 위안을 삼을 수 있고,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전학가면서 마지막 인사를 너무도 교훈적으로 말하는 다온도 가장 어색한 부분이기도 했다. 1인칭 서술자 시점이라서 다온이의 마음을 잘 드러내면서 스토리를 이끌어가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작품이었다. 

=========================================끌로드가 다듬은 글
 
 

<<다온>>을 읽고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열두 살 다온, 쉼터에서 생활하는 여해. 두 아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책을 덮고 잠시 멍해진다. 이 작품이 묵직하게 남는 건 결손 가정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다. 그 결손이 아이의 내면에 어떤 형태로 새겨지는지를 1인칭 시점으로 밀착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온이 단짝에 집착하는 심리는 단순한 외로움으로 읽히지 않는다.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라는 사실이 가슴에 오랫동안 응어리진 아이일수록, 누군가를 '오직 나만의 친구'로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렬하게 들이닥칠 수 있는지 — 작가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행동과 심리 서술로 보여준다. 처음 몇 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움이 먼저 밀려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인물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이다.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할머니와 서울 말씨로 살갑게 다가오는 외할머니, 두 사람의 캐릭터는 외모 묘사보다 대화체에서 훨씬 선명하게 살아난다. 특히 〈하늘나라 환송회〉 장면 — 살아 있는 동안 미리 치르는 장례식 — 은 서사의 절정이자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반공 이데올로기의 한복판을 통과해온 세대의 삶이 그 짧은 장면 안에 압축된다. 그것이 강철처럼 단단한 사람도 내면 깊숙이 섬세함을 숨겨두고 산다는 사실을, 작가는 설명 대신 눈물 한 방울로 전한다. 어린 독자보다 어른 독자가 더 오래 그 장면에 머무는 건, 아마 자신의 부모 세대가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다온의 엄마는 사실상 '몹쓸 에미'로만 처리된다. 게임에 빠져 아이를 화상 입힌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그 어머니의 내면을 한 줄도 들여다보지 않는다. 다온에게 집중하기 위한 서사적 선택임은 이해하지만, 덕분에 엄마 캐릭터는 납득보다 공백에 가깝다. 그 공백을 제대로 채우려면 중편이 아니라 장편의 호흡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해가 방은혁에 대해 꿰뚫듯 파악하는 장면이나, 다온이 위탁 가정행을 비교적 쉽게 결심하는 대목도 행간의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 물론 그 어른스러움이 오히려 이 아이가 얼마나 오래 혼자 감당해왔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더해지기도 했다.
뒷표지에 강조된 "마음 먹기에 따라 나쁜 일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은 조금 걸렸다. 그 경지는 할머니처럼 수십 년의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 겨우 도달하는 자리다. 다온이나 여해 같은 아이들에게 그 말이 위로로 닿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강요로 들릴까. '오기'처럼 스스로를 버텨내야 할 때 필요한 독한 마음을 작가가 권고의 언어로 포장한 것은 아닐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한동안 생각이 길어졌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읽을 만하다. 1인칭 서술이 만들어내는 몰입감, 삽화가 글보다 한 톤 밝게 내면을 풀어주는 방식, 현실적인 선생님 캐릭터의 존재. 무엇보다, 다온과 여해처럼 지금 비슷한 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읽힐지가 계속 궁금해진다. 위안이 될지, 아니면 너무 가까워 오히려 불편할지 — 그것은 아이들만이 알 수 있는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