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난 뒤 가장 한가한 날이었다. 해서 그 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검색을 해보니 수많은 일이 있었다. 그것으로 됐다.
날씨는 잔뜩 흐려서 책읽기에 참 좋았다.
<쥐>를 읽었고, <내 눈에 무지개가 떴다>를 다 읽었다. 꼼꼼하게 읽고 소감을 썼다.
카네이션을 사들고 막내가 다녀갔다. 어버이날은 평일이라 못 온다며, 큰애는 해외 출장이라고 미리 알렸다.
다들 바쁘게 산다.
아침을 아스파라커스 볶고, 소고기 떡갈비풍으로 빚은 것 굽고, 명태 계란국으로 상을 차렸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생 고수를 한 줌 뜯어다 놔주었다. 싱싱한 맛 자체로 다른 양념이 필요없었다.
어제는 저녁은 막내 덕분에 고수 뜯어다가 쌀국수와 부추와 파를 뜯어다가 생오이 무침과 파전을 해서 먹었다. 배를 두드리며 너무 부르다고 노래를 불렀다. 정말 든든하게 잘 먹었다.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산 중간에 작은 절이 있다. 대웅전을 짓더니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연등이 환하게 밖에 걸렸고, 7시에 종도 울리는데, 11시가 되니 법당에서 불경 외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걸어갈까 하다가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며 바라보기만 했다.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마음에 두는 것이 신앙일 것이다. 무의식의 영, 고대 시대 하늘의 소리를 전한다는 제사장들이 어쩌면 오늘날의 진짜 만신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요즘 점점 더 한다. 지식이나 이성으로 분석하고 이름 짓고 규정을 한다는 것이 빙산의 일각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서 말이다.
해가 저문 시각, 사위가 고요하다.
꽃밭은 수선화와 튤립이 지고, 꽃잔디도 시들고, 마가렛이 한창 피어나려 봉오리를 맺고 있다. 양귀비도 그렇다. 마가렛이 피어나면 줄따라 하얀 꽃들이 피어 날 것이다.
밖에 나서면 등나무 꽃향기와 아카이아 꽃향기가 너무나 좋다. 자연 향수를 따라올 수가 없다. 제아무리 비싼 향수라도 말이다. 바람결에 코끝을 얼마나 간지럽게 하는지. 아침에 문 열고 나서면 마당 한 바퀴 돌면서 얼마나 변했나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다. 뉴스를 덜보고 자연을 살펴봐야, 그리고 좋은 책을 읽으니 심리적 안정감이 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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