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독서라서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전자책의 장점은 누워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눈이 많이 피곤했지만, 그런 피로감으로 잠으로 연결되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그래서 더 선호할 것 같다. 엊그제는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새벽까지 읽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프란츠 교수 심리분석학 중에 나오는 부분이 있어서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서 열심히 읽었다. 전쟁에서 조종사들의 역할이나 심리 상태, 교전 상황, 그 속에서 비행기 안에서 기총수와 기록 담당관과 나누는 이야기는 너무 생소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본인도 그러하다고 기술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처음에는 전시 상황, 유년시절 추억, 피난민들의 정경이 뒤섞여서 나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불분명했다.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의 엄청난 차이와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조종사로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데 싶었다.
쉽게 나오지 않았던 조종사로서의 책임과 의무 이전에, 인간으로서 죽음을 담보로 하는 전쟁이 소비하고 허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 왜 이런 전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러면서 2-33 비행대대에 대한 공동체 의식과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고민을 웅변하는 마지막 부분은 절창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변화과정이 전시 조종사로서 살아가는 상황 속에 자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전쟁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의미를 확고하게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내가 조종간을 잡고 있는 것 같은 체험까지.

138쪽
이러한 인간 공동체를 나는 건축가로서 살아오지 않았다. 그 평화로움과 그 너그러움, 그 편안함을 즐겼다. 거기에서 살아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성당의 집기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의자나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니 기생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패배자로서 살아온 것이나 다름 없다.
140쪽
나는 돌로 지어진 대성당과 돌들의 집합체를 혼동했다. 그랬더니 차츰차츰 유산이 자취를 감췅ㅆ다. '인간'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내가 속한 문화의 요체도, 내가 속한 공동체의 셜쇠도, 그리고 내가 깨달은 승리의 원칙도 모두 '인간'이다.
143쪽
'인간'에 대한 존중을 해야 한다고 해서 개개인의 하찮음이나 그장의 어리석음, 무지함 앞에서도 나 자신을 무너뜨려가며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자질이 우선 뒷받침되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의 사랑은 개개인을 넘어 신의 대리인 사이에 일을 다루면서 '인간'들 사이에 고귀한 관계를 만들었다.
144쪽
신을 계승하는 이 문명은, 이처럼 자비를 개인을 통한 '인간'에의 베품으로 만들었다.
겸손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역할에 대하여 개인을 더욱 밝게 빛내준다. 타인을 통해 신을 존종하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겸손은 개인이 그 자신에게서 신을 존중하도록 만들고, 스스로 신의 전령이 되도록 만들며, 그 자신을 신에게 이르는 길로 만든다. 겸손은 개인이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망각하라 명한다. 만일 개인이 그 자신의 중요성을 스스로에게 더욱 부각시키게 되면, 신에게 이르는 길은 곧 벽으로 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147쪽
자신에게 그러한 존재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내면에 그러한 기초를 닦아야 한다. 조국에 대한 그 어떤 감정도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이를 심어줄 수가 없다. 우리가 표방하는 존재감이란 행동을 통해서만 심어지는 것이다. 존재는 언어의 제국이 아닌 행동의 제현이다.
148쪽
나의 문명을 신이 지탱해주고 있는 한, 이 문명은 '인간'의 가슴에 신을 세워준 희생의 개념을 살려냈다. 인본주의는 희생의 중요한 역할을 등한시 했다. 인본주의는 행동이 아닌 말로써 '인간'을 움직일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핵심이 되는 본질적인 행동은 여기서 그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그건 바로 희생이다.
149쪽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계속해서 설파하였다. 그러나 '인간'을 잊어버린 우리는 막연한 자각쯤으로 우리의 자유를 정의 내렸고,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선으로 한계를 지었다. 이는 의미가 쏙 빠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150쪽 개인의 존엄성은 타인의 후한 인심 적에 종속된 존재로 국한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가진 자들이 그 자신의 재물을 넘어 가지지 못한 자들의 선처를 요구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비란, 개인을 뛰어넘어 '인간'을 예우하면서, 인간성을 성장시키기 위해 개인이 싸워나갈 것을 요구한다.
151쪽
공동체가 무언가와 엮이지 않는 한, 공동체란 말은 의미가 빠진 공허한 단어이다. 개체의 집합은 존재가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군중 전체를 억압하는 것이 용남할 수 없는 일이라면, 군중 전체가 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러한 국가는 집단의 윤리를 강조한다. 우리 자신 또한 서서히 그 길을 향해 들어선다. 유일하게 우리의 거부감을 정당화해줄'인간'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탓이다.
152쪽
인본주의가 '인간'을 다시 복원한다면, 우리가 우리의 공동체를 결성할 줄 안다면, 그리고 이 결성을 위해 우리가 가장 효율적이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도구인 '희생'만을 사용한다면, 나는 가장 강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는 이 문명이 세운 바대로 그렇게 우리의 이익만을 결집시켜 놓은 집합체가 아니었다. 이 공동체는 우리들의 헌신이 모인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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