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새단장하고 재개관한다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40여년 만에 찾은 간송미술관은 깔끔은 하나 정취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네킹이 서 있는 듯 했고, 옛날에 아기자기한 정원과 나무들이 모두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자갈이 깔린 앞 쪽은 음료수를 마시고 쉴 수 있는 파라솔이 4개 정도 있었고, 뒷편은 주차장이어서 너무 이상했다.
길도 6차선으로 바뀐 큰 길에서 걸어올라가는 길만 그대로였다. 성북초가 없었더라면 찾지도 못했을 것 같았다.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작은 글씨는 잘 보이지 않았다.
2층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친일파 민영휘 칠순을 기리는 12쪽 병풍이었다. 당대 내노라 하는 서예가와 화가들이 한쪽씩 글과 그림을 써서 그를 기리고 있는 거였다. 그동안 봐온 병풍 중 가장 파격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세한도>나 한 번 더 보려나 했는데 일제 시대 전후로 해서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이 대다수였다. 모두 변했는데 마루 바닥만 그대로 였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고, 없던 엘리베이터가 생겨 작품을 오르내리게 하는데는 수월하겠다 싶었다. 마상천앵도와 금강전도 두 그림을 사오고, 논문 2권과 간송미술관 수장품 목록을 샀다. 책이 두껍고 무거워서 메고 다니느라 남편이 애썼다.
간송미술관을 내려와 큰 길 사거리에서 중국집이 보였는데 꽤 비쌀 것 같은 곳이었다. 아주 너른 홀을 보니 손님이 꽤 많은 모양이다. 삼선 간짜장을 시켜서 맛나게 먹었다. 좀 비싸긴 했는데 불맛을 느낄 수 있었고 하얀 단무지를 주어서 좋았다.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려서 길상사까지는 걷기 어려울 것 같아서 택시를 탔다. 처음에는 걸으려고 했는데 안 걷기를 잘했다. 옛날에도 큰 길에서 아주 멀었던 기억이 있던 터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 성북동 이모부 환갑 기념을 길상사가 되기 전 '대원각'이라는 요정일 때 넓은 안마당이 있는 안채를 통으로 빌려서 손님을 맞았을 때 가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성북동 이모네 갈 때마다 대문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대문 앞에는 수위 같은 사람들이 아주 멋진 제복을 입고 지키고 있었다. 그 뒤로도 길상사가 된 뒤에 몇 번 갔었다. 잔향이라는 기생 김영환과 백석, 그리고 법정스님까지. 천억이 넘는 대원각을 절로 만들어 달라고 보시 하면서 남들이 놀라니까 '백석의 시 한줄만도 못하다'라고 했다는 풍문이 전해지는 곳.
어릴 적 대원각은 어마 어마하게 넓은 곳이었다. 술내, 여인들의 분내, 기생들의 화려한 옷차림새와 꾸밈새가 강렬해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마침 초파일이 지난 뒤라서 그런지 등이 수천개가 걸린 듯 했다. 예전에 절에 가서 연꽃잎 붙여서 만든 등은 비닐 포장이 되어 있어서 웃음이 났다. 일손이 귀한거지. 수공업으로 안하고 모두 공장에서 찍어낸 등으로 하는 세상이니까.
아직도 예전에 요정이었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담장 사이를 연결하던 문, 계곡에 독채로 앉혀진 다리 따위가 분내나는 서울 최고의 요정이었던 곳이라는 것을 넌즈시 알리고 있다. 마당에 고운 모래가 깔렸는데 풀이 하나도 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해서 보니 그렇다. 그리고 해우소에 신을 벗고 드나드는 것도 기억에 남았다. 남편과 모처럼 좋은 여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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