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면 가지 않겠다고 했고, 화요일 '책읽는 밤씨앗' 독서토론이 밤 9시부터 있어서 좀 걸렸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아주 흐렸고, 걷기에는 후덥지근해서 결국 겉옷을 벗어 허리에 감고 다녔다. 모자도 쓰지 않아서 머리도 엉망진창이고, 옷차림도 몰골이지만 절은 고즈녁했다.
올라갈 때는 사람들이 적었다. 12시 정도였다. 두 시간 좀 넘게 운전을 했다. 주차장도 한산하고 입장료도 받지 않아서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대웅전의 비로나자불 손이 처음 보는 자세여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20년 전 가족 여행을 다녀온 기억에는 울타리 근처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담장을 넘어서 크고 탐스러운 꽃을 수북하게 쌓으며 자태를 뽐냈던 기억이 나는데, 아니었다. 철조망 근처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었고, 꽃들이 다들 송이가 아주 작았다. 아픈 가지들도 있고, 약을 뿌린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대신 동백꽃 숲이 좀 더 울창해진 듯하고 여기 저기 더 심어 모양을 낸 품새다.
내려가며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를 들으며 갔다. 가사 내용을 보니 떠나는 님이 동백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못 떠났으면 하는 기원이 담긴 것이란 생각에 " 좀 모자란 사내네" 했다. 꽃보고 안 떠날 님이면 떠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웅전을 반대편에서 앉아 바라보다 사진에 담았다. 웅장하고 단단하다. 석탑을 상두를 다시 덧댄 것 같았다.
7일에 동백꽃 축제를 한다고 하는데 아마 인산인해일 듯하다. 내려오는데 벌써 관광버스가 여러대 왔다가 가는 모습을 보았다. 고속도로 주차장에는 수십대의 버스에서 상춘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어구이로 늦은 점심을 먹고 습지, 작은 책방 등이 눈에 들어오는데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