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는 잊힐 수 없다.
- 고은 복귀사태에 부쳐
최영미 시인이 고은의 성폭력 사실을 밝히고, 최영미 시인에게 제기한 손해배상 1, 2심에서 고은이 패했음에도 고은은 여전히 당당하다. 2018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실린 고은의 입장문에서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겠다는 듯이 고은은 실천문학사에서 두 권의 책을 내며 복귀했다.
이 황당한 복귀에 대해서 문학신문 뉴스페이퍼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99.2%의 응답자가 고은의 활동 재개를 반대하였다.
하지만 성폭력 가해자가 복귀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복귀를 한다면 언제부터 가능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논쟁은 ‘가해자 동정론’으로 가기 십상이다. 우리는 가해자가 ‘어느 시점’에 돌아올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가 피해자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피해를 피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과 공동체 내의 권력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공간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반성 없는 가해자를 어떤 제재도 없이 복귀시키는 실천문학사의 무감각함에 통탄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를 일언반구 없이 진행하며, 문학업계를 ‘사과 한마디 없이도 가해자 자신이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만약 그가 복귀의사를 밝혔다면, 그에게 명예와 권력을 줬던 모든 주체들은 피해자에게 사과 없는 가해자의 복귀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을 했어야 한다. 실천문학사는 고은의 복귀의 조건으로 피해자에게 해야 할 사과나, 사과 없는 복귀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확인했어야 한다. 고은의 복귀는 수많은 미투가 있었음에도 그가 잠시 ‘떠난’ 것일 뿐, 문단계 권력의 최고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문단내_성폭력을 고발했던 사람들과 고은 시인의 성폭력사실을 공개한 최영미 시인의 용기는, 문단 내 성폭력이 중단되도록 위계적인 구조를 없애는 것을 향해있었다. 2018년 미투(#Metoo)는 성희롱 발언에, 성폭력 상황에 문제제기 하면 등단을 할 수 없고 책을 낼 수 없는 현실을 살아냈던 그들이, 이를 더는 묵과하지 않겠다는 함성이었다. 그 용기들이 모여 성폭력방지를 위한 장치들과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성폭력/성희롱을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사안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게 하는 법률은 수많은 사람의 미투(#Metoo)가 모여 만들어진 결과다.
그런데 성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어렵게 모여온 이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고은의 복귀는 여전히 문단 내에 있을 가해자들에게 ‘이 정도는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고은은 1980년 『실천문학』의 설립멤버이자 편집책임으로 있었다. 그리고 실천문학사에서 이번 신간을 냈다.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천문학사는 자신들을 “진실을 가리는 부당함에 굴종하지 않는,”이라 설명하지만, 그 진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굴종하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무감각함 덕분에 고은의 ‘평생의 전기와 지혜’가 담겨있다며 홍보되는 책에는 성폭력 가해자라는 한마디 없이 ‘전 지구적 시인’으로 이름 붙여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등 유명 서점에 진열되고 있다. 고은이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죄를 부정하고 침묵하는 고은은 이제라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에 무책임하게 대응하고 있는 실천문학사도 고은 복귀사태의 무게를 깨달아야 한다. 고은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당신의 죄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2023년 1월 12일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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