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성장소설’은 문학시장 블루오션
2010 03/09ㅣ위클리경향 865호
ㆍ이야기와 형식 다양화 청소년 독자 감성에 부응
성장소설 트렌드
성장소설이 문학 시장의 주류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기폭제 구실을 한 것은 이해 출간된 <완득이>(창비)다. 2007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출간 후 불과 7개월 만에 15만 부 넘게 팔려 나가며 성장소설 시장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 줬다. 성장소설은 이후 줄곧 순풍을 탔다. <직녀의 일기장>(현문미디어) <열일곱 살의 털>(사계절) <위저드 베이커리>(창비) 등이 잇따라 히트 상품 대열에 오르면서 성장소설은 문학 시장의 확고한 블루오션으로 자리 잡았다.
성장소설 강세를 견인한 힘은 청소년문학상이다. 지난 2003년 사계절청소년문학상(사계절)과 푸른문학상(푸른책들)이 만들어지고 2007년 창비청소년문학상(창비), 세계청소년문학상(세계일보), 블루픽션상(비룡소) 등이 한꺼번에 제정되면서 해당 문학상을 통해 발굴된 작가들이 성장소설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새 성장소설들은 청소년 독자들의 수요에 기막히게 부응했다. 전쟁과 가난이 남긴 상흔이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이전 시대 성장소설은 우리 시대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환경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다. 흔히 성장소설로 분류돼 필독서 목록에 올라 있는 서양 작품들은 문화적 배경도 이질적일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까다롭게 여기는 수준의 작품들이다. 이 빈자리를 채운 새로운 성장소설들은 어떤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까.
가장 최근인 2009년 청소년문학상 수상 작품들로 대상을 한정할 경우 우선 주인공들이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위저드 베이커리> <나는 할머니와 산다> <파랑치타가 달려간다>(비룡소)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교 1학년이다. 대상을 2008년에 출간된 수상작들로 넓혀도 사정은 비슷하다. <완득이> <하이킹 걸즈>(비룡소) <직녀의 일기장> <열일곱 살의 털> <꼴찌들이 떴다!>(비룡소)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작가들이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을 예상 독자로 설정할 때 문학적 상상력을 더 원숙한 수준에서 풀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경향은 이야기의 재미와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청소년과 성인을 막론하고 폭소와 눈물을 동시에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은 <완득이>는 뛰어난 이야기 솜씨로 연극으로까지 제작됐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빵집을 배경으로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의 형식을 두루 차용하며 기존 성장소설에 장르소설의 문법을 도입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착한 대화>(문학과지성사)는 오로지 대화만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속도감 있게 전개한 작품이다. 다루는 소재 또한 두발 단속(<열일곱 살의 털>), 청소년 노동 문제(<꼴찌들이 떴다!>), 밴드 활동(<파랑치타가 달려간다>) 등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 속으로 밀착하고 있다.
윤소희 동화작가는 <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에 기고한 글에서 “그동안은 한두 가지 경향으로 치우치면서 이야기의 폭이 협소했으나 이제 청소년문학은 다양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성장소설 50선
성장소설 읽기는 어떤 작품으로 시작해야 할까. <학교도서관저널>은 이런 궁금증을 가진 교사와 청소년, 학부모들을 위해 국내외 성장소설 50권을 선정했다. 그 가운데 20권을 소개한다.(50권 목록은 표 참조)
똥깅이 (현기영, 실천문학사)
소설가 현기영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그의 대표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청소년 버전이다. ‘깅이’는 바닷게를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으로, ‘똥깅이’는 작품 속 화자 ‘나’의 별명이다.
‘나’는 ‘제주 4·3사건’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원경으로, 아버지와의 불화와 연극 공연 같은 개인적 에피소드를 근경으로 하는 시간대를 통과하면서 코흘리개 아이에서 첫사랑과 성적 호기심에 눈뜨는 사춘기 소년으로 자란다. 한국 시사만화의 한 획을 그은 박재동 화백이 일러스트를 그렸다.
에네껜 아이들 (문영숙, 푸른책들)
조선인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일본제국의 한반도 병탄 야욕이 거세지던 1904년 1030명의 조선인들이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야만적인 강도의 노동과 인권침해다. ‘에네껜’은 이들 조선인 노동자와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이다. 100여 년 전의 조선인 이주노동자들 모습에 우리 시대 한국의 아시아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겹쳐 읽는다면 다문화 시대에서 공존의 윤리를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열일곱 살의 털 (김해원, 사계절)
제6회 사계절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여기서 ‘털’은 ‘머리털’이다. 온순한 모범생이던 일호는 열일곱 되던 해 학교 체육 교사가 아이들의 머리를 폭력적으로 밀어버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두발 규제에 항의하는 ‘문제아’로 변신한다. 이발사인 일호의 할아버지는 재개발에 반대해 국가를 상대로 투쟁한다. 두발 단속을 매개로 기성 세대가 주조한 부당한 현실을 은근한 유머로 비꼰 작품이다.
키싱 마이 라이프 (이옥수, 비룡소)
10대의 성을 소재로 삼았다. ‘인생 깔끔하게 살자’는 좌우명을 가진 고1 여학생 하연은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한 뒤 덜컥 아이를 밴다. 낙태할 용기도 없지만 이미 그러기에도 늦은 상황. 하연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로 작정한다. 10대 여자 아이의 임신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그렸다.
환절기 (박정애, 우리교육)
위안부였던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살아가는 소녀 가장의 이야기다. 세상의 냉대와 가난 속에서 그야말로 전쟁 같은 삶을 치르는 소녀의 이야기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소녀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 (신시아 라일런트, 사계절)
주인공 서머가 메이 아줌마의 죽음 이후 닥친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뉴베리상, 보스턴글로브 혼북상,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우수 청소년 작품상, 스쿨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올해의 최고 우수작 등에 뽑힌 작품이다.
꽃섬고개 친구들 (김중미, 검둥소)
꽃섬고개라는 이름의 작은 산동네에 사는 한길과 선경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초등학생에서 20대 청년으로 자랄 때까지 겪는 일들을 그린다. 주인공 한길이 양심적 병역 거부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 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한겨레출판)
인왕산 자락에 사는 소년 동구가 1977년부터 1981년 사이에 겪는 일들을 그린다. 이 시간대는 현대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시기다. 박정희 정권 붕괴와 신군부 등장이 소년 동구의 시선으로 포착된다.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난독증이 있는 소년 동구의 일상과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얽혀 들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낭기열라)
뚱뚱한 몸매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소녀 에바의 이야기다. 김나지움(인문계고)에 다니는 에바는 하우프트슐레(실업계고)에 다니는 남학생 미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에바가 겉으로 보이는 조건에서 오는 심리적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부모와의 갈등, 성적으로 인한 고민 등 만국의 10대들이 겪는 보편적인 갈등과 함께 그려진다.
순간들 (장주식, 문학동네)
주인공인 고등학교 2학년 성만은 상주에서 대구로 전학오면서 성적이 곤두박질친다. 좌절한 성만이 가출해 전국을 떠돌면서 겪는 일들이 이야기의 뼈대다.
험난한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성만은 꺾이지 않는다.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열림원)
드물게 보는 아프가니스탄 작가의 작품이다. 아프간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아미르는 하인의 아들 하산과 절친한 사이였지만 아미르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한다.
30대 후반의 아미르는 2001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내정 중인 아프간으로 돌아온다. 성인이 되어 돌아온 고국에서 아미르는 어린 시절 곤궁한 처지에 빠진 하산을 모른 척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격렬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두 소년의 우정을 그렸다.
우리들의 스캔들 (이현, 창비)
한 교실에 모인 중학생들의 시끌벅적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의 사이버 문화를 생생하게 담았다. 비밀카페 ‘0250 비밀의 방’을 통해 교사 폭력 동영상이 퍼지면서 학교 전체가 들썩인다. 아이들은 교사 폭력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자신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는 법을 익힌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아름드리미디어)
첫 출간 후 10년이 지나고서야 호응을 얻었다. 다섯 살 때 부모를 잃고 체로키족 인디언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산에 들어가 살았던 꼬마 ‘작은 나무’의 이야기다.
1991년에 17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서점이 판매에 가장 보람을 느낀 책’이라는 취지로 주는 제1회 애비상을 받았다.
스피릿 베어 (벤 마이켈슨, 양철북)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러 외딴 섬에 갇히는 형벌을 받게 된 15세 소년 콜 매슈의 이야기다. 콜 매슈는 외딴 섬에서 만난 인디언 노인을 통해 자연 속에서 인내와 겸손, 용기를 배운다. 분노와 상처로 멍든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기차역 너머에 바다가 있다 (유타 리히터, 문원)
<내 이름은 개>로 유명한 유타 리히터의 작품이다. 버림받은 아이들의 우정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배경에는 가정폭력으로 해체된 가족과 소외계층의 문제 같은 어두운 현실을 깔았다. 서정적이고 동화적인 문체로 아이들의 두려움과 꿈을 담아 냈다.
연작 소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최시한, 문학과지성사)
청소년의 진로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고등학생 선재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학교와 집과 학원을 왕복하며 청춘을 탕진하는 학생들의 고통을 일기 형식으로 담았다. 2004년 출간 당시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수지 모건스턴, 웅진주니어)
작가 수지 모건스턴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 알리야와 함께 써 나간 릴레이 일기다.
동일한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엄마와 사춘기 딸에게 서로 소통하는 법을 일러 준다.
리버보이 (팀 보울러, 다산책방)
할아버지의 죽음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열다섯 살 소녀 제스의 이야기다. 수영에 재능이 있는 제스에게 있어 화가인 할아버지는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리버보이’는 제스가 강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소년이자 할아버지의 마지막 그림 소재다. 소녀의 눈으로 생명과 자연, 죽음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위험한 마음 (호우원용, 바우하우스)
대만 작가의 성장소설이다. 중학교 3학년인 정지에는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보다 걸려 일주일 동안 복도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이 단순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학교의 비리가 폭로되고 교육청 앞 학생들의 시위로까지 이어진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대만 교육의 현실은 마치 한국 교육 현실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았다.
4teen (이시다 이라, 작가정신)
‘네 명의 10대들’에 관한 이야기다. 성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열네 살 소년들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만나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린다.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중학생 데츠로, 모범생 준, 조로증에 걸려 병원을 들락거리는 나오토, 거구의 대식가 다이 등 개성 강한 네 아이들이 휴대전화·자전거·포르노·힙합에 빠져 보내는 1년 동안의 일들을 연작 소설 형식으로 담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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