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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청소년 문학

[특집]학교도서관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특집]학교도서관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2010 03/09ㅣ위클리경향 865호

ㆍ학교도서관저널 창간, 양서 서평 제공 도서관활용 방안 제시

갈수록 삭막하고 치열해지는 교육 현장. 학생들의 부담도 그에 비례해 커진다. 그러나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에 시달리면서 일류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경우에도 기초실력이 과거의 학생들에 비해 오히려 뒤떨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에는 미국 14개 명문대에 진학한 1400여 명의 한국계 학생 가운데 44%가 중도 탈락한다는 논문이 발표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결국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니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 나아가 공부에 대한 매력과 즐거움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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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 특집에 실린 ‘학교도서관에 파리 날리게 하는 방법’의 일러스트.

이런 교육 현장을 살리기 위해 학교도서관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2003년 사서교사·담당교사·학생·학부모·출판인·독서운동가 모임 등의 연대 단체로 출범한 학교도서관운동네트워크(학도넷)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현장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동안 3000억원을 들여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전국의 학교도서관 설치율이 94.1%까지 높아졌다.

15개 출판사 공동출자로 발행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학생 1인당 책 보유량이 미국은 25.9권, 일본은 20권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2권에 불과하다. 교실 한 칸에 책 500권만 있으면 학교도서관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독서활동과 교과 연계 수업을 도와 주는 사서교사의 수는 625명으로, 전국 1만1000개 학교 가운데 5.56 %(2008년 4월 기준)만이 사서교사를 두고 있다.

사서직원과 비정규직을 합치더라도 31.5%에 불과하고, 나머지 68%의 학교는 일반교사나 학부모 도우미들이 도서관의 운영 책임을 맡는다. 교육과학기술부와 각급 교육청이 학교 운영 예산의 3~5%를 자료구입비에 쓰도록 편성 지침을 내리지만 현장에서는 원활한 신간 공급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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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을 타개해 보자는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어린이·청소년책 가운데 양서를 선별해 서평을 제공하고 학교도서관의 활용 방안이나 연계 수업 모델을 제시하는 잡지인 <학교도서관저널>이 올 3월 창간호를 냈다. 이곳은 웅진씽크빅·김영사·창비·보리·비룡소·문학동네·사계절·뜨인돌·시공사 등 15개 출판사가 출자하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이 발행인을 맡았다.

9개 분과위원회별로 도서 추천

그런데 이곳의 주역은 주주회사도 발행인도 아닌 뜻있는 교사, 독서운동가, 독서교육 전공자, 나아가 일반인들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를 창립 초기부터 이끈 어린이책비평가 조월례씨, 전국국어교사협의회에서 활동해 온 박종호 한성과학고 교사, 작가 박상률씨 등 40여 명이 편집위원과 도서추천위원으로 합류했다. 또 60여 명의 서평위원이 책을 추천하거나 추천위원회에서 선정된 책의 서평을 쓰는 일을 맡는다. 한기호 발행인은 “<학교도서관저널>은 학교도서관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면서 “암기하는 지식보다 창조하는 지식이 중요해진 시대적 요구에 맞춰 도서관을 중심으로 학교 교육을 바꾸자는 게 우리 잡지의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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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에 발행한 창간준비호 및 이번에 나온 창간호의 표지.

이 잡지는 방학 기간인 1·2월과 7·8월에 발행하는 합본호를 제외하고는 매달 한 권씩 일 년에 열 권을 발행한다. 책 검토 및 원고 작성 기간을 감안해 두 달 전 신간을 중심으로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각각 문학·인문사회·자연과학환경생태·예술문화체육기타 등 4개 분야로 나누고 어린이그림책을 추가해 9개 분과위원회별로 검토한 뒤 전체 추천위원회에서 확정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문가들의 선별을 거쳐 500자, 3000자의 서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책은 매달 60~70권에 이른다.

조월례 도서추천위원장은 “교육제도 안에서 운영되는 학교도서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살아있는 느낌을 주고 싶다”면서 “교육의 본질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학교도서관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책이 들어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학교도서관저널>이 목표로 삼는 1차 독자는 전국의 학교도서관이다. 도서구입비가 책정되더라도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망설이거나 담당교사 또는 교장의 취향에 따라 편파적인 수집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린이·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잡지를 통해 좋은 책을 고르는 눈을 키우고, 자녀들과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바람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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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창간호에서는 학교도서관 이용 수업,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학교도서관 운영 팁, 학교도서관에 파리 날리게 하는 방법 등으로 구성된 특집 ‘봄바람이 불면 학교도서관에 가요’를 다뤘다. 또 학교도서관 활성화의 관건인 사서교사 배치 문제를 제기하고, 광주 화정초등학교 도서실이나 용인 밤토실도서관 등 운영이 잘되는 학교·공공 도서관을 탐방했다. 역사만화에 대한 진단도 눈길을 끈다. 9개 분야별로 도서추천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새책 정보는 매달 실리는 고정꼭지다. 추천위원이나 서평위원들의 서평이 실린다는 점에서 출판사의 일방적인 홍보 공세를 막아낼 수 있다.

특히 창간호는 국내외 성장소설 50선과 2009년 신간 가운데 9개 분야에 걸쳐 뽑은 7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을 별책 부록으로 제작했다. 성장소설의 경우 최근 ‘영 어덜트’란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한 청소년책 시장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신간·구간을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뽑았으며, 전문가들의 분석 글도 실었다.

700권 추천도서 목록 부록 제작

한편 전년도 추천도서 목록은 당초 분야별로 100권씩 900권을 목표로 했으나 700권에 그쳤다. 전년도 추천도서 목록은 앞으로 새 학년이 시작되는 매년 3월호에 나올 예정이다. 조월례 추천위원장은 “학교도서관에서 연간 도서 구입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많은 추천도서 목록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잡지는 2만5000부를 찍어 창간호의 경우 전국 학교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한다. 제작비용은 모두 광고비로 조달했다. 이후에는 권당 1만원, 연간구독 10만원으로 유료화한다. 그동안의 학교도서관운동이 단체를 중심으로 정책연구 및 제안, 인식 개선, 심포지엄, 교육, 추천도서 목록 발표 등 비상업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데 비해 <학교도서관저널>은 잡지사업의 형태로 공공성을 담아내는 실험을 하고 있어 향후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학교도서관저널을 만드는 사람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마련된 <학교도서관저널> 편집실은 지난 7개월 동안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으레 잡지 창간 작업이 그렇기는 하지만 이 잡지의 경우 워낙 많은 사람이 관여한 탓이다.

20100303000854_r.jpg<학교도서관저널> 창간 준비를 위해 회의를 하고 있는 편집·도서추천 위원들.

학교도서관네트워크(학도넷)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잡지 창간을 논의해 오던 이들은 지난해 7월 말 첫 모임을 가졌다. 학도넷 공동대표인 한기호 발행인을 비롯해 조월례 추천위원장, 백화현 교사(봉원중), 박종호 교사(한성과학고), 송경영 교사(봉림중), 이덕주 교사(송곡여고) 등이 창간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준비위원들은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내용으로 한 잡지 창간에는 동의했지만 추천도서 목록을 발표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좋은 책의 기준이 각자 입장과 취향에 따라 달라지는 데다 자칫 ‘추천권력’으로 변질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책을 갖추는 게 학교도서관을 살리기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큼 추천도서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때부터 편집위원회와 도서추천위원회가 따로 꾸려졌다.

도서추천위원회가 정한 좋은 어린이·청소년책의 기준은 여덟 가지다. 먼저 국내외 책 추천 비중을 반반으로 한다는 것.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출판국이라고는 하지만 어린이·청소년책의 상당 부분이 번역서로 채워져 있어 자칫 정체성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 표현이 쉽고 감동적인 책, 새로운 눈과 관점으로 인간과 사회를 해석한 책, 내용과 형식에서 참신함을 발휘한 책, 문장이 정확하고 우리 말법에 맞는 책을 고르기로 했다. 독자의 정서를 고려하는 한편 책의 완성도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약자에 대한 배려나 나누는 정신을 불어넣고 실천하도록 돕는 책, 편견이 없는 책이 추천도서의 기준으로 채택됐다.

도서추천위원회는 다시 9개 분과로 나눠졌다. 어린이쪽에서는 김혜원 도서관문화살림 대표(문학), 이동림 창원 사파초 교사(그림책), 성희옥 전주 용흥초 교사(인문·사회), 강은슬 대구가톨릭대 강사(과학·환경·생태), 박은하 서울사대부초 교사(예술·문화)가 분과장을 맡았다. 또 청소년쪽은 박종호 한성과학고 교사(문학), 이인문 서울관광고 교사(인문·사회), 김정숙 신도림중 교사(과학·환경·생태), 왕지윤 경인여고 교사(예술·문화)가 분과장이 됐다. 대개 학도넷을 비롯해 도서관·독서교육 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이들이다.

추천위원들은 인터넷과 오프라인 서점을 오가면서 신간을 검토하고 격주마다 모여 추천도서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창간호를 위해 800권 이상의 신간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자원을 받아 모집한 서평위원 교육도 두 차례 진행됐다. 선정된 책의 서평을 추천위원과 서평위원들이 나눠서 쓰는 과정에서도 좋은 신간이 나오면 계속 교체했다. 마감 무렵에는 2주일 이상 편집실을 드나들면서 원고를 손보고 교정 작업을 했다. 이런 모든 작업이 자원봉사로 진행됐으며, 잡지에 실린 원고를 기준으로 원고료를 받는 데 그쳤다.

<학교도서관저널>은 이처럼 열린 편집체제를 더욱 확대해 공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교사 위주인 편집위원회에 출판계·문화계 인사를 끌어들이고, 추천위원도 5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일부 분과는 인터넷 블로그를 활용해 네티즌의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