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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과 옛이야기

<<민담 속의 여성성>> 머리말과 1장 '잠자는 미녀'의 예비적 고찰

- 민담은 어린이보다 성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17세기경까지 이어졌다. 신이한 여성사이기도 했던 민담이 문헌으로 기록이 되면서 천편일률적으로  민담 속 여성의 신이함을 축약 또는 삭제하였다. 
 
- 학문의 정확성을 위해 일부 출판인들은 이야기 '전달자'가 누구였는지 제시하는데, 대부분 농부, 평범한 사람, 무명의 노인, 또는 정신병적 경향이 있는 사람 등이다. 이는 민중의 응축된 원형성을 경험하고 폭넓게 그 경험에 공감한 사람들의 염원이었기 때문에 귀족계급이나 왕족계급들은 '전달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마리 드 프랑스 작가의 '늑대 인간'과 '호랑이 변신(황팔도 이야기)를 견줘볼 때 , 늑대 인간의 아내가 늑대 옷을 태워 변신을 막은 것과  호랑이의 안내가 주문을 담은 책을 태워 변신을 막은 것은 같다. 그래서 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결국 늑대와 호랑이로 떠돌면서 살아간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많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도움이 될터인데, 두려움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저지르는 수많은 불행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정적 아니무스 대신 사랑하는 남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남자가 여성의 마음에 관한 어떤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의 어머니가 감정 발달에 영향을 미친 영향 만큼 나중에 만나게 된 여성 또한 그의 아니마와 에로스 기능 발달에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상처주는 날카로운 말로 심리적 폭력을 가하지 않도록 하라는 남녀 관계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여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문화가 그녀에게 가하는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좀 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양식으로 퇴행해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니무스 관점을 채택하고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 즉 자신의 본성에 관한 불확실성을 보상할 남성적 특성을 개발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 하는 물음에 후자에 가까우나 전자 또한 나를 규정하여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은 것이 '깊은 무의식 수준'에서 여성의 이미지와 남성의 아니마가 함께 용해되어 하나의 심리적인 현실을 이루며 세월에 따라 저절로 천천히 변화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인 것도 이러할진데 수백년 동안 진행한 억압된 여성의 잠재력은 1900년대 초 여성해방이라는 집단적 폭발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에 수긍하였다. 
 
-민담에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화자가 여성이라고 추측되는 반면, 다른 민담에서는 남성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민담에서 실제 여성이 묘사된 것인지 아니마가 표현된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민담을 해석할 때 복잡하더라도 두 가지 방식을 다 적용해야 한다. 해석을 하다보면 어떤 민담은 여성의 입장에서 해석할 때 좀 더 의미가 있고,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별로 드러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프란츠 교수는 그림동화를 해석할 때, 그 이야기가 아니마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좀 더 여성의 입장에서 논의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민담에서 아이들을 '태양'과 '달' 혹은 '낮'과 '새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징이다. 태양과 달의 어머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신들의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추측해야 한다.  (이런 상징을 알지 못하고 단순한 옛날이야기로 치부하면 그 민담에서는 어떠한 것도 심리적 분석이나 해석을 할 수 없는 거였구나. 그래서 단순하고 재미없고 시시한 이야기라고 치부해왔던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신화와 민담의 인물들을 뚜렷하게 묘사되기보다는 좀 더 도식적으로 표현되는데, 레비 브륄은 원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 '집단 표상'이라 하였다. (여기서 집단표상은 외부적인 압력이나 아이콘 정도로 상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민담은 이동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국가나 집단의 의식에만 연관되지 않는다. 민담에 나오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때로 보상적 이념으로 의식에 있는 일방성을 보상하고, 의식을 풍부하게 만들거나 보충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민담이 무의식의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은 보상기능에 대한 통찰을 우리에게 제공하는데, 이는 집단적사고는 무의식의 내용을 표현할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집단적 사고를 모티프나 상징으로 드러낸다)

 

34쪽  민담에 나오는 영웅상은 무의식이 새로운 자아의 태도를 요청하며 만들어낸 상징적 이미지이다. 자아의 태도변화를 요구하는 가장 빈번한 이유는 위급한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근원으로부터 길을 잃은 자아가 어떻게 행동해야 성숙과 자기실현의 과정을 성실하게 겪어낼 수 있는지를 비춰주는 본보기 이미지이다. 자기 실현은 모든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것으로 융이 '개성화'라고 명명한 과정이다. 따라서 이 인물은 한편으로는 자아보다 더 큰 내적 전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신성한 특성을 지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사람이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본보기 자아라는 면에서 평범한 인간의 특징을 가진다. (영웅들의 모험이나, 통과의례, 헨델과 그레텔에서 보이는 그레텔의 성숙)

 

-무의식은 어린이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싶어하며 신경증적 장애를 통해서 견고한 자아콤플렉스를 만들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인다. 무의식으로 부터 나오는 이러한 본능과 건강한 자아를 만들려는 진화적 충동이 없다면, 학교 교육이 어린이에게 제공하는 통찰력도- 집중하는 법과 힘든 걸 이겨내는 법을 배우는- 부적절한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충동은 보편적인 인간 기질로, 자기로부터 나오는 원형이다. 마이클 포드햄은 유년기의 상징들은 의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인생 후반기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무의식을 경청하는데 강조점을 둔다고 서술했다. (곳자왈 나무를 휘감은 식물과의 공생, 갈등이라는 글자에서 보여주는 방향이 다르나 지향점이 같은 것처럼 서로 의지하며 말아올리는 것, 갈등 속에서 성장하는 것 등)

 

-자아는 자기에 의해 형성되는 원형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민담의 남녀 영웅은 자아의 이러한 원형적 측면을 나타낸다. 신경증적, 정신병적 해리를 포함하여 인간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곤란은, 자아가 정신의 전체적 기질과 조화롭게 기능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다. 

 

36쪽  인류가 이뤄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제중 하나는 '건강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즉 전체 인간의 본능적 기질과 조화롭게 기능하는 자아를 발전 시키는 일이다. 

우리가 자기라고 부르는 정신의 전체성은 타고난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발달 가능성이 총집결되어 있는 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갈등, 비극, 해결 등 실제적 의식의 삶이 없으면 이 잠재력은 현실 속으로 들어올 수 없다. 우리의 자아는 잠재되어 있는 심리적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도구이다. 

 

44쪽 개구리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관념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작은 개구리'라 부른다. 개구리는 수생동물이었다가 탈바꿈하여 반만 물에 사는 양서류로 변하기 때문에, 꿈에서는 특히 의식화되려는 경향이 강력한 무의식의 충동을 나타낸다. 

 

46쪽  원형적 콤플랙스들이 언제나 조화롭게 한 사람의 전체 인격에 통합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 충돌할 수도 있고, 심지어 다른 본능적 충동을 밀쳐버릴 수도 있다. 만약에 어느 한 신이 망각된다면, 그것은 집단적 의식의 어떤 측면들이 전면에 부상함으로써 다른 측면들은 상당히 무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 문화 안에서 모성신 원형이 겪어야 했던 운명이었다. 

 

50쪽  자아존중감이 충분한 사람은 그토록 쉽게 상처받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서 확고한 여성은 남자에게 무시당하거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쫒아다닐 때, 그가 고약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친다. 그것이 그녀를 내동댕이치거나 자기 의심에 빠지게 만들지 않는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부괴되는 통제를 남성들보다 잘 소화하지 못한다. - 그들의 본성은 더 심하게 저항한다. 여성적 인격의 발달은 좀 더 자연스럽고 덜 일방적일 필요가 있다. - 이것은 고려될 필요가 있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여성적 요구이다. 

 

54쪽 우리는 우리의 도시 사회가 지극히 기술편향적이며 일방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분열증적이란 걸 잊어서는 안된다. 종종 병든 건 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영혼의 가장 자연적인 욕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문화전체이다. 

한 개인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더 바른 판단을 옹호할 용기를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