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부 속삭이는 잎
2부 심장을 삼킨 나무
3부 파도가 치는 숲
에필로그
32장 338쪽 이야기다. 내가 갖고 있는 표지는 다르다. 양장본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주인공은 윤나인, 이모라는 지모, 친구 미래, 현재와 권도현을 중심으로 하는 송우준, 김민호가 고등학생이다. 권도현 부모는 학원장과 큰교회 목사이고 여기에 박원우 아빠는 상처한 홀아비, 외계인 지모, 미래의 이혼한 여경 김현정, 태권도장 선배 이서구와 김현정, 현재 엄마 , 그리고 마지막 지모네 1층 주인 내외가 나온다.
15명 내외의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은 시종일관 나인이다. 나인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환청인가 생각하는 부분으로 시작하여 알에서 깨어난 또다른 외계인 라현과 손잡고 떠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일단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다. 거기에 사회 이슈를 섞어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산업 폐기물은 브로멜리아드 화원으로 거듭나기, 사학 재단의 비리는 이사장 자식들과 지원하는 아이를 선정해두고 무조건 특별 대우, 거대 목사의 교회운영자금 비리, 동성애도 살짝 언급되는 요한과 미래 엄마와의 관계, 뇌물먹는 경찰들, 식물을 다 죽일 정도의 노동자로 살아가기 바쁜 1층 노인부부,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의 질시 등등, 현실문제를 건드리면서 살인과 학교폭력, 사회부조리, 가면쓴 부부의 속물 등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양념으로 승택이 등장하면서 '누브'족의 이야기가 가미된것도 문제해결을 위한 삽입이고, 누브족에 대한 부족한 해명을 승택을 통해서 지모가 말하기 위한 설정이다. 학교 폭력에 의한 살인이 소재라면 이것을 빛내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로 그 맛을 더했다는 것을 설정에서 잘 알 수 있다.
서사구조는 간단하다. 누브족인 외계인 지모가 9번째 새싹을 심어서 키우고 사람으로 키워가기 위해 누브족과 싸워서 나인을 지킨다는 줄거리다. 나인의 출생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엄마가 아닌 이모라고 부르고 그래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언급한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오는 식물 구매자가 있고, 전세라도 빌릴 돈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외계인이라 어디가서 황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부분이 가장 미진했다. 생활을 할 수 있는 자금 밑천이 어떻게 생성을 하였는지 언급이 없고 슬쩍 넘어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버려진 땅을 쓸모있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외계인의 힘이고 능력이고 재력이다. 지구인이라면 가능했을까? 아무리 싸구려 땅이라고 해도 지모가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그 땅을 샀는지 과정은 알 수 없다. 이미 샀고, 화원을 운영하는데 아무튼 죽지 않는 식물들이라는 것 때문에 전국에서 손님이 온다는 설정도 식물을 잘 죽이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이다. 죽지 않는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또한 산업폐기물을 파내고 그곳에 화원을 짓는다는 설정은 버려진 땅의 오염에 대한 고발이면서도 대안을 제시하는 셈이다. 자연 치유력을 믿고 더 이상 오염하지 않도록 하라는 암시가 숨어 있다.
작가의 생각은 지역 주민들의 인식을 드러내는 부분은 원장의 대사로 살고 있는 구역을 구분 짓는 신흥 계급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말도 안되는 일인지 보여준다. 현실은 이보다 더 할 수 있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처음에 그런 설정이 계속 일본군이 양민학살을 한 '금옥'이 이야기가 나오면서 위안부 문제도 건드리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박원우의 엄마 나무도 지모를 만나 죽지않는 나무가 되었다는 설정도 중간 부분에 삽입되면서 원우가 외계인을 만났고, 외계인이 있다고 믿은 까닭이 나중에야 밝혀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겉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정도 나인을 중심으로 한 미래와 현재의 중성적인 친구 관계도 있는 것이고, 석구와 혜정과의 태권도 사랑이 있는 것이고, 잠깐 등장한 요한과 미래 엄마와의 동성애 애인 관계와 이혼한 아빠를 바라봐야 하는 미래의 시선으로 교차 진술하면서 나인과 쌍벽을 이룬다. 돈으로 맺어진 권도현과 우준과 민호 같은 인생도 있는 것이고, 돈으로는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원우가 있다. 진짜 친구는 원우인데 남들이 뭐라고 수군거린다고 멀어지는 마음이 안타깝고, 허상인 자기 집보다 더 좋은 원우의 진심어린 가정이 더 정상 가족은 아닌지 작가는 단정하고 있다. 더구나 의지할 아무도 없는 원우와 나인이 실종 전단지를 통해 연결되는 부분도 외계인이라서 남달랐다는 뜻일게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 갖기가 측은지심에서 관심으로 의구심까지 갖게 되는 과정에 석구가 원우를 기억하고, 도현과의 친밀을 이야기 하고 그래서 실마리를 갖게되는 측면과 미래가 경찰인 엄마에게 박원우 실종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사건 진행 후반부를 아주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말해지지 않는다고 모를 수 없는 것이고, 다 말한다고 해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승택과 지모, 원우와 도현, 석구와 혜정, 미래와 현재 관계 속에서 여러번 거듭해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상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참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우주를 아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우주를 어찌 속속들이 다 알 수 있겠는가. 거기에는 말할 때를 기다려주는 배려와 섬세한 관심이 필요할 뿐인데 이게 쉽지 않아서 사람사이 관계는 쉽게 깨지고 억측하고 갈라지는 것이라는 것도 미래 부모의 이혼과 원장과 목사의 부부 싸움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청소년 소설에 빠지지 않는 양념인 연애 감정이 동성애까지 살짝 걸쳐 있다. 요한과 미래 엄마, 석구와 혜정, 미래와 현재, 승택과 나인 등이 얽혀 있지만 이런 감정의 흐름을 잘 찾아서 곳곳에 심어준 까닭에 작품의 재미를 더하고 궁금하게 했다.
배경은 선연산, 태권도장, 권도현 방, 학교 흡연구역, 학원이 주 무대이다. 외계인이 주인공인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고교생이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이렇게 제한적이다. 일탈을 한다면 흡연구역, 어쩌다 마시는 술, 여기서는 너무 건전하게 나오는 태권도장이 전부이다. 공간의 협소함이 승택을 등장시켜서 캐나다의 원시림까지 확대를 시킨 부분이 그래서 새롭다.
누브족처럼 사람 사는 것은 어느 행성이나 비슷하다는 설계는 철든 아이가 내리는 결론 같다. 행성을 파괴하고 살 사람만 살아오기 위한 학살은 굳이 다른 행성을 빗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는가. 철거민에 대한 대책, 장애자에 대한 차별, 동성애, 한부모, 가난에 대한 시선 등은 비슷하다 못해 똑같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원우 아빠의 말처럼 , 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의지하고 마음에 품고 서로 보듬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나.
장편이지만 장치를 여기저기 숨기고 나인, 미래, 도현을 통해서 사람살이에 대해 희망을 말하고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나인이 주축이 되어 추리소설처럼 읽어나가면서 사건 종결 부분이 너무 경찰 중심으로 휘리릭 마무리 된 것은 아쉬웠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권도현의 갈등이나, 원장과 목사의 반성, 주변 사람들의 시선 등을 한 번 더 과정 속에서 녹여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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