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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세요, 새책을 소개해요

이야기 1. 사람의 귀가 2개인 까닭은

2000년 초에 있었던 일이다. 1학년 아이들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주기를 작정한 해여서 아이들을 아침에 맞이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거였다. 그 당시만 해도 운동장조회도 있어서, 그리고 교사들 아침 조회도 교무실에서 자주 열려서 아침에 책을 조용히 읽어주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함에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해준 것이 책 읽어주기였다. 

책을 읽어줄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이 우리 그림책을 먼저 골라서 목록을 만들어보는 거였다. 류재수, 정승각, 권윤덕 정도만 알고 있다가 우리나라 그림작가를 찾아보니 참으로 옹색하였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나라 그림작가 한 사람, 외국 그림작가 한 사람 이렇게 하며 목록을 만들어 나갔다. 

책읽어주기를 처음 할 때 목록은 대부분 교사가 주도해서 짰다. 읽어주는 순서도 교사가 정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책을 읽어주었다. 

다만 책을 읽어줄 때 약속은 2가지 있었다. 

1. 듣기 싫으면 듣지 않는다. 

2. 다만 읽어줄 때 소리를 내어 방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이게 뭐지 하는 눈빛이었다. 듣기 싫으면 듣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말하고 있으니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진짜요?" 소리를 여러번 확인한 뒤 개구장이 몇사람이 안 들어도 되는 공간에 따로 나가서 고누놀이, 실뜨기,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읽기 등을 편안하게 하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쭈볏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우르르 나갈 줄 알았는데 처음에만 우르르 나가고 점점 그곳으로 나가는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아이들 선택을 존중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소리를 내어 방해를 하지 않는 이상 그 공간은 자유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약속을 잘 지켜서 크게 소란하지 않았고, 방해를 하는 아이도 없었다. 그 학교는 18학급이었고, 학급당 인원수가 21명이었다. 교실 공간도 여유가 있고 넉넉했다. 

 

그림책을 읽어주자 아이들이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전체 그림을 쫘악 펼쳐서 보여주었다. 그 다음 앞장표지와 뒷장 표지를 쫘악 펼쳐서 이야기의 시작, 주인공의 특징, 이야기 마무리나 중요한 내용이 표지에 담겨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잘 살펴보게 했다. 여기서 주인공이 누구로 보여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정도였다. 굳이 아이들에게 자세한 내용을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궁금증만 가지고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처음부터 구연동화처럼 읽어주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레 읽어주었다. 역할이 바뀌었을 때도 억양을 바꾸지는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구연동화처럼 읽어주다 보면 아이들의 감상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말해주어서 알았을 뿐이다. 주인공 캐릭터가 강한데 구연동화로 그 캐릭터를 강조하다보면 캐릭터만 남게 되고 글 전체에 대한 이해와 음미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구연동화로 안한 것은 아니다. 

 

그 해 예뻐하는 개구장이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일찌감치 자기들은 그림책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집에서 많이 봤단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안들어도 되는 곳에 가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단다. 그래서 속으로는 서운하고 요 녀석들봐라 하는 마음이었지만 약속한 것이라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재미나게 책을 읽어주고 한 줄 소감 발표를 해서 한 주마다 발행한 학급신문에 담아서 주말 안내처럼 집으로 신문이 나갔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안듣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 소감을 서로 말할 때에도 당연히 묻지 않았다. 듣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녀석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왜 우리들에게는 소감을 묻지 않아요?"

"응? 너희들은 안 듣지 않았어요?"

"아닌데......"

" 뭐가요?"

"들었는데."

"어떻게?"

"선생님 왜 귀가 2개인지 말해줄까요?"

" 갑자기 귀이야기는 왜 해요? 말해봐요."

" 으음 왜냐면 놀 때 하나는 친구가 하는 말을 듣는 귀이구요, 또 하나는 선생님 말씀을 듣는 귀라서 2개예요."

"그럼 들려주는 이야기 다 들었다는거예요?"

"네 잘 보지는 못했는데 듣기는 다 들었어요."

"소감 발표 하고 싶어요? 할 수 있겠어요?"

"네."

" 그럼 해보세요."

 

이 때 처음 알았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딴짓을 해도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 뒤에는 안 듣겠다고 하는 곳에 가서 그 시간 동안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하는 것을 하는 아이들에게도 발표 기회를 주었다. 하고 싶으면 발표하라고. 

 

한 달이 지나자 안듣겠다는 공간에 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없애지는 않았지만 있으나마나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해주었다.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는 천사같다고. 

나는 천사가 되고 싶어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날마다 읽어주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들끼리 학급신문에 실린 자기 아이들 소감 한 줄에 목숨을 걸었다는 후문. 그리고 학급신문에 아이들 활동이 소상하게 나가고 사진까지 나가기 때문에 학급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환히 알게 되어서 학부모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챙겨주시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책읽어주는 시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서 

"우리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은 우리 집에 있는 책보다 훨씬 훨씬 더 재미있다."

라고 말해주었고, 심지어 옆반 아이들에게는 

"우리 선생님은 날마다 재미난 그림책을 읽어주신다. 그리고 학급신문도 나와, 그리고 학급문집도 나왔다. 되게 재밌어."

라면서 자랑하는 소리를 복도 지나가다 직접 듣고는 속으로 한참을 웃었다.  가끔씩 그 녀석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