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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돌이킬 수 없는 ‘전기 민영화’, 주민들만 애간장

돌이킬 수 없는 ‘전기 민영화’, 주민들만 애간장
사당동 우성아파트 주민들, “다시 한전에서 전기 공급 받고 싶다”
윤지연 기자 2010.12.17 16:57

지난 10월, 구역전기사업(CES) 지역인 신당동 우성, 신동아, 극동 아파트가 단전 직전의 사태를 맞았다.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전기 공급업체인 케너텍이 한전에 전기료를 체불하자, 한전이 전기 공급 중단 방침을 밝혔기 때문. 다행히 한전은 전기 공급 중단 방침을 철회했지만,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때 아닌 단전 위협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단전 사태가 일어난 지 두 달.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전기’와의 씨름을 벌이고 있다. 업체가 처음 들어왔던 2004년부터 일어난 싸움은 벌써 6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공공서비스재인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주민들이 이토록 고군분투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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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구역전기사업(CES) 지역인 신당동 우성, 신동아, 극동 아파트가 단전 직전의 사태를 맞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구역전기사업 지역 주민들, “우리는 한전에서 공급받고 싶다”

시범적 전기 민영화 사업의 일환인 구역전기사업은, 지식경제부의 허가에 따라 한전이 아닌 사기업이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정책이다. 지난 2004년부터 실시해 왔으며, 전국 11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 사당동 우성아파트 역시 2004년부터 케너텍이라는 업체로부터 전기와 난방을 공급 받아 왔다.

하지만 사당동 일대의 구역전기사업은 초창기부터 업체와 주민간의 갈등으로 삐걱거렸다. 특히 업체의 경영난이 심각해지면서, 케너텍은 자체적 전기 생산을 중단하고 한전에서 전기를 구입해 주민들에게 재판매를 해 왔다. 급기야 지난 10월에는 업체가 한전에 1억 7천만 원의 전기료를 미납하면서, 초유의 지역 단전 사태를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전기’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주민들은 한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기를 원했다.

때문에 우성 3단지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009년부터 올해까지 총 10차례에 거쳐 지경부에 구역전기사업 해지요청을 해 왔다. 케너텍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전기를 한전으로부터 공급 받기를 원한다는 공문이었다.

DSCF2.jpg▲  지경부가 지난 12월 13일, 우성3단지 주민들에게 회신한 공문 

이에 대해 지경부 측은 지난 11월과 12월에 걸쳐 총 두 체례의 회신을 보내왔다. 11월 24일 회신된 지경부의 공문에는 주민들의 구역전기사업 해지 요청에 대해 “제 112차 전기위원회(2010. 11. 25)의 안건으로 상정했다”라는 답변이 들어 있었다. 이어서 12월 13일에 보내온 공문에는 전기위원회의 심의 결과 내용을 통보했다.

지경부는 공문을 통해 “(주)케너텍의 공급구역 변경허가 신청 건만을 검토하는 것보다 (주)케너텍의 사당지역 전체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당지역 전체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즉 사당동 우성아파트 3단지에 한해서만 사업해지 하는 것이 아닌, 사당동 일대의 구역전기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민들은 “결국 지경부의 애매모호한 답변은 한전으로 옮겨주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경부, “허가취소 요건이 없다” VS 주민 “허가취소 요건 충분하다”

한편 사당지역 전체 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힌 지경부는, 사실조사를 벌이는 동시에 전기사업법 개정 역시 염두하고 있다. 지경부 전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공급이 중단됐으면 허가 취소를 하겠지만, 현재 케너텍에 대해 허가 취소와 딱 맞는 요건이 없다”면서 “때문에 사실조사를 하면서 단계적으로 법 개정까지 이르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성 3단지 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미 케너텍에서 10월 12일, 사업변경허가를 신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경부가 이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영 우성3단지 입주자대표회의 감사는 “한전에서는 케너텍에서 에너지변경허가를 해 줘야 한전으로 옮길 수 있다고 누누이 얘기 했다”면서 “하지만 지경부는 케너텍에서 변경허가를 신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변명으로만 일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경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해명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전기사업법 12조에 따르면, 전기위원회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 또는 변경허가를 받은 경우’를 심의하고, 이에 따라 지경부장관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케너텍이 들어오면서부터, 당시 입주자 대표가 담합을 통해 구역전기사업의 수의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한 주민 83.85%의 동의 역시 소유주와 거주자를 구분하지 않고, 거주자를 상대로만 집계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우성3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2005년, 집건법에 의거해 계약 자체가 무효라며 케너텍에 공급 중단을 요청했으며, 케너텍은 주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판결에서 “거주자를 상대로 동의를 받은 결과 83.85%가 찬성했으나, 아파트에 주소를 두지 않은 소유자를 상대로한 우편 동의서를 포함하면 70.29%만이 찬성했다”면서 “결국 70.29%만이 찬성해 공용부분 변경에 관한 사항은 구분소요자 및 의결권 각 4분의 3 이상의 집회결의로써 동의를 얻도록 한 집건법 결의요건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김영영 감사는 “초창기 불법적인 방법으로 케너텍이 들어온 만큼, 전기사업법에 따라 지경부가 허가 취소를 할 수 있음에도 계속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경부, “한전이든, 다른 업체든 케너텍만 아니면 상관없지 않냐”

이 같은 상황에서, 주민들이 다시 한전으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경부에서 종합적인 자체 조사를 통해 케너텍의 허가를 취소한다 하더라도 다른 업체로 사업권이 양도될 경우, 지역 주민들은 또 다시 민간 업체로부터 전기를 공급받게 된다. 전기위원회 관계자는 “만약 케너텍에 대한 허가가 취소됐을 경우에도, 다른 업체로 사업권을 양도하겠다고 하면 해당 업체에 문제가 없는 한 전기위원회에서 승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민들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 받겠다’며 구역전기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지경부는 구역전기사업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기위원회 관계자는 “(구역전기사업이) 전기요금을 더 비싸게 받는 것도 아니고, 지역 난방을 하면서 불리한 점도 없지 않나”며 “지금 주민들 역시 한전에서 (전기를) 받던, 다른 업체에서 받던 케너텍만 아니면 상관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지경부에서 사업 허가권을 내주면 업체가 지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며 “전기 공급이 끊기는 등의 피해가 없는 상황에서 (주민이) 업체에서 받기 싫다고 무조건 한전으로 옮길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체와의 오랜 갈등과 단전의 위협을 겪어온 주민들은, 더 이상 전기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영 감사는 “전기료도 꼬박꼬박 다 내면서 왜 주민들이 마음을 졸여야 하나. 무엇보다 한전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구역전기사업 자체가 현재의 오래된 아파트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영 감사는 “현재 난방은 공급 받고 있지 않지만, 난방까지 공급받기 위해서는 오래되고 녹슨 난방관을 교체해야 하며 교체비용은 60~70억이 든다”며 “개인 보일러를 설치하면 10억 정도밖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 더 효율적이겠나. 난방관 교체비용을 지경부가 지급할 것도 아니지 않냐”며 반문했다.

정부, 전기민영화 확대 방침...‘전기’ 다툼도 확산되나

전기위원회 관계자는 “국회에서도 사당동 문제가 거론이 된 만큼, 법을 개정해서라도 허가받은 업체가 본연의 업무를 하지 않으면 취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역전기사업의 근본적 해결 없이, 업체에게만 책임을 돌릴 경우 사당동 단전 사태와 같은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DSCF3.jpg▲  2004년 케너텍과의 계약 당시, 이익금의 85%를 주민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 

특히 지경부는 업체를 상대로 한 허가권만 내세울 뿐, 업체와 주민간의 계약관계나 분쟁에 관해서는 지속적으로 방관해 왔다. 2004년 구역전기사업을 실시할 당시, 정부와 업체는 ‘자체 생산되는 전기를 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 냈으며, 케너텍과 같은 경우 수익금의 85%를 주민들에게 분배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하지만 업체의 경영난으로 자체 생산이 중단됐으며, 급기야 한전에서 구입한 전기를 주민에게 재판매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또한 수익금의 85% 분배 조건은 한 차례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경부는 ‘허가를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만 내세워 왔으며, 주민과 업체 간의 분쟁은 6년간 지속됐다.

특히 지경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구역전기사업에 뛰어든 31개 업체 가운데, 15개 업체가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발전연료가격이 급등하면서, 발전기를 돌릴 수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아남은 업체들조차 케너텍과 같이 한전으로부터 싼 가격으로 보완전력을 공급받아 주민들에게 재판매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한 업체가 사업을 포기했을 경우, 그 설비는 모두 한전이 떠안게 되기 때문에 한전과 소비자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구역전기사업은 정부의 종합적인 전기 민영화 방침이 일부분으로서, 낮은 수위의 시범적 민영화의 사례다. 하지만 이 사업은 주민과 업체 간의 갈등으로 시작해, 주민과 지경부의 싸움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숙녀 우성3단지 아파트 부녀회장은 “지경부는 내내 이 문제에 대해 ‘사업허가 취소 권한이 없다’고 발뺌해 오다가, 이제는 종합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한다. 결국 한전으로 옮겨 주겠다는 확답을 하지 않은 채, 면피용으로 내놓은 대답이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어서 “현재 전기구역사업 업체 총 31개 중 15개의 업체가 재정 등의 문제로 문을 닫는다는데, 지경부는 이를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끌어안기만 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지경부가 국민의 이익 단체가 아닌, 주민의 혈세를 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집단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강하게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