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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미술관이 된 수영장, 아틀리에가 된 공장

미술관이 된 수영장, 아틀리에가 된 공장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시' 릴은 어떻게 유럽의 문화수도가 됐나
10.01.23 20:28 ㅣ최종 업데이트 10.01.23 21:24 지은경 (liee)

  
릴 보우르세(lille bourse).
ⓒ 지은경

산업혁명이 뜨겁게 일어나고 세계의 대도시들에서 야심 찬 연기를 높은 공장의 굴뚝을 통해 뿜어 낼 때가 있었다. 프랑스 북부의 도시들 역시 거대한 부의 기름 냄새를 풍기며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공장이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유럽으로 옮겨가자 그곳은 활기를 잃고 죽어가는 프랑스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문화의 부흥이 새로운 활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북부 도시 살리기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동네'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북부 릴(Lille)과 그 주변 도시들. 이제는 뜨거운 문화의 교류적 장소이자 유럽의 문화가 새롭게 집결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그것의 시작은 도시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을 동네 주민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단순 명료한 슬로건이었다. 엄청난 예산을 들이거나 사람들의 아우성을 들어가며 시작한 무리한 움직임도 아니었다. 그저 빈 공장들을 작가들의 작업장과 국립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고, 새로운 건축물을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에 걸쳐 짓는 것이 아닌 리노베이션으로 그치는 것이 전부였다.

 

과거의 회색빛 건물들은 현대의 세련된 회색으로 모습을 약간 전환하는 것이 도시 프로젝트의 주 아이디어였다. 우울한 기억이지만 그것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의미 깊은 사고의 전환이 있었다. 이미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로 안전성 있는 방법을 택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신세대의 작가들에게 모험을 걸었다. 제한된 예산으로 시작한 영리한 이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예술 인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여행은 계속된다, 릴 3000(Le voyage Continue! Lille 3000!)!

 

  
여행은 계속된다, 릴 3000(Le voyage Continue! Lille 3000!)!
ⓒ 지은경

도시가 여행을 한다. '사람들이 여행할 수 없으면 장소가 여행하면 되는 것이다'. 한 도시 안에서 끝없는 여행과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난 2004년에 시작한 릴 3000프로젝트는 3000년까지 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목표 하에 만들어졌다. 활발한 문화 교류와 세계적인 넓은 시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일환으로 도시의 한 코너를 이국적인 문화의 장소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1년 이상의 시간을 전시 기간으로 놓아둔다. 그러면 도시는 늘 문화로 꽉 차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과 발달된 교통수단으로 인해 이미 세상은 좁아졌고 자연스레 언어와 풍습, 인종들이 섞여가고 있다.

 

  
유럽의 문화수도 프랑스 '릴'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 지은경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우리의 문명은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가?"

 

이것이 릴 3000의 가장 큰 주제이다. 더불어 한 전시 공간이 아닌 도시를 꾸미는 일이므로 연속성과 역동성을 지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작품들에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반영되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미술의 장르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2007년 'Bombaysers de Lille'은 인도의 문화를 릴에다 그대로 가져다 놓고 그들의 전통 색과 의상, 공연들을 프랑스 현대 테크놀러지와 결합시키는 많은 시도가 있었으며, 2009년의 주제는 'Autour de l'Europe et de ses Frontières invisibles(유럽과 그 보이지 않는 국경들)'에 관한 리포트였다.

 

릴의 가장 큰 미술관 '팔래 데 보자르(Le Palais des Beaux-Arts)'
  
릴의 가장 큰 미술관 '팔래 데 보자르(Le Palais des Beaux-Arts)'.
ⓒ 지은경
팔래 데 보자르

팔래 데 보자르(www.palaisdesbeauxarts.fr)는 릴의 가장 큰 미술관이자 중세와 근대 미술에 이르는 대규모의 컬렉션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과거의 유물만을 소장하는 변화 없는 미술관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키기 위해 분수대 건너편에는 미니멀한 유리의 현대 건축물을 지었다. 이곳은 현대 미술의 흐름과 현존하는 작가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현대 작품이 전시된다. 분수대를 사이로 정반대의 이미지의 건축물을 마주 보게 배치하여 서로 바라보며 반사되는 형상이 매우 독특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 현대가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또한 미술관에서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음악 축제와 연극축제, 그리고 문학과 그 외 다른 여러 가지의 문화 활동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르 뮤제 라 피씬(Le Musee  la Picine, 수영장 뮤지엄)
  
르 뮤제 라 피씬(Le Musee la Picine, 수영장 뮤지엄).
ⓒ 지은경
르 뮤제 라 피씬

릴의 주변 작은 도시인 루베 역시 공장과 삭막한 공공건물들이 가득한 도시이다. 이곳에 1835년 처음 생긴 미술관이 점차 문화적인 쇠퇴로 인해 공장으로, 빨래터로, 급기야는 1980년 수영장으로 변화해 인근 주민들의 놀이터였다가 2000년도부터 재건축을 시작, 수영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미술관의 형태를 창조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았다.

 

1930년대 아르데코 풍의 장식으로 꾸며진 이곳(르 뮤제 라 피씬, www.roubaix-lapiscine.com

)은 과거의 역사의 흔적들을 조금씩 남겨두어 미술관의 변천사 자체가 귀한 이야깃거리가 되도록 의도하였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그림과 조각품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칭송을 받고 있다.

르 프레누와(Le Fresnoy-National Studio of Contemporary Art)
  
르 프레누와(Le Fresnoy-National Studio of Contemporary Art).
ⓒ 지은경
르 프레누와

미술 대학 졸업생들과 신진 작가들을 모집하는 국립 스튜디오 프레누와(www.lefresnoy.net

)는 릴에서 가까운 튀루꾸앙이라는 소도시에 있다.

 

지원자가 2년에 걸쳐 2개의 프로젝트를 제작해야 하는데 심사를 거쳐 채택된 프로젝트 창시자에게는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 제작비를 지원한다. 어려운 기술과 테크닉은 스튜디오에서 테크니션들과 최첨단의 장비로 실현화시키며 지원자들은 단지 새로운 기술과 현대 미술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를 궁리만 하면 된다.

 

2년에 걸쳐 두 개의 프로젝트를 끝마치면 퐁피두센터에서 전시하고 상품화되는 프로젝트의 저작권은 스튜디오와 제작자가 동일하게 나누게 된다. 또한 프로젝트 작업을 하는 동안 작가들과 지원자들에게 스튜디오 주변 남아도는 공장 한 채씩을 작업실로 지원한다.

 

공장은 작가의 아틀리에로 재탄생되고 신진작가들은 최첨단의 테크니션들과 장비를 사용하고 프로젝트 완성 후 자신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할 기회가 생기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제작비는 정부와 릴 시, 튀르꾸앙 시에서 지원하며, 영화 감독 장뤽 고다르와 첸 카이거, 채명량, 작가 볼탕스키 등이 이곳의 초청교수로 젊은 작가들을 만나고 갔다.

 

거대한 조건을 제시하는 스튜디오이므로 매년 세계 각국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지원자들이 몰려든다. 이를 통해 튀르꾸앙은 활기를 띠는 도시로 성장해가고 있으며, 미술 분야 외 공연과 영화 분야의 움직임 또한 더불어 활발하게 일고 있다. 


도시,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

 

  
릴은 유럽의 문화가 새롭게 집결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거리 예술가들의 모습.
ⓒ 지은경

현재 서울을 비롯한 많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의 손길들이 하나둘씩 행해지고 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작가들을 초청하고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을 짓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문화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과 인간의 무던한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두 가지의 길 중간에서 발전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어떤 것이건 우격다짐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도모하기 위해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거나 계획에 끼워 맞추려 들기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을 향한 끝없는 짝사랑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발전인지, 그리고 무엇을 바꿀 것이며, 또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지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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