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의 무지가 국가의 위기를 불렀다"
[김상수 칼럼] 역사학자 이이화와의 대담
기사입력 2009-04-15 오전 11:28:48
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이고 백성인데 어제 밤 비행기로 베를린에서 파리로 날아왔다. 앞으로 석 달간은 베를린에서 예정된 연극 공연 준비와 파리에서의 미술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기 위해서 베를린과 파리를 오가며 지내게 된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 내려서 파리 시내 Cite International D'arts 작업실에 도착하자 밤 열한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대강 씻고 서울서 파리로 부쳐온 책 꾸러미를 풀었다. 이이화(72·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역사학자가 쓴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10권, 김영사 펴냄). 보내온 세 권의 책 중에서 먼저 두 권을 밤새 읽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되는 인물 29인의 내력을 담은 <파랑새는 산을 넘고>와 이승만 박정희·김일성 등 현대 정치인을 다룬 시리즈 마지막 열 번째 책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를 다 읽자 창밖으로 파리의 아침이 밝아왔다. 잠깐 눈을 붙이고 샤워를 하고는 작업실을 나섰다. 발걸음이 '화합의 광장'이라 이름붙인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으로 향했다. 광장 한가운데 섰다. 건축가 가브리엘의 설계로 1753년에서 1763년에 걸쳐 건축된 이 광장은 당시 루이15세 광장이라 이름이 붙여졌지만 국왕 루이 16세의 폭압에 시달리던 프랑스 전 민중이 들고 일어났던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혁명광장'이라고 불려졌다. 루이 15세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목을 자르는 단두대(Guillotine)가 그 자리에 설치됐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뚜아네트의 목을 프랑스 민중들은 잘라버렸다. 몸뚱어리와 '모가지'를 이등분으로 분리 즉사시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쳐든 프랑스 민중들은 '프랑스만세'를 불렀다. 프랑스 민중 개개인의 존엄성과 동등한 인간의 권리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루이 16세의 목을 자른 민중들의 역사행위는 신분제의 철폐와 프랑스 국가공화정치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몇 해 전인 1789년 7월 14일 정치범이 수용되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한 그 날은 혁명 기념일이 되었고 이 날이 바로 프랑스 국경일이다.
프랑스 민중들의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루이 16세가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다가 국경 근처에서 발각되어 시민군들에 의해 파리로 이송된다. 프랑스인들은 자국민들을 외면하고 적국의 나라로 피신하려던 사람을 자기들의 입헌군주든 절대군주로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당연히 루이 16세의 모가지는 킬로틴에 베어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역사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왕 선조는 전쟁이 터지자 중국으로 얼른 도망가겠다고 허둥거렸다. 백성이야 죽든 말든 야반도주 하면서도 자신의 임금 자리는 지켜야 하겠기에 한 명의 장수가 절실하고 아쉬운 전쟁의 와중에서도 왜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의병장 김덕령을 죽이고 이순신과 곽재우도 죽이려고 음모를 나서서 꾸몄다. 이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적행위였다. 이게 조선 왕 선조였고 당시 백성들은 의주로 피난 가는 왕의 가마에 돌팔매질을 했지만 딱 거기서 끝났다. 선조의 가마를 세우고 선조를 꿇어앉히고 목을 잘라야 옳았다. 이게 조선의 역사여야 했다. 이런 못난 왕이 다스린 조선은 백성 입장에서 본다면 그 때 망했어야 할 왕조였다. 그런데 이런 왕조가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300년이나 더 끌었다. 이후 1862년 봉건체제의 억압을 타파하기 위해 일어났던 조선농민들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나라를 지키고자 싸웠지만 왕의 세력들은 도리어 일본군을 끌어들여 나라를 지키겠다는 농민들의 충정을 처절하게 짓밟았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농민군 지도자들인 전봉준 등의 목을 댕강 댕강 마구 잘랐다. 피아(彼我)가 거꾸로 뒤집혔던 것이다. 프랑스가 세계 2차 대전 이후 나치 정권에 협력한 정계, 사법계, 재계, 특히 언론계와 방송계의 숙정을 무섭게 진행했다. 나치협력으로 숙청된 죽은 사람은 1만 명에서 10만 명까지 추정되며, 특히 나치에 협력한 언론, 문인, 군 장교와 경찰관들은 아주 가혹하게 다루었다. 루이 16세 모가지를 기요틴으로 자른 나라의 역사는 이랬다. 한국은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자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최근의 사실에서 보듯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힌 전두환 노태우 등을 김영삼은 법정에 끌고 가 법정에 세웠지만, 법대로 집행하지 않았고 흐지부지 풀어주고 말았다. 이런 역사니 정의나 법원칙은 무너져 내렸고 나라는 계속 착란의 혼돈으로 빠져든 것이다. 이게 한국 역사다. 세상에! 제 나라의 백성을 노예로 삼아 짐승같이 취급해 매매를 하고 상속까지 했던 나라는 조선 말고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어느 나라든 노예는 있었지만 그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이거나 다른 민족이었다. 제 동족을 노예로 가렴주구(苛斂誅求)했던 나라란 제대로 성한 나라가 절대 아니었다. 한 사람, 한사람, 인간이 같은 동족으로 같은 백성인데. 뉴라이트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란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6.25 전쟁이 터지자 '서울을 지킨다'는 거짓 녹음방송을 틀어놓고 자기만 먼저 남쪽으로 줄행랑을 쳤고 대통령직을 통한 권력을 놓지 않겠다고 전쟁 중에 피난을 가서도 갖은 술수를 획책했고 이후 정적(政敵)이라 여긴 정치인들은 억지죽음으로 사형까지 시켰다. 이런 자를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란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까지 됐던 노무현은 지금 부패까지 의심받는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노무현을 뽑았던 시민들의 의식과 정치현실은 너무 큰 괴리가 있었다. 조악한 관념과 섣부르고 서툰 정치는 가꾸고 지켜야 할 민주주의를 내팽개치고 또 다른 기득권층을 흉내 내는 것으로 채워졌다. 낡은 사고가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고 확연한 구상과 실천이 노무현에겐 거의 없었다. 이런 지난 10년의 김대중 노무현의 실정의 경과와 반동(反動)은 오늘 날 이명박의 등장을 초래했고 민주주의 위기(危機)까지 불러오는 현실이 됐다. 콩코드의 광장이 일러주고 있다. 철학과 사상이 없고 권력의지만 있는 집단과 패거리 정치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를. 콩코드 광장의 하늘에 사선(斜線)으로 전투기가 날았다. 긴 자국을 하늘에 남기고 사라졌다. 난 사진으로 찍었다. 푸른 하늘에 조국 프랑스를 외치던 프랑스 민중의 함성은 오늘 프랑스 역사의 면면을 날카롭게 똑바로 세워 현실 삶의 추동력(推動力)으로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게 역사다. |
총체적으로 '미친 현실'에서 역사란
김상수 : 이이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직 선생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이렇게 이메일을 통해서나마 멀리 프랑스 파리에서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선생님과의 이메일 대담은 출판사 김영사의 안내로 선생님의 책 <인물로 읽는 한국사>를 읽고 진행하게 됐습니다. 지난달에 출간된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를 끝으로 10권으로 마무리된 선생님의 '역사 인물' 시리즈에는 인물이 260여명이나 등장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등 현대 정치인을 다룬 열 번째 책과 정치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주인인 민중의 목소리를 담은 여섯 번째 책 <파랑새는 산을 넘고>를 어제 밤새 읽고 저는 신열(身熱)이 다 났습니다.
우리내부의 적(敵)
특히 오늘의 현재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나날의 삶에서 희망을 말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지난 시절 군사 독재 시대에 우리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다치거나 심지어 죽었습니다. 안타까운 생(生)들이 무차별로 희생당하면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이행을 조금씩 진전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명박 집단의 정권이 들어서서 오늘의 우리 사회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 혼란과 총체적으로 '미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정당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敵)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요? 나는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오늘의 현재가 있기까지 역사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역사란 단순한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역사는 우리가 왜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제대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역사의 중요성은 더욱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입장에서 역사는, 또는 역사란 무엇인지요?
이이화 : 역사를 크게 정의한다면 인간이 면면이 걸어온 도정(途程)을 정리해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도정에는 굽은 길도 있었고 곧은 길도 있었으며 들판도 있고 비탈도 있었습니다. 그 다양한 모습을 어떤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가치를 부여한 것이지요. 역사를 이해하지 않으면 과거의 사실은 암살에 갇혀있게 되어 전혀 볼 수 없으며 현재의 뿌리와 발전 단계, 미래의 보이지 않은 질서를 상정할 수가 없습니다.
김 선생님의 말대로 우리 역사의 경우, 너무나 고난에 차 있었고 오도와 왜곡이 점철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현실문제는 그런 토대에서 전개되었기에 새로운 모순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김상수 :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 책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모순이 첨예하게 얽혀 있으며 갈등과 대립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처럼 "광란의 시대"가 긴 시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더욱이 오늘 날에는 이른 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두하며 독재자를 건국 또는 개발 영웅으로 받드는 풍조마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태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부조리한 역사인식 무지의 사생아 - 뉴라이트
이이화 : 개항을 강요당한 이후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경제침투를 일삼았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주권을 유린했습니다. 이에 유럽 또는 일본식 근대화를 추구한 세력인 개화파가 있었고 철저히 주자학적 척사위정론을 내세워 반외세를 외친 전통유학파가 있었고 봉건모순을 타파하고 침략세력에 맞선 농민집단이 있었습니다. 이 세 세력은 현실 대처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그 결말은 끝내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모순을 맞이했습니다. 식민지 35년을 겪고 난 뒤 우리 힘으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했습니다. 강대국에 의해 한반도의 분할이 결정되어 미국과 소련이 진주했습니다. 결국 민족분단은 역사를 반토막낸 것입니다. 이에 19세기보다 더욱 민족 내부에서 첨예하게 여러 세력이 대결을 벌였습니다.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시기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이데올로기에 따른 인권유린, 동족간의 잔인한 살상 등, 비극이 연출되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 국가를 성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남한의 경우 미군정 당국의 정책에 맹종하는 정치세력들이 친일파를 옹호하고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거나 소외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서 반공주의와 경제발전을 내걸고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이들 정l권의 하수인들이 한국의 주류를 형성해 왔습니다. 민주세력이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룩해 절차민주주의를 실현시켰으나 미완성의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독재정권의 잔당들 - 신친일 세력과 극단적 반공주의의 실체
다시 독재정권의 잔당들이 정권을 잡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친일세력과 극단적 반공주의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하나의 사생아를 탄생시켰습니다. 곧 '뉴 라이트'들이 중심이 되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제창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주장은 일본의 지배 아래에서 한국이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론적 근거는 계량경제학에 두었습니다. 의료 혜택으로 인구가 늘고 생산 공장을 세워 경제발전을 꾀했다는 따위입니다. 식민지 수탈의 본질, 민족역사의 유린, 분단의 원인 제공 등에 대해서는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거나 외면합니다.
이들은 더욱 비약해서 식민지 근대화의 계승자인 이승만 박정희를 우리 역사의 주인공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지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
김상수 : 역사에 있어서 동학농민혁명은 아직 역사의 사실과 바른 모습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랑새는 산을 넘고>의 책에서 밝혔듯이 그 책에 실린 '29인의 삶'은 역사 발굴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발굴은 더 광범위하고 더 체계화되어야 하고 제대로 기술되어 역사로 전수(傳受)되어야 합니다. "농민군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봉건의 모순을 스스로 청산"한 혁명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핏속에 젖어들고 있지 못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요?
이이화 : 동학농민혁명세력이 청산하려고 했던 역사적 과제는 양반 상놈, 그리고 종과 백정, 또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상, 그리고 관권의 부정부패 척결에 두었습니다. 밑으로부터의 변혁입니다. 또 외세 침탈에 맞서 자주 국가를 지향하려 하였습니다. 기득권을 영구히 누리려는 기득권세력은 이들 농민세력을 압제했고 주권을 유린한 일본세력과 손을 잡고 농민들을 적으로 돌렸습니다.
정의가 죽고 사행(邪行)이 판치는 사회
농민들은 의병에 가담하기도 하고 도망 다니면서 살았고 그 후손들도 조상의 행적을 숨기면서 겨우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의 행적이 자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필자는 100여년이란 세월을 탐문하며 이들의 행적을 주어 담거나 꿰다시피 찾아서 발굴해야만 했습니다. 역적이란 누명을 벗기려 100주년을 맞이해 명예를 회복하는 법률을 제정케 하고 국가의 지원 아래 선양사업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반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득권세력의 끈질긴 외면과 방해, 그리고 역사분칠과 여론 가공 등은 아직도 현실입니다.
▲ 전봉준. @김영사 |
민중이 나서서 모색한 새로운 길
김상수 : 당시 조선의 왕조는 백성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민중은 "새로운 길을 모색" 했고 역사의 줄기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썩은 왕조와 외세의 침탈"은 국권 찬탈과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줄곧 대리전쟁(代理戰爭)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 그리고 나라의 분단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민주주의 위기까지 불러일으키는 실정입니다. 역사에 있어서 역사성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체계화합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어떤 정신으로 오늘 날 살아있는 겁니까?
동학농민혁명정신과 프랑스 혁명정신
이이화 :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구현하려 했다면 동학농민혁명은 평등과 자주를 지향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은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외세의 침탈을 받은 역사적 조건이 달랐습니다. 당시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이 없었다면 조선왕국은 농민군의 손에 넘어졌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비록 제도로는 신분차별이 사라졌으나 불평등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외세에 의해 자주권이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정부패의 만연, 빈부격차의 가속 등이 현실의 모순으로 존재합니다.
동학농민군 정신은 이를 바로잡는 데에 하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상의 실현을 위해 쉼 없이 한발 한발 내디뎌 나갑니다.
김상수 : 거짓과 위선, 갖가지 술수와 음모가 이승만의 모습입니다. 선생님의 책에서 "역사의 순리"를 거역한 이승만의 행태가 여실하게 고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왜 이승만을 택했고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김구 선생 등 민족주의자들은 해방공간에서 국군한테 총 맞아 돌아가시거나 암살을 당했으며 합법을 가장한 살해로 마감할 수밖엔 없었을까요?
시대정신을 오도한 독재자 이승만
이이화 : 이승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잡고 지속시키려는 독재자요 위선자입니다. 해방공간에서 혼란과 대립이 가중되고 분단구조 아래에서 정부가 수립되었더라도 헌법이 보장한 민주가치와 민주공화제에 충실했더라면 한국에는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웠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정신을 오도한 것입니다.
▲ 이승만. @김영사 |
미국은 신식민지와 다름없는 대한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철저한 추종자요 반공의 화신인 이승만을 하수인처럼 내세웠던 것입니다. 통일 민족국가를 지향한 여운형, 김구, 김규식, 조봉암 등은 때로는 이용만하고 소외시켰던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이승만과 그 하수인들은 민족통일세력을 제거한 것입니다.
'민중'은 역사에 기만만 당할 것인가
김상수 : 선생님의 책을 읽다보면 민중의 희망이 어떻게 배신당했는가가 잘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비통한 심정이 드는 것은 왜 역사의 운명은 항상 한국의 '민중'을 기만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역사의 중요한 고비 고비마다 왜 '민중'은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까, 슬픔이 끝이 없습니다.
정의와 진리를 향한 역사
이이화 : 역사는 정의를 위해, 진리를 위해, 이상을 찾아 진전합니다. 그 반동세력은 이 전진을 늘 방해하고 압제를 가해왔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것까지는 없을 듯합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에는 많은 갈등이 존재하지만 지역, 종교, 종족의 이해에 따른 내전이나 대량학살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다만 더욱 추슬러서 참된 민주가치를 실현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입니다.
독재자 박정희와 김일성
김상수 : 박정희와 김일성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철저하게 오욕(汚辱)의 역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경제발전을 이끌었다는 이유만으로 박정희가, 그리고 항일만으로 김일성의 죄가 상쇄될 수는 없을 겁니다. 박정희와 김일성의 엄밀하고 냉정한 평가는 아직 없습니다. 이제는 김일성과 박정희에 대한 제대로의 평가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정희에 대한 찬양, 그리고 김일성의 죄악(罪惡)과 우상화도 이제는 그 진실과 허구를 드러내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정희. @김영사 |
북한의 권력세습 - 역사의 반역행위
이이화 : 두 인물에 대해 필자는 책에서 무척 객관성을 의식하면서 평가하려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인간 또는 지도자에게는 양면성, 그리고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입니다. 두 지도자는 평가 기준이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개발독재라는 이름 아래 절차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훼손했고 많은 사람을 죽여 인권을 유린했습니다.
김일성의 경우, 그가 사회주의자 이전에 열렬한 민족주의자였으나 때로는 경제발전의 주역노릇도 했고 때로는 학살자로도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한 우상화작업과 자식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세습의 실현은 역사의 왜곡 정도가 아니라 반역적 행위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학자나 문학인들이 두 사람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할 시대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끝나지 않은 역사 - 청산해야만 하는 거짓들
김상수 : 역사의 인식에 있어서 무지는 어리석음, 광기, 무자비, 허위, 죄악으로 점철되면서 국가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 역사인식의 혼돈과 부재는 국가 정체성까지 흐리게 하는 문제로까지 내닫는 실정입니다. 특정한 입장이나 신념, 관점, 주의, 주장들을 앞세우고 나섰지만 기득권자들은 자신들만의 얕은 이익을 위해서 역사를 모욕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게 역사는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가치여야 할 터인데 그 바른 길은 무엇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겁니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이이화 : 제가 "끝나지 않은 역사"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무언가를 시사(示唆)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청산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고 실현해야 할 과제도 있습니다. 흔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마구잡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 나서 "역사에 맡긴다."거나 "후세의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고 말들 합니다. 역사는 그런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역사는 엄숙하고 냉정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구현하는 인간의 노력이어야 하는 겁니다. 미래사회는 무엇보다 인권이 존중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해야만 할 것입니다.
인간, 시민, 국민
김상수 :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리고 시민이고 국민이어야 합니다. 법을 통한 다스림보다는 정의에 대한 외경심(畏敬心)부터 길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민중'들의 기나긴 삶의 역정이란 자연의 섭리(攝理)에 기초한 삶이었습니다. 제도와 법 이전에 인간으로의 가치를 문제 삼았고, 사람의 도리(道理)를 캐물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경이 시작의 출발이고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참담한 역사로부터 우리는 구제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이이화 : 법은 정의를 실현시키는 도구라는 말을 새삼 빌릴 것도 없이 인간들이 룰을 정해놓고 지키자고 약속한 계약서입니다. 그러니 만인이 그 앞에서는 공평한 것이지요. 그러나 말씀하셨듯이 그에 앞서는 것이 인간 존중의 가치입니다. 인간을 존중하게 되면 다른 민족이나 종족을 차별하거나 압제하지 않게 되며 자연도 아낄 줄 알게 됩니다.
국가폭력과 상처
김상수 : 선생님의 책 <끝나지 않은 역사 앞에서>는 현대사의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아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지금과 같은 폭력과 상처로 살아가게 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 삶의 정신적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이유도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도록 씌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게 됩니다. 식민주의나 자본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세계화를 비롯한 서구의 이데올로기는 많은 나라들을 거의 비슷한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그들은 근대화와 멸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강요당했고, 경제와 사회는 왜곡되고, 인간으로는 실존에 이르는 측면에서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개인의 삶과 사회의 구조는 강제적으로 재편 개조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은 거의 대부분 폭력으로 일관됐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우리는 이런 폭력이 일상처럼 지속될까, 하는 겁니다.
이이화 : 본래 식민지근대론의 제창자는 식민지 경영에 몰두한 영국이나 일본 학자들과 정치가들이었습니다. 제국주의 폭압을 옹호한 것입니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처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역설로 이 현상이 오늘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와 동남아아시아로 번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권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폭력은 국가폭력이든 집단폭력이든 청산해야할 과제입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는 그것을 주장하고 추구한 이상과는 달리 폭력의 전위 대열에 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현재의 천주교 교황도 아프리카에 대한 천주교의 종교적 압제를 부정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깊이 반성할 대목입니다. 사회주의 맹주인 스탈린의 숙청행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오랜 대결은 인류의 비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깨워야 할 기록문화의 가치
김상수 : 선생님의 역사에 대한 글쓰기는 역사를 공부하고 인식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지배집단의 역사가 무시해온 민중의 역사를 복원하면서 정치사 중심의 역사 기술로부터 사상, 생활, 그리고 인물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리고 감추고 애써 외면한 것들까지 들추어내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짜이념'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는 역사를 대중들에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머물고 있는 유럽에서는 지난 역사의 논의란 그 깊이와 넓이에서 벌써 오래전부터 다양하고 방대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안 커쇼가 집필한 2789페이지의 저서 <히틀러>는 두말 할 필요도 없고, 역사 속 인물들의 수많은 전기와 평전들은 입체적인 방식으로 당시의 시대와 인간들을 들여다보게 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역사 출판현실은 너무나 빈약합니다. 사회 전반에 기록에 대한 습관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조선시대 이후 현대로 오면서 기록문화의 전통은 유실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까닭이 다 있겠지요. 이제는 정말 사회 전반에 기록문화가 갖춰져야 하고 그런 토대나 현실을 계속 문제 삼아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대담 감사합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이화 약력 1937년 대구 출생 73~76년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겸 국역실장 77~80년 서울대 규장각 해제위원 81~82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 86~96년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소장, 계간 <역사비평> 편집인 89~94년 동학농민전쟁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1년 단재상 2005년 임창순 학술상 2008년 허균학술대상, 출판대상특별상
저서로는 '허균의 생각' '한국의 파벌' '조선후기정치사상과 사회변동' '역사풍속기행' '한국사이야기(전 22권)'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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