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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잡리스- '우리반 반장 임영박'

"'노래하는 미네르바'로 불러주세요
풍자노래 한다고 잡아간다면 촌스럽죠"
[인터뷰] '우리반 반장 임영박' 패러디송의 주인공, '잡리스'
09.04.14 10:28 ㅣ최종 업데이트 09.04.14 12:25 장일호 (ilhostyle)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라고 노래하며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너도나도 어려움을 토로하는 요즘, 정부가 내놓는 각종 정책은 안 그래도 신산스러운 보통 사람들의 삶을 뿌리부터 쥐고 흔든다.

 

작고한 미국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는 "유머는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풍자의 시대다. 그리고 그 풍자의 1순위는 단연 이명박 정부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을 비롯해, 사이버 모욕죄 입법 추진 등 누리꾼들의 입단속을 위한 각종 규제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풍자는 정보의 바다를 도도하게 부유한다. 전설의 섬 '명박도'·닌텐도를 능가하는 '명텐도' 등을 비롯한 각종 패러디물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선사했다.

 

그간의 풍자가 언어유희와 패러디물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이들의 풍자는 다소 낯설고 색다르다. 그 주인공은 '잡리스(Jobless)'. 아직까진 대중적이기 보다는 소수의 고급문화로 인식되는 '성악'이 바로 잡리스의 무기다. 최근 그들이 부른 노래가 담긴 UCC(손수제작물) 두 편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8일, 스스로 '노래하는 미네르바'라 칭하는 잡리스를 만났다.

 

(☞ 우리반 반장 임영박 뮤직비디오 바로가기)

(☞ 내 나이 서른 하고도 네 살 뮤직비디오 바로가기)

 

이거 분명 웃긴 노랜데... 왜 이리 슬프지

 

  
잡리스는 재치있는 노랫말로 진지하게 노래한다.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씁쓸하다. '우리반 반장 임영박' UCC 캡쳐.
ⓒ 잡리스
잡리스

"내 나이 서른하고도 네 살 왜 아직도 용돈 타 쓰나

그건 내가 실업자기 때문 어떡하죠 구해줘요 임영박!"

 

애절하게 노래하는 프로젝트 그룹 잡리스는 세종대 성악과 95학번 동창인 김우섭, 엄태호 두 사람을 주축으로 결성됐다. 이들의 데뷔곡인 '내 나이 서른하고도 네 살'은 웨스트라이프 버전으로 광고에 삽입돼 우리 귀에도 익숙한 시크릿가든의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의 멜로디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현실'을 가사로 덧입힌 곡이다.

 

물론 노래하는 두 사람 외에도 함께 잡리스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더 있다. 두 보컬을 제외한 네 명 정도가 영상제작 및 반주, 홍보 등을 돕고 있다. 지원자가 있다면 팀원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충원할 생각이다(☞ '노래하는 미네르바' 잡리스 클럽 바로가기). 김씨는 "이 활동은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많이 공유하기 위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자신의 목소리를 대중의 편에 내려놓는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기도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노래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 현재까지 잡리스의 이름으로 공개 된 UCC 두 곡 중, 히트곡은 단연 영화 미션(Mission)의 주제가인 '넬라 판타지아'를 개사한 '우리 반 반장 임영박'이다.

 

"거짓말 했다며 학생부에 끌려간 친구 / 책상 빼앗지 말라 하다 맞아 죽은 친구 / 영박이가 그랬죠 / 우리 반을 위해 어쩔 수 없댔죠 / 나는 알아요 / 임영박 친구 강부자 고소영 위해 그랬다는 걸."

 

그들은 농담처럼 노래한다.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과장된 몸짓, 위트 넘치는 노랫말에는 비극이 숨어있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거짓말했다며 학생부에 끌려간 친구'인 미네르바나 '책상 빼앗지 말라 하다 맞아 죽은 친구'인 용산 철거민들은, 그들이 주목하는 비극의 한 장면일 뿐이다. 그들이 건네는 농담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아무리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노래한다지만, '공안정국'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엄씨는 "벌써부터 '사식 넣어 줄 테니 걱정 말라'는 친구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나 김씨는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 몇 곡에 왈가왈부하는 대한민국이면 너무 촌스럽다"며 "더 이상 촌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혹시 모를 '외부의 압력'에 대해 의연한 모습이었다.

 

아직도 용돈 타 쓰는 실업자는 아니지만...

 

  
잡리스의 엄태호(좌)씨와 김우섭씨. 15년 지기 오랜 친구인 이들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 장일호
잡리스

잡리스는 그들 노래의 가사처럼 '아직도 용돈 타 쓰는 실업자'는 아니다. 사람들이 "백수라야 재밌는 거 아니야?"라고 되물으면서 아쉬워하기도 한단다. 현재 김우섭씨는 결혼식장에서 축가 및 연주해주는 일을 하고 있고, 엄태호씨는 소규모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업과 상관없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 키워드가 실업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잡리스가 청년실업을 주제로 삼아 노래하는 것은 당연했다. 성악과 출신의 김우섭씨는 "대학시절 후배들에게 '우리는 점수에 의해 학교나 학과를 선택하는 사람에 비해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알고 결단을 내린 용감한 사람'이라고 격려했지만, 사실 성악과는 과히 '실업자 양산소'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자조한다.

 

김씨는 졸업 후 대학원 및 연구소 등을 거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에도 손을 댔지만 실패를 경험했다. 엄태호씨 또한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와 할 일이 마땅치 않았다. 엄씨는 대학 졸업 후 현재 해체된 국립오페라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다가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그들이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예술도 '생계수단' 될 수 있어야 한다"

 

  
'내 나이 서른하고도 네 살'의 영상 중간에도 삽입된 바 있는 리코더 연주를 즉석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 장일호
잡리스

그래서인지 최근 해체된 국립오페라합창단원들을 바라보는 잡리스의 시선은 한층 더 애틋하다. 김씨는 "거리공연 하는 단원들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며 "문화예술 발전시키겠다고 하면서 검증된 오페라단을 없애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노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의 동업자 의식은 잡리스에게도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아직 구체적으로 팀에서 조율된 의견은 아니지만, "약 60일 정도 이어지고 있는 음악투쟁에 대해 그들의 음악으로 정리하는 음반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할 수 있다면 함께 뜻을 모아 가칭 '음악진흥위원회' 같은 민간단체를 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음악 그리고 예술은 "'생계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김씨는 "우리들끼리만 만족하자고 음악 한 것 아니다"라며 "아름답고 유능한 인재들을 공유하면 삶이 행복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립오페라합창단을 비롯한 예술인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 촉구를 잊지 않았다.

 

"대학 축제에 서고 싶다... 성악 버전 가요도 부를 수 있다"

 

  
지난 4일 국제반전행동 집회에서 무대에 선 잡리스. UCC로 공개된 두 곡외에도, 거위의 꿈과 오솔레미오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 잡리스
잡리스

UCC로 누리꾼을 만나는 일 외에도, 무대에서 직접 사람을 만나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 4일에 있었던 국제반전행동 행사의 데뷔 무대를 신나게 설명하며 "사람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16일에는 '언론개혁시민연대 후원의 밤' 무대도 선다. 그밖에도 불러주는 곳은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다.

 

김우섭씨는 "특히 대학교 축제 무대에 서면 정말 의미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밝혔다.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을 응원해 주고 싶다"는 게 이유다. 학생들이 원한다면 "성악버전으로 가요도 부를 수 있다"며 즉석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곧 새로운 곡도 공개할 예정이다. 청년실업자의 취업기를 다룬 내용과, 국립오페라합창단 해체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곡이 준비돼 있다. 곡의 주제는 무겁지만 앞서 공개된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즐거워야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재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각자의 생업 분야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믿는다"며 "희망과 행복으로 가사가 가득할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세상을 가지고 노는 광대로서 세상에 지면 예술가가 아니다"라는 결의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기대된다. 세상을 갖고 노는 이 광대들의 경쾌한 다음 발걸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