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내용 2008년06월23일 제716호
★ 10대는 ‘이명박 정부 향한 분노’ 때문에 촛불을 켰다
★ 단호한 촛불을 든 소녀들
★ 불 붙일 바람불까 불 끌 바람불까
★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10대는 ‘이명박 정부 향한 분노’ 때문에 촛불을 켰다
<한겨레21>과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 촛불집회 참석한 중고생 333명 최초 면접조사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촛불집회 10대 참가자 면접조사]
2008년 태초의 촛불은 그들이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10대의 촛불에서 시작됐다. 10대의 촛불은 20대, 30대, 40대로 세대를 넘어선 촛불에 불길을 댕겼다. 그리고 촛불은 40일 넘도록 꺼지지 않고 있고, 최초의 발화자이자 촛불의 주체인 10대의 참여 또한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2008년 촛불의 광장은 ‘촛불 세대’를 낳았다.
△ 2008 촛불집회에 나온 다양한 10대의 모습. 그들은 촛불의 선구자였다.
‘광우병 이후에도’ 촛불 계속되야 67%
촛불이 이어지는 동안 10대들의 생각은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고 단편적인 인터뷰 등을 통해 그 일단을 들여다보려는 언론의 시도가 이어졌다. <한겨레21>은 한발 나아가 이들을 대상으로 최초의 체계적 면접조사를 벌였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소장 박길성 사회학과 교수) 갈등연구센터와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는 6월14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 333명(중학생 33.8%, 고등학생 66.2%)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번 조사연구의 책임을 맡은 김철규 갈등연구센터장(사회학과 교수)은 “촛불집회를 촉발한 10대 참여자의 특성과 의식에 대한 객관적인 측면들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촛불 소녀(여학생 70.6%)와 소년(남학생 29.4%)에게 43개 항목에 걸쳐 물었다. 그대는 왜 촛불을 켜셨나요?
먼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촛불을 들게 되었나. ‘처음 촛불집회에 나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6.1%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고 응답한 비율(14.0%)을 훨씬 상회했다. 갈등연구센터는 “적어도 조사 시점인 6월14일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촛불집회 참여 계기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 밖의 응답으로 ‘TV, 신문 등 매체의 정보를 접하고’(13.7%), ‘온라인 (집회) 생중계를 보고’(4.0%) 등이 나왔는데, 이러한 대답은 광우병 문제와 관련돼 있다. 따라서 이들은 광우병 등 복수의 원인이 결합돼 촛불을 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앞으로의 촛불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조사에 응한 10대는 쇠고기 문제 해결 뒤에도 촛불은 꺼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을 들게 된 이유가 광우병 하나가 아니라고 응답한 것과 맥락이 닿는 결과다. ‘만약 쇠고기 협상이 타결될 경우, 다른 현안에 대해 촛불집회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7.0%가 ‘예’라고 응답했다. 그래서 ‘쇠고기 협상 관련 집회가 끝난 이후, 다른 이슈에 대한 집회가 있다면 어느 정도 참여하겠느냐’라는 질문에도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였다. 교육 문제(0교시 수업, 영어몰입 교육 등) 67.8%, 한반도 대운하 62.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1.7%, 공기업 민영화 60.8% 순서로 집회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훌쩍 넘었다(그래프1 참고). 10대 사이에서도 촛불의 의미가 쇠고기 이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재협상 안되면 대통령 퇴진!” 70.8%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태도도 단호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추가 협상 또는 재협상이 이뤄진다면, 최소한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절반을 넘어선 57.5%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또는 2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이라고 응답했다. 제시된 4개 선택지 중에 가장 강력한 조처를 가장 많이 지지한 것이다. 반면 정부의 협상안인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는 민간 자율규제와 한-미 양국 정부 보증’은 8.6%에 그쳤다(그래프2 참고). 요컨대 정부의 안으로 미국과 협상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집회에 참여한 10대는 쇠고기 협상을 정권의 존속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쇠고기 재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 퇴진운동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70.8%가 동의한다고 응답했다(그래프3 참고). 이처럼 촛불 소년·소녀의 의지는 명확하고 강경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촛불 소녀와 소년은 누굴까? 이들은 성적에 대한 걱정이 많고, 장래 진로에 대해 관심이 많은 평범한 학생으로 보인다. ‘평소(촛불집회 이전) 자신이 어떻다고 생각하는지, 또래 친구와 비교해 말해달라’는 질문에 88.5%가 ‘장래 진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 75.8%가 ‘학교 성적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라고 응답했다. 또 평소 자신의 건강(67.7%)과 먹을거리 안전(67.4%), 사회 현실(70.7%)에 대한 관심도 또래에 견줘 높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친구관계, 가정생활, 학교생활 등에 대한 만족도도 50%를 넘을 만큼 긍정적인 성격의 집단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한민국(만족도 31.1%)이나 사회 현실(만족도 10.2%)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표1 참고). 현재 우리 사회 소득분배에 대해서도 ‘매우 불공평하다’(26.1%), ‘약간 불공평하다’(38.7%)고 응답해 다수가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평소 ‘각종 사회적 집회 참여 활동’ 경험에 대해선 53.9%가 ‘거의 없다’고 응답해 촛불집회를 통해 첫 사회 참여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 조사로 학교 성적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최상위 8.8%, 상위 17.8%, 중상 39.9%, 중간 21.1%, 중하 9.7%, 하 2.7%로 응답했다. 주관적 응답이긴 하지만, 이들을 성적과 계층이 떨어지는 학생들로 몰고 가는 일부의 견해와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10대는 누구와 함께 촛불집회에 나오고 거리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이들의 ‘배후’는 386세대 부모도, 전교조 교사도 아닌 ‘친구’였다. 지금까지 집회에 같이 참여한 사람으로 학교 친구(74.8%)가 압도적 다수로 꼽혔다. 온라인 커뮤니티(9.1%), 학교 외 동아리(4.7%) 회원과 같이 나왔다는 사람은 예상보다 적었다. 또래 집단의 강력한 영향력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데 가장 영향을 끼친 대표적 사람’을 묻는 질문에서도 드러났다. 51.7%가 ‘학교 친구’라고 응답한 것이다.
한편 집회에 계속 참여하는 이유에 대해 ‘시민의 의무로 생각하기에’가 58.0%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집회 문화, 놀이 등 새로운 체험’(8.2%), ‘재미있어서’(2.6%) 등은 소수로 나타나, 이들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줬다. 여기에 주관식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대딩’들의 놀자판 분위기와 MT 분위기”를 비판하는 학생도 있었다. 또 촛불시위 도중 불만 사항으로 “10대들이 재미로 참여하는 걸로 오해하는 게 기분 나쁘다” “밤샘 시위 때 어리다는 이유로 집에 가라고 종용할 때” 등을 꼽기도 했다.
66.5% “성적은 중상 이상”
집회 현장에서 이들의 참여 범위는 어떨까. ‘보통 촛불집회에 나와서 어떤 활동에 참여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거리행진’(45.7%), ‘연단행사와 거리행진’(23.5%), ‘연단행사’(17.5%) 순으로 응답했다. 거리행진에 참여하는 비율이 70%가량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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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성년인 10대로서 촛불집회 현장에서 느끼는 불만은 없을까? 촛불집회가 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는 70.2%, 자신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있다는 응답은 60.6%로 비교적 만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에 83.7%가 동의했다. 요컨대 이들은 촛불집회에 시민적 의무로 계속 참여하고 민주주의 발전 기여에 긍지를 느끼고 있다.
다만 ‘촛불집회가 처음보다 순수하지 못하다’는 지적에 36.3%가 ‘동의’해 ‘동의하지 않음’(29.7%)보다 약간 높았다. 청와대 행진에 대해서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47.1%로 많았다. 이러한 결과는 비폭력에 대한 강조와 맥락이 닿는다. ‘촛불집회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돼야 한다’에 압도적 다수인 90.6%가 동의했다. 한편으로 폭력 유발자는 공권력이란 공감대도 뚜렷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 폭력 발생의 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2.8%에 이르렀다. 이렇게 비폭력은 촛불 세대의 감수성으로 자리잡았(그래프3 참고).
이렇게 비폭력 저항의 거리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래서 촛불집회 참여 뒤 변화를 물었다. 정부(80.2%), 미국(69.6%)에 대해 더 비판적 태도를 가지게 됐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반면 ‘애국심이 커졌다’(79.9%), ‘민주적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79.8%)고 응답한 비율도 높았다(표2 참고). 권력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이면에 국가에 대한 긍정적 정체성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김철규 센터장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애국심은 위로부터 시작된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며 “촛불집회는 전혀 다른 풀뿌리 결사체적 방식으로 중고생들의 애국심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이해진 박사도 “촛불집회 참여는 개인화돼 경쟁과 학업에 묻혀 있던 중고생들에게 사회적 쟁점에 대해 성찰하는 시민의식과 참여민주주의를 배우는 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촛불 든 후 61% “자기 만족도 높아져”
한편 촛불집회 참여 이후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응답도 61.0%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회적 차원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에서도 촛불집회는 긍정적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철규 센터장은 “촛불집회 참여 학생들이 광우병 의제에 대해서 학습도 하고 고민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태도와 정치적 지향이 성인이 된 뒤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주목된다”고 말했다.
촛불 세대의 마음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분노에서 촛불을 들었고, 쇠고기 재협상에 대해 원칙적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촛불은 쇠고기 문제 이후에도 꺼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보수신문이 묘사하듯 성적과 계층이 낮은 특정한 집단의 청소년이 아니라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집회는 학교였다. 이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애국심과 시민의식을 키우게 되었고, 정권과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가 강해졌으며,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교육받는 대상에서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나선 10대의 가슴에 촛불의 기억은 오랫동안 지우기 힘든 화인으로 남을 것이다. 10대의 민감한 손으로 들었던 촛불은 사회 참여의 첫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꺼져도 기억은 남는다.
아고라·문화방송·한겨레·경향 vs 조·중·동
어느 매체 통해 정보 얻나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촛불집회를 계기로 확산된 ‘안티 조·중·동’ 흐름이 명확히 나타났다. ‘각 매체가 촛불집회와 관련해 10대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문화방송과 더불어 <한겨레> <한겨레21> <경향신문> 등이 ‘잘 반영하고 있다’는 긍정적 답변을 다수 얻은 반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반영하지 못한다’는 부정적 견해가 많았다(표2 참고). 10대 의견 반영도에서 가장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다음 아고라’였다. 촛불집회로 변화한 미디어 환경이 드러난 것이다.
조사에 응한 10대가 평소에 뉴스를 알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매체는 인터넷(57.2%), TV방송(33.9%), 종이신문(7.0%) 등의 순서였다. 촛불집회 관련 정보를 얻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매체로는 인터넷 신문이 42.9%로 가장 높았고, 인터넷 토론장이 25.8%로 뒤를 이었다. 광우병이 위험하다는 확신을 준 매체는 문화방송 〈PD수첩〉(20.8%)으로 나타났다.
광우병 정보는 먹을거리와 관련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광우병 위험을 인지한 뒤의 행동양식 변화를 물었는데,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매우 그렇다 37.5%),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고 있다’(〃 48.2%) 등으로 응답했다. 미래에 어떤 먹을거리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심도 뚜렷한데 ‘앞으로 월령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먹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매우 그렇다’와 ‘대체로 그렇다’를 합쳐서 82.6%에 달했다. |
단호한 촛불을 든 소녀들
‘안 먹어’부터 ‘수입금지’ 요구까지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단호하고 엄격한 성향 확인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촛불집회 10대 참가자 면접조사]
‘촛불 소녀’로 상징되는 여학생들의 촛불시위 열정이 설문조사를 통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 ‘어른’들의 선입견과 달리, 소년보다 소녀들이 사회적 이슈에 더욱 민감했다. 문제의 심각성 인식이나 향후 대책과 활동 방향 등과 관련해서도 여학생들은 더 단호하고 근본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고생 62.8% “20개월 미만 살코기까지만”
우선 설문 응답자 가운데 “광우병의 위험을 알게 된 뒤 쇠고기 또는 패스트푸드 등을 먹지 않고 있다” “30개월 미만 쇠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먹지 않겠다”고 답변한 여학생의 비율은 남학생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다(표1 참조). 광우병 위험 논란 뒤 먹을거리에 대한 행동양식에서 좀더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부모님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앞으로는 국내산 음식을 주로 먹을 것이다” 등의 항목에서도 ‘매우 그렇다’라는 답변 비율은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14~23%포인트가량 더 높았다.
이같은 인식·행동 차이는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견해차로도 이어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거나 월령 2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고수해야 한다고 답한 여고생의 비율은 62.8%로, 평균 답변율 57.5%를 상회했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도 중학 여학생(47.0%)과 고교 여학생(41.5%)이 중학 남학생(40.4%)이나 고교 남학생(24.2%)보다 앞섰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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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좀더 단호한 태도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여학생들은 정보 획득 경로에서는 남학생들보다 더 합리적인 태도를 보였다. 집회 관련 정보 수집과 의사소통 매체로 촛불집회 참여 10대들의 42.9%가 인터넷 신문을 꼽았는데, 인터넷 신문에 대한 의존도는 남자 중학생(50.0%), 여자 중학생(46.9%), 남자 고등학생(43.9%), 여자 고등학생(38.8%) 순이었다. 중학생보다는 고등학생이,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다각적인 루트를 통해 정보를 얻고 이를 비교 분석한 뒤 판단을 내린다는 뜻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34%가 쌍방향 인터넷 토론장인 아고라를 이용한다고 답해, 남자 중학생(19.2%), 여자 중학생(13.6%), 남자 고등학생(25.8%)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렇듯 여학생들이 촛불시위 정국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하고 있지만 ‘어른’들의 인식은 이를 뒤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는 비율은 중학 남학생(30.8%), 고교 남학생(25.0%), 중학 여학생(17.9%), 고교 여학생(12.2%) 순이었다. 촛불시위 취지에 동감하는 어른들조차도 여학생들의 사회활동 참여에 대해서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여학생들이 이런 ‘우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한 김철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적인 관계를 맺거나 소통하는 방식의 차이를 우선 생각해볼 수 있다”며 “남학생들이 친구들과 주로 운동과 게임을 하며 관계를 맺는 반면, 여학생들은 일상에 대한 세밀한 대화 등 좀더 관계 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성차별·편견 극복 노력이 적극성으로”
사법시험 합격자 수에서 보여지듯이, 우리 사회 성별 격차가 역전되고 그 차이가 확대돼가는 추세와 같은 흐름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까? 김 교수는 “아직 일상의 많은 부분과 노동시장에서 성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만큼 여성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곤 하는데, 이런 경향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문화나 보이지 않는 편견이 여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불 붙일 바람불까 불 끌 바람불까
6월20일 새벽까지 촛불 진로 고민한 ‘국민대토론회’에 쏟아진 의견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촛불집회 10대 참가자 면접조사]
촛불이 기로에 섰다. 정권 퇴진 운동으로 향하는 강풍도 불고, 쇠고기 문제에 집중하자는 약풍도 분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해 6월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까지 5시간 넘게 이어진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단체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16명이 패널로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강경론이 우세한 가운데 온건론이 맞섰다. ‘이명박 퇴진’ ‘한나라당 해체’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박수가 터졌지만, 한편에선 쇠고기 문제에 집중하자거나 사회개혁 운동으로 발전시키자는 온건론도 만만찮게 나왔다. 국민소환제 도입, 세금 납부 거부 등 다양한 운동 방식도 제기됐다. 토론회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렸지만 토론은 광장을 넘어 전국에서 뜨거웠다. 인터넷 중계를 보면서 수천 건의 댓글을 다는 누리꾼의 열기로 전국이 달아올랐다.

촛불 봉송·주체별 행진 등 창의적 제안
대책회의는 토론회 이전에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 의견을 모았다. 대책회의 명칭부터 촛불집회 운영 방식까지 다채로운 제안이 나왔다. 먼저 의제를 민영화, 대운하 등으로 확장시켜나가자는 취지에서 대책회의 명칭에서 ‘광우병’을 떼고 ‘정책반대 대책회의’ 혹은 ‘정권퇴진 대책회의’ 등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대책회의에 바라는 다양한 주문도 나왔는데, “대책회의가 주도하면 구호가 참 경직되고 질립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톡톡 튀는 구호나 다른 구호들이 터져나온다면 앞에서 그런 구호들을 소개해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는 “촛불집회 초반엔 앞에서 ‘이명박은’ 하면 각자가 알아서 ‘물러가라’ ‘나와라’ 등 구호를 이어서 외쳤다”며 “지금처럼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구호가 단일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똑같은 구호를 써서 손팻말을 돌리기보다는 차라리 백지와 크레파스를 나눠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서울광장을 벗어나 집회 장소를 다변화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미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강남에서 촛불집회를 벌인 사례도 있고,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구별로 따로 촛불집회를 열자는 의견도 나왔다. 송민섭씨는 ‘촛불 봉송 운동’을 제안했는데, 올림픽 성화 봉송처럼 한반도 남단의 마라도, 동쪽 끝인 독도 등에서 촛불 점화를 해 국토를 순회한 다음 청와대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매일 촛불 행진의 주체를 따로 정해서 하자는 의견도 더해졌다. 영화인, 방송인, 향우회 같은 모임부터 쥐띠들, 파마한 사람들, 마른 사람들, 이명박 대통령 닮은 사람들, 방위 출신들, 이문열 책을 가진 사람들, 왼손잡이들, 영어 못하는 사람들까지 행진 주체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넘쳐났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취지에 바탕해 여름 휴가를 서울광장에서 보내자는 ‘캔들케이션(CandleCation)’ 제안도 나왔다. ‘CandleCation’은 Candle(촛불)과 Vacation(휴가)의 합성어로, 유가 고공 행진으로 휴가를 집에서 보낸다는 미국식 용어인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을 응용한 것이다. 가족 단위로 촛불 휴가를 나와 낮에는 청계천에서 물놀이하다 시청에서 올림픽 중계를 보고 밤에는 촛불집회와 도심 행진을 벌이자는 제안이다. 여기에 촛불여름성경학교, 촛불민주주의학교 등을 운영하는 방안도 더해진다.
이렇게 촛불집회는 집회의 형식도 혁명해왔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예전엔 폴리스 라인뿐 아니라 집회 라인이 있어서 집회 참가자와 시민의 경계가 뚜렷했다면, 촛불집회 이후엔 그것이 허물어지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대책회의는 24, 27일 각각 2, 3차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이렇게 모은 의견은 6월 말~7월 초 ‘국민의견투표’에 부쳐 촛불의 진로를 결정한다. 한편에선 토론이 길어져 대응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토론 일정을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
“물·전기·가스… ‘생활 시위’ 나선 시민들”
설사 촛불이 당장은 사그라진다고 해도 또다시 타오를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사실 물, 전기, 가스 얘기를 운동 진영이 하루이틀 말하지 않았다”며 “예전엔 노조만 하는 얘기였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자기 얘기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광우병 문제로 터진 ‘생활 시위’가 언제든 계기만 생기면 또다시 터져나올 조건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일상을 파고들면서 존재의 불안이 커졌다. 어쩌면 쇠고기를 계기로 터져나온 불만은 단순히 정권 차원을 넘어선 체제의 위기를 반영하는지 모른다. 이원재 사무처장은 “서울광장 안팎에서 토론을 진행하다 보면 발언의 주제를 벗어나 자기 삶을 하소연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유난히 많다”고 전했다. 이렇게 언어로 표현하는 논리의 수위는 얕아도 불만은 깊기에 촛불집회는 그토록 끈질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은 진행형이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한국 사회에서 촛불집회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언젠가 또다시 정치적 행동주의를 촉발시킬 무의식의 기억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미 그것은 87년처럼 승리의 기억이다.
‘아고라인들이 청와대에 말한다’ 그 뒤
계속되는 아우성 “대통령 기자회견 실망”
아고라의 아우성은 계속됐다. <한겨레21>과 다음 아고라가 공동으로 마련한 ‘아고라인들이 청와대에 말한다’ 게시판에는 청와대를 향해 아우성치는 아고리언들의 글이 끝없이 올라온다. 6월14일 이후로 올라온 300여 건의 글 가운데 갈무리한 아고리언의 목소리다(지면 관계상 글은 발췌했고, 제목과 글쓴이의 아이디는 그대로 공개했다).
먼저,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후에 올라온 글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담화하지 말고 대화부터 하자 - ID 밍밍
대국민 담화? 웃기고 있네, 담화하지 말고 대화부터 하자.
촛불집회를 ‘천민민주주의’로 비하하고 인터넷 여론을 ‘디지털 포퓰리즘’으로 폄하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 등 ‘또 다른 2MB’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주성영 의원님께 - ID 유희청
서울에 사는 자녀 둘을 둔 소시민 유희청입니다. 자기 이름 걸고 이야기하라시기에 실명으로 글을 올릴게요. 촛불시위에 참석한 사람들,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세력 아닙니다. 다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군요. 의원님께서 계시는 국회의사당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이고 간접민주주의와의 조화를 위해 필요한 국민소환제를 법률로 만들어놓지 않아서,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시청광장에서 외치고 외쳐도 이명박 정부와 국회가 들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서는 저항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촛불을 든 천민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ID Dimple
국민을 천민으로 보는 고귀하신 분들. 그것 아십니까? 귀하신 분들 월급도 천민의 혈세라는 것을. 머슴으로 섬기겠다면서요? 요새는 주인을 천민이라고 부르십니까?
재신임 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하고,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모색하자는 의견도 꾸준하다.
대통령 재신임 투표 건의합니다. - ID 송이후니
해보면 주사파인지 국민 과반수인지 알게 되겠죠. 재신임 투표는 대통령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죠? 자신 있으시다면 재신임 투표 해주세요.
방송 장악, 의료 민영화, 물 사유화 등 쇠고기를 넘어선 의제에 대한 글들도 넘친다.
제발 의료 민영화 안 됩니다! - ID 아고라인
쇠고기도 중요한 문제지만 의료 민영화도 정말 정말 안 됩니다! 제발… 경제를 안 살려도 좋으니 민영화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청와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촛불 여학생의 가장 무서운 플랜카드 내용 - ID dibidib
촛불 여중생과 여고생의 이 플랜카드 내용에 모든 플랜카드 내용이 다 들어 있었다. 내용은 바로 “우리 이제 방학이다”.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하루.
새벽2시 광화문, ‘유모차맘’이 물대포 껐다
30대 어머니 가로막고 “내 세금으로 왜 그러나”…비아냥·제지에도 끄떡 않자 34분만에 차 돌려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6월26일 새벽 1시31분, 기자는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앞 도로 위에 있었다. 새문안교회 골목에서 전경들에게 밀린 촛불시위대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새벽 1시32분, 서대문 경찰청 방면에서 왕복 8차로를 가득히 메운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의 대열은 끝이 없어 보였다. 뒤로 살수차가 보였다.

△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한 여성이 26일 새벽 서울 신문로에서 경찰의 물대포 살수를 막아서며, 통행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8차선 꽉 메운 채 방패로 땅 쿵쿵 치며 위협행진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1시41분, 2대의 경찰 소속 살수차가 전경들 뒤에 바짝 붙어섰다. “깃발부터 잡아, 강하게 저항하는 놈부터 잡아.” 마이크에서는 쉼없이 지령이 내렸다. 살수차는 물대포이자, 전경들의 대오를 지시하는 지휘부였다. 윙~하는 펌프엔진 소리가 들렸다. 살수가 시작됐다. 물대포였다. 시위대들은 물에 젖었다. 6월 말의 밤이지만, 차가운 물에 젖으면 살이 떨린다. 곧 입술이 파래진다. 시위대들은 전경들의 위력과 물대포의 서슬에 아무런 저항도 못해보고 광화문으로 광화문으로 떠밀렸다.
1시48분, 먼저 살수를 시작했던 노란색 살수차 대신 옆에 대기하고 있던 회색 살수차가 물을 뿜기 시작했다. 2배는 멀리 쏘는 듯 했다. 한없이 쏘았다. 살수차의 물탱크에는 6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7.5미터까지 쏠 수 있다.
▶경찰 인도로 끌어내려 하자 “내 아이에 손 대지 마!”
1시52분, 회색 살수차가 물대포를 멈췄다. 노란색 살수차와 임무교대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한 30대 어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노란색 살수차 앞을 가로 막았다. 경찰들이 몰려와 인도로 끌어내려 했다. 어머니는 “유모차에 손대지 마, 내 아이에게 손대지마 ”라고 외쳤다. 서슬에 놀란 경찰들은 물러났다. 시민들은 “아기가 있다”며 유모차를 에워쌌다. 경찰들은 당황했다. 윙~하고 움직이던 노란색 살수차의 펌프엔진 소리가 멈췄다.
곧 한 무리의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몰려 왔다. 방패로 땅을 치며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이 “애가 놀라잖아”라고 항의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전경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조금 뒤로 물러섰다.
순간 노란색 살수차가 뒤로 빠졌다. 회색 살수차가 이제 주된 역할을 할 모양인 듯 했다. 방금보다 더 강한 엔진음이 들렸다. 물대포 발사 준비 소리였다.
어머니는 곧바로 회색 살수차로 유모차를 끌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유모차를 가로막진 못했다.
▶유모차 밖으로 아이 두 발이 쑥, 아! 눈물이 핑~
△ (위) 26일 새벽 서울 신문로에서 유모차를 앞세운 한 여성이 경찰의 물대포 살수를 막아서며, 통행을 요구하고 있다. (아래) 26일 새벽 서울 신문로에서 유모차를 앞새우며 통행을 요구했던 한 여성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뉴시스
1시55분, 어머니는 두번째 회색 살수차 앞에 섰다. 전경들은 멈칫 거리며 다시 대오를 갖췄다.
어머니가 하늘을 쳐다보다 손으로 눈을 가렸다.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두 눈가는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그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아이의 아빠인 기자는 그냥 망연히 유모차 앞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2시01분, 전경들이 빠졌다. 회색 정복을 입은 순경들이 대신 유모차를 에워쌌다. 일부는 불량스런 표정으로 껌을 씹고 있었다. 유모차를 등지고 있던 순경 한명이 유모차 덮개를 슬쩍 들치려 했다. 껌 씹던 순경이었다. ‘안에 혹시 인형이라도 대신 넣고 가짜 시위하는 거 아냐?’ 이런 표정이었다. 시민들이 “뭔 짓이냐”고 항의했다. 순경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유모차를 등졌다.
사람들이 모인 광경을 보고 사진기자들이 몰렸다. 플래시가 터졌다. 어머니는 “제 얼굴은 찍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폴로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는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유모차가 심하게 요동 쳤다. 그리고 유모차 밖으로 아이의 두 발이 쑥 삐져 나왔다. 온갖 굉음에 격한 소음과 쏟아지는 플래시, 아기는 얼마나 심한 공포와 불안에 불편했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 서게 만듭니까”
2시10분, 여경들이 투입됐다. 뒤에서 “빨리 유모차 인도로 빼”라는 지시가 들렸다. 여경들은 “인도로 행진하시죠. 천천히 좌회전하세요”라고 유모차와 어머니를 에워쌌다. 어머니는 동요하지 않았다.
“저는 직진할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제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 위에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자유가 있습니다.” 또박또박 말했다.
2시15분, 경찰 간부 한명이 상황을 보더니 “자, 인도로 가시죠. 인도로 모시도록”하고 지시했다. 여경들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다시 외쳤다. “저는 저 살수차, 저 물대포가 가는 길로만 갈 겁니다. 왜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국민들에게 소화제 뿌리고, 방패로 위협하고, 물 뿌립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왜 그럽니까.”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떨림은 없었다.
그때 옆의 한 중년 여경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니, 자식을 이런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엄마는 도대체 뭐야”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대답했다. “저 평범한 엄마입니다. 지금껏 가정 잘꾸리고 살아오던 엄마입니다. 근데 왜 저를 여기에 서게 만듭니까. 저는 오로지 직진만 할겁니다. 저 차(살수차)가 비키면 저도 비킵니다.”
2시20분, 아까부터 껌을 씹던 순경이 유모차를 등지고 섰다. “어, 저 허리 아파요, 유모차로 밀지 마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시민이 “그럼 당신은 유모차에도 치이냐”라고 면박을 줬다. 순경은 다시 “그 잘난 놈의 아들 얼굴이나 한번 봅시다”라고 곁눈질했다.
어머니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2시23분, 살수차가 조금 뒤로 빠졌다. 경찰들이 다시 “인도로 행진하십시오”라고 어머니를 압박했다. 어머니는 외쳤다. “전 저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라고.
▶“전 저 차가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여기에서 서 있겠습니다”
2시26분, 경찰 간부가 다시 찾아왔다. “살수차 빼고, 경력 빼.” 드디어 살수차의 엔진이 굉음을 냈다. 뒤로 한참을 후진한 차는 유턴을 한 뒤 서대문쪽으로 돌아갔다.
2시27분, 어머니는 천천히 서대문쪽으로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다시 유모차를 에워싸려 했다.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유모차 건드리지마, 주변에도 가지마.”
경찰들은 뒤로 빠졌다.
어머니는 살수차가 사라진 서대문쪽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천천히 유모차를 끌었다. 유모차를 따라 갔다. 하지만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기자이기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묵묵히 유모차 뒤를 따랐다.
2008년 6월26일 새벽, 서대문쪽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물세례에 소스라치던 이들은 갑자기 물대포가 끊긴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기자는 그것을 대신 전할 뿐이다. 온몸으로 2대의 살수차를 막아선 한 어머니가 있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