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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학년 1반

서울로 현장학습을 다녀오다

2008년 6월 13일 금요일 오전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오후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무척 더웠다.

아침 7시 반 출발해서 10시 좀 넘어 경복궁에 도착했다. 아침 출근시간에 막혀 한 시간이 계획에서 차질을 빚었다. 그 때문에 돌아오는 시간도 한 시간이 늦어 6시 반이었다.

경복궁을 10시 반에서 11시 50분까지 둘러보고 나왔다.
덕수궁은 12시에서 12시 20분까지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국립박물관 예약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것처럼 으름장을 놓아서 1시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서둘렀던 것이다.
국립박물관에는 12시 50분쯤 도착을 하여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게 한 뒤에 뛰어가서 단체관람 확인증을 받아서 제출을 하고 곧바로 입장을 시켜야 하는 줄 알고 사정을 하였다. 아직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그래서 좀 늦어지겠다고.
그랬더니 생글거리면서 그렇게 해도 된단다. 시간을 꼭 맞추지 않으셔도 되는거란다. 이런! 경복궁을 주마간산하면서도 꼭 짚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느라 거의 뛰다시피 하고 다닌 것이 아까웠고, 덕수궁을 찰나에 보도록 한 것이 원망스러웠다.
힘이 없이 터덜거리면서 아이들 모둠별로 식사하는 곳에 갔더니 아이들은 벌써 다 먹었는지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간 라샘이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영양밥에 김치, 멸치, 햄, 계란말이와 과일을 싸왔다. 덕분에 목이 메는 김밥을 먹지 않아도 다행이다. 감사했다. 자료집이랑 신청부분을 내가 했다고 자기가 밥을 싸겠다면서 해온 것이다. 새내기를 벗어난 교사인데 내가 밥을 싸올껄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맛나게 먹었다.

아이들은 국립박물관에서 1층 전시실을 다 보지 않았는데 조르기 시작했다. 언제 집에 가냐고. 다리 아프다고. 그만 보자고. 그런 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3층까지 강행을 했다. 2층을 올라가는데 현아가 코피가 터졌다. 아이들이 놀래는데 지압을 해서 코피를 멈추게 해주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싸가지고 나오려니 힘이 들었겠지. 아이들이 차 안에서 프로그램 진행하지 말란다. 자기들 피곤하고 힘들다고. 그래서 연극 리허설 못한 두 모둠 확인하고 현장학습에서 무엇을 볼 계획인지, 왜 그걸 보고 싶은지 개인 발표를 모두 돌아가면서 하고 나니 서울에 도착을 하였다. 올 때도 30분 쉰 다음에 자료집 정리를 하고 질문을 해가면서 보충을 해주었다. 확인을 해보니 덕수궁은 남아 있는 것이 자격루와 중화전 뿐이었다. 나머지는 인상에도 남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참 아쉬웠다. 그러면서 1박 2일 팀을 구성해서 서울에 올 때에는 이렇게 차근차근 산책을 하듯 하면서 공부를 다시 할거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어느 모둠이냐면서 야단이고, 자비를 베풀어서 전체가 다 가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이다.

늘 일정을 빽빽하게 잡아서 버스 기사분들도 놀래고 아이들도 지치게 만든다. 좀 욕심을 줄일껄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경복궁 하나만 천천히 보고 올껄이라는 반성을 한다. 늘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이다. 영규가 지적한 것처럼 아이들을 선생님 수준으로 올리려고 하는데 그것은 어려운 일이란다. 맞다. 그럼에도 늘 그 욕구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라도 더 알게 하고 느끼게 하고 마음에 새겨넣을 수 있도록 하는 일에 과욕을 부린다.

경복궁을 뛰어다니느라 윗옷이 겉옷까지 흥건하게 젖은 것을 보고 아이들이 감탄을 하면서도 잘 �아 다니면서 질문하고 대답을 했다. 마음에 담아가라고 했는데 무엇이 담겼을까. 시와 글쓰기를 주제로 내주었다. 아이들이 한 가지라도 정확하게 자기 마음에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현장학습을 마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사진과 함께 보충해야겠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와서 사랑이라는 것을 자기 나름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고작해야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본 것으로 충당을 하겠지만.
한 녀석이 심중 고백을 했다. 상대방에게 가서 물어 확인하니 잘 모르겠단다. 그러면서도 싫지 않은 기색이다. 공개적으로 해놓으면 숨어서가 아니니 걱정할 일이 덜 하겠지 싶었다. 고백을 받은 녀석이 슬슬 고백한 녀석을 피하는 눈치다.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덥석 손잡고 다닐 수는 없는가 보다. 아이들이랑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그래도 머슥해 하지 않고 다니서 귀여웠다.

고백한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그 아이 때문에 너무도 많이 울었단다. 몰라 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아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다른 아이들이 질투가 나서.
너무도 당당하게 고백하는 녀석이 신통하고 이뻐서 마구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고백 받은 아이가 아직 준비가 안된 상황이라면 네가 이러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될 거라고. 기다려주면 될 것 같고, 아니라고 한다면 그냥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해야 할 거라고. 앞으로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날텐데 그에 대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더니 활짝 웃는다.

아마 이렇게 말을 모두 들어주는 선생이 제딴에는 기특한가 보다. 좋은 친구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겠다.

아이들 마음이 술렁거리나 보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민감해서 그런 마음들이 앞서가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중1 때 짝사랑했던 담임이 생각났다. 참 훌륭하게 나를 깨우쳐 주신 선생님, 얼마나 연로하셨을까. 일흔 노객이 되어가실터인데.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뵙고 맛난 음식이라도 대접하고 싶다. 나를 살뜰하게 아껴주시고 정말 사랑해주셨는데. 내 안의 영혼을 깨어나게 해주셨다.

오늘과 내일 일정은 충북지부 연수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제 현장학습을 끝내고 곧바로 집에 와서 짐만 내려놓고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배가 점점 고파오고 목소리는 점점 쉰 쇳소리가 나면서 발바닥이 너무도 아파왔다.
중요 안건 논의가 있어서 일부러 참석을 한 것인데, 회의를 먼저 하고 갈려고 한 내 뜻과는 상관없이 집회 마무리까지 하고 지쳐서 밥을 먹으며 논의를 하고 일어서니 열한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간신히 운전을 하고 집에 와서는 그냥 쓰러졌다. 식구들에게 한마디도 안하고 대답도 못했다.

효순이 미선이 6주기란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그렇게 되어갔구나. 그 때도 비통했었다. 우리나라의 주권이라는 것이 너무도 허약해서, 미국에 대해서는 늘 아무것도 해볼 수 없는 조약들이 비감하게 했다.

가두 시위에 나설 즈음에는 역광장이 가득 메워졌다. 고등학생 아이들의 발랄 문구와 소품이 정말 반짝거렸다. 구호도 연호도 어쩜 그렇게 신나고 재미나게 불러대는지 대단했다.

가족끼리 많이 나왔다. 할아버지 말씀도 구수하고 재미났다. 화물연대에서도 나와 더듬거리며 이야기를 해서 많은 손뼉과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