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덥다.
이 놈의 학교를 관두던지 해야지 원 하는 생각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사람에 대해 실망하기 시작하니까 그 끝을 모르겠다.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을 때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노릇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교 주부교실이라는 학부모 단체가 있다. 학부모회는 없고 주부교실회원들이 학부모 전체 의견수렴 구조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매년 하는 일이 도서바자회를 여는 것이다. 그 이익금으로 올해는 도서실에 책을 공급하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배포할 도서목록과 봉투를 가져온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책 목록이 그래도 낫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은 6학년 도서목록을 보는 순간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학부모 목록까지 포함헤서 178개였는데 12권 밖에 올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학년 이라고 해서 올려진 44권의 대부분이 쓸데없는 책들이었다. 이런 책을 학부모가 선택했다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6학년 책목록을 보자.
세익스피어의 영어노트 어휘1
지구 영웅 전설
랑랑벌 때때롱
상위 5%로 가는 역사 탐구 교실1
상위 5%로 가는 수학교실1
상위 5%로 가는 생물 교실 2
나는 공부를 못해
상큼한 오렌지 작은 물고기
12살에 시작한 진짜 공부
이야기 세계사 1,2
꽃신
6학년 1반 구덕천
전학년 목록을 보자
나를 뽑아줘
만화로 보는 지식교과서 2, 8, 9
레나는 축구왕
리틀 변호사가 꼭 알아야 할 법이야기
자신감 있는 아이 자신감없는 아이
노벨하면 책임감
나무가 되고 싶은 화가 박수근
행복
정겨운 풍속화는 무엇을 말해줄까
전쟁은 왜 일어날까?
노빈손 경찰 특공대에 가다
김태영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꽃 이야기
핵폭발 뒤의 최후의 아이들
공자와 크는 아이
고그린벤VS 심술통 떼돈 공갈 팍팍서
만화 세계사 14
우주에서 이소연입니다.
나는 무슨 씨앗일까?
상위 5%로 가는 지구과학교실2
과학 신대륙 네오아크:물리 힘
초등사회 개념 사전
네덜란드에서 보물 찾기
태국에서 보물찾기
내일은 실험왕(전기의 대결)
지진에서 살아남기
지도를 알면 지리가 쉽다
용돈 써보면 경제가 쉽다
1학년 수학 원정대 1,2
Why? 뇌
Why? 빛과 소리
Why? 정보통신
혈액형 코디백과 A, B, 0, AB(미니북)
의로운 도적 일지매
체리나무 할아버지
신델렐라와 심술궂은 왕비
타임캡슐속의 필통
방정식의 거인들
280가지 생각사전
시간 도둑 3,4
SOS 위기 대탈출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도덕상 사회상, 인격영상
스펀지9
빛나는 지식의 별 스펀지 7
이렇다.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문학적인 영혼의 울림을 준다거나 지금 학교 생활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학교 폭력, 성폭력에 관한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우리가 책을 읽는 까닭은 그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좀 더 올바른 인간으로 자라기 위함이고 그런 감동과 울림으로 아이들의 내면에 행동할 수 있는 힘으로 축적이 되는 것이다.
목록의 대부분은 문학성도 없고, 감각적인 내용만 다루고 있으며, 더구나 학습동화나 만화라는 이름을 달고 초등학교 아이들 수준에는 맞지 않거나 너무 쉽거나 해서 흥미나 창의성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스쳐지나가면 그만 일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과연 아이들이 책읽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는 수년간 이야기 되고 지적이 되어오고 있지만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 책 읽기에 편식이 생기고 제대로 올바른 책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 작용해서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학부모가 조금의 지각이라도 있다면 이런 식으로 책 구성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전학년은 미뤄보건데 공급처인 ㄱ 에서 돈이 되는 것만으로 뽑아 준 듯 했다. 그럼에도 학교장은 두 가지를 강조하면서 면피를 하려고 했다.
첫째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읽히는 책이므로 잘 선택했을 거라는 믿음
둘째 학부모 단체의 순수한 활동이므로 나는 과학실이라는 공간만 빌려준 것이다.
그래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십년 전에 들었던 레파토리하고 하나도 틀리지 않을까.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낮춰서 무겁게 말했다.
" 학교장이 학교 시설을 빌려줄 때는 그것이 학교 행사가 되는 것이 아니냐. 더구나 과학실이라는 공간에서 하는 것인데 결국 학교장이 모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올바르지 않은 책을 아이들에게 판매해서 그 이익금을 학교 도서 구입에 쓰려고 한다는 것이 과연 교육적이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해 하면서 얼굴을 굳이 돌려가며 하는 말이
" 자기 애들 읽히는 책인데 설마 내용이 떨어지는 것을 뽑았겠냐. 내용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인터넷에서 목록을 뽑아서 학년단위 회원 엄마들이 10권씩 추천한 책을 중심으로 겹쳐지는 부분을 뽑아놓은 것인데 그 분들 더러 노고도 인정하지 않고 잘못했다고 학교에서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왕 이렇게 된 것을 아이들에게 안내를 해주고 사던 말던은 하면 되는 것 아니냐. 그나마 올해 수익금으로는 도서실 책을 구입하는데 전액을 내놓겠다고 하니 그만으로도 진전된 것이 아니냐.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명박스럽다라고 코웃음이 나왔다. 어찌 이렇게 학교장이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 학교 행사이고 독서에 관한 것이라면 학년에서 책을 선정할 때 교사들에게 자문이라도 받아서 보완을 한 것이라면 말도 안하겠다. 학년부장에게 알아보니 전혀 없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뽑았는지 모르겠다. 모르면 알아보기라도 해야지 않느냐?"
이 말에
"학부모가 어디 선생님만큼 알고 있겠나. 그래도 자기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이니까 너무 나쁜 책은 아닐거라고 믿어줘야지 어쩌겠어.그러면 이 부분에 대해 주부교실 회장하고 이야기는 해봤는지 모르겠고 담당 선생님하고도 이야기를 해봐라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이러는거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아주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담당샘하고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교장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동어 반복이고. 해서 신간의 기준을 알려주고, 책 배치와 덤핑 책이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담당 선생님은 예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를 했고 도서바자회 폐혜 때문에 하루 반 만에 자진 철거해간 사건을 알고 잇다. 그래서 더 신속하게 학교장과 주부교실 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신속하게 대처를 한 듯 하다.
이 일을 겪으면서 이미 십여년 전에 도서바자회 문제로 단협에서도 체결이 된 사항인데 여기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정년이 코 앞이라는 까닭 한 가지만 가지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초등교육과장 출신 교장이기에 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만에 하나 책이 너무도 엉터리라면 이 부분에 대해 판매를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시간도 없는데 이런 쓸데없는 책들을 구해서 읽어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그래서 몹시 우울하고 힘이 빠졌지만 그래도 해나가지 않는다면 전체적인 진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힘들더라도 나는 그 길을 가야 하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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