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너무 많았다. 시간 제한을 했어도 너무 복작거리고 작품 앞에 우루루 모여 있어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이 덜 한 곳 위주로 보다가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았다. 다시 되돌아 가서 역순으로 보았고, 마지막에는 내가 머무르고 싶은 작품 앞에서 한동안 그림과 마주하였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레드 보이가 아니라 말년의 렘브란트의 자화상(1969년 63세)이다, 렘브란트 자화상은 100점이 넘을 정도라는데 유독 저 작품이 나를 끌었다. 아무 것도 없는, 인생에서 오로지 누더기 옷 몇점과 화구들만 남은 사내의 말년은 달관한 모습 자체였다. 어떤 욕망도 보이지 않은 초연함이 외로움과 쓸쓸함을 초라하게 느껴지게 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저 공손한 두 손 모음의 자세와 명징하였으나 흐릿해진 눈빛 속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레드 보이는 너무 어린 나이에 요절을 했다니, 영국 우표에 등장한 최초의 그림이라고도 하고, 워낙은 노란색 옷이었는데 레드 보이 아버지가 싫어해서 다시 붉은 색으로 덧칠을 한거라며 영상물은 재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전시회의 번잡함과 부잡함, 에스컬레이터 고장, 더운 날씨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쨍한 날씨, 그늘에 삼삼오로 모여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렘브란트 자화상과 겹쳐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2fEENqdw3jU
서양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예술의 변화를 보다 오랫동안 종교와 신은 유럽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과정을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시 인간을 돌아보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을 소개한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은 사람과 사람이 관찰한 이 세계에 주목하여,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하여 그림에 담았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보티첼리, 라파엘로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그림 1, 2)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은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신앙을 북돋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의 역할에 주목한 가톨릭 국가의 미술과 종교 미술 대신 사람과 그 주변 일상으로 관심이 옮겨간 프로테스탄트 국가의 미술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카라바조, 렘브란트 등의 작품과 함께, 가톨릭 개혁 시기 인기를 끈 사소페라토의 작품도 소개된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북유럽에서 유행한 풍경화, 일상생활 그림 등도 전시된다. (그림 3, 4, 5, 6)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장되어, 개인 그리고 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18-19세기 작품들을 조명한다. 계몽주의의 확산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차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된다. 종교와 사상을 담는 매체를 넘어, 개인의 경험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그림들이 활발히 주문되었다. (그림 7, 8, 9, 10)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 등장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화가들의 관심은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된 도시의 변화된 모습과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되었다. 비로소 그림은 ‘무엇을 그리는가, 얼마나 닮게 그리는가’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림 11, 12) 화가들은 점차 독창적인 색채나 구성을 바탕으로 화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림 13, 14)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서서히 줄어들고, 사람에 대한 관심은 커져간다. 무엇보다도 그림은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단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 간다.
글 | 선유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 학예연구사
<선유이 국립중앙박문관 전시과 학예연구사 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은 바로 내년인 2024년, 개관 200주년을 앞둔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주요 소장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주제어는 ‘사람’으로, 라파엘로, 카라바조, 렘브란트, 컨스터블, 반 고흐, 모네 등 서양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중세 이후 500여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의 기획자로서 ‘사람’이라는 주제와 함께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미술이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단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 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내셔널갤러리에서 개최되었던 ‘한 점 전시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전시를 공동주최한 국립중앙박물관과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공통점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기관으로서 ‘국민 모두를 위한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방향을 향해가는 두 기관의 이야기는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게 닮아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하고 1768년 왕립미술원이 설립되면서 유럽 대륙의 미술품이 활발히 수집되었다. 당시 영국 수집가들에게 인기 있던 작품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유럽 거장들의 작품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에 이은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의 등장으로 유럽 대륙이 혼란에 빠지면서 최고의 미술품 컬렉션들이 싼값에 미술 시장에 흘러나오고, 18세기 말~19세기 초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영국은 미술품 수집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더욱이 당시 유럽에 확산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미술을 통해 대중을 교육하기 위한 공공 전시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면서, 유럽 각국에서 공공 미술관들이 설립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1793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개관은영국에서 공공 미술관 설립 움직임을 가속시켰고, 영국 내셔널갤러리는 1824년 왕실이나 귀족만이 아닌 영국 국민 모두를 위한 미술관(Gallery for All)을 주창하며 문을 열었다. 사실 내셔널갤러리는 영국 국회가 은행가이자 수집가인 존 앵거스테인John Julius Angerstein(1735-1823)의 소장품 38점을 구입하면서 팔 몰 100번지에 있던 그의 작은 집을 빌려 다른 유럽 국가의 국립미술관에 비해 늦고 초라하게 시작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주요 공공미술관은 거의 왕실 소장품을 국유화하거나 기증받아 기존 왕궁에 전시한 반면, 영국은 왕과 귀족이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소장품을 강제로 공공화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내셔널갤러리의 첫 시작을 함께 한 38점의 그림 중 2점이 이번 전시에 전시되었는데, 다미아노 마차의 <겁탈당한 가니메데>와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도1, 2 이렇게 문을 연 내셔널갤러리는 그 이름처럼 ‘국민을 위한 미술관’으로 운영되었다. 내셔널갤러리는 1838년에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오늘날 미술관 건물로 이사했는데, 당시 트라팔가 광장은 부자들은 마차를 타고 서쪽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동쪽에서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에 있어 모든 계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였다. 모든 계층이 쉽게 올 수 있는 위치,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연령층의 입장 허가, 입장료 무료 등은 미술관을 특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게 했다. 또한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중시해서, 학생들이 작품을 모사할 수 있게 했다.
특히 내셔널갤러리의 공공 미술관적 성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개최한 ‘한 점 전시회’를 통해 잘 드러난다. 독일 나치의 영국 침공이 가까워지면서 내셔널갤러리의 모든 작품은 시골 광산에 마련된 수장고로 옮겨지고도3, 텅 빈 미술관에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를 찾은 사람들은 그림이 없는 미술관에서 허전함을 느끼고, “단 몇 점이라도 좋으니 전쟁 중에도 그림을 전시해 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내셔널갤러리는 박물관에 폭탄이 떨어지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작품이 숨겨진 시골 광산에서 매달 한 점의 작품을 가져와 전시하였고,도4, 5 단 한 점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하루 수천 명의사람들이 미술관을 찾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술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했던 것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 이야기는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국민 모두를 위해 국립미술관으로서의 역할과 예술이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와 즐거움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설립과 한 점 전시회에 대한 영상을 제작하여 전시실에 상영하였고, 지금도 많은 관람객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2차 세계대전 때 한 점 전시회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이 무려 3점이나 전시되고 있는데, 클로드 로랭의 <성 우르술라의 출항>, 폴라이우올로의 <아폴로와 다프네>, 렘브란트의 <63세의 자화상>이 바로 그것이다.도2, 6, 7
전쟁 중에 개최된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한 점 전시회’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 국립박물관의 상황을 연상시킨다. 국립박물관은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일제가 만들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하면서 출발하였다. 당시 국립박물관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을 위해 전시와 교육을 계속하였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46년 광복 후 직접 발굴한 중요한 문화재를 전시하는 특별전을 개최했으며, 1949년부터 학교 교사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중 강연회를 추진하였을 정도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이다. 1950년 9월 북한군은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박물관의 소중한 문화재들을 북으로 옮기고자 포장 작업을 지시했지만, 국립박물관 직원들은 이를 고의로 지연시키며 문화재가 박물관을 떠나는 것을 막았다. 이렇게 지킨 문화재는 박물관에 남아 그해 12월부터 1951년 5월까지 4차례에 걸쳐 전쟁을 피해 비밀리에 한반도 남쪽 부산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일어나기 전, 급박한 전쟁 중부산에 자리 잡은 국립박물관은 전시 공간을 마련하여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부산 광복동 창고 일부를 개조하여 개최한 <제1회 현대미술작가전>(1953.5.16.~5.25.)과 부산 관재청 창고에서 열린 <이조회화전>(1953.6.15.~6.24.)이 바로 전쟁 중 개최된 특별전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의 이야기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국립박물관·미술관의 역할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박물관의 전시는 관람객 모두를 위한 것이며, 그 공간은 누구나 편하게 들러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는 한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박물관·미술관으로서 이번 전시를 함께 개최한 두 기관이 추구하는 공통된 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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