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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비 온 뒤

장독대 꽃밭이 엉망이 되었다. 수레 국화 무더기는 모두 쓰러져서 바닥에 뒹글고 있고, 카모마일은 기다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있어서 모두 묶어 주었다. 

밭 고랑 사이로 물이 잘 빠져나가는지, 둑이 어떤지, 비를 싫어하는 장미는 물기에 지쳐서 고개를 다 떨구고 있다. 시드는 꽃을 따서 근처에 묻어주었다. 뿌리가 나면 다시 묘목으로 길렀다가 심을까 하여 해보았다. 

덕분에 옷에 흙이 묻고 엉망이 되어서 장화 신은 발만 깔끔하고 축축하고 눅눅하고 잠깐 한 일에도 이러하다. 오히려 키 작은 꽃들은 앙징맞게 버티고 있다. 

블루베리 두 그루에 열매가 달렸는데 작년에는 새들이 다 쪼아 먹어서 맛도 못 봤다. 장독대 바닥에 자갈을 깔아서 물이 고이거나 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 종일 오려나 보다. 바람없이 오는 비는 괜찮은데 바람까지 불고 휘몰아치면 여지없이 쓰러진다. 큰나무와 함께 있는 식물들은 나무가 바람을 막아줘서 그런지 버티고 있다. 

산으로 물안개가 끊임없이 올라간다. 저 물안개가 다시 비가 되어 내릴테지. 

집안이 온통 축축하다. 제습기를 틀었다. 

이 만한 비에 뒷개울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옆 개울은 웅장한 폭포소리다. 부처님 오신날 처음 갖는 대체 휴무일이 눅눅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