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반인권 반노동 반농민 반환경, 위기충남 공동행동의 집회가 있었고, 저는 차제연 활동가로 발언을 했었습니다. 오늘 집회에 참여했던 여성농민께서 발언문을 공유해달라 연락이 왔어요. 여성 농민들께서 공감 많이 하셨다고, 모임에서 함께 공유하신다고. 부끄럽지만 미리 썼던 발언문 공유합니다. 어제는 넘 추워서 짧게 줄여서 했지만.
발언문
인사드립니다. 인권교육활동가, 충남차제연 활동가 이진숙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말고, 우리는 사실 모두 안녕하기 위해서, 안녕을 위협하고 있는 김태흠에 맞서 여기 모여있으니까요, ‘안녕합시다’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합시다! 네 고맙습니다.
얼마 전 중학교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에요.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니 ‘선생님이 예뻐서요’ 하는데요, 어 진짜로 그런가 한 1초 생각했습니다. ^^ 알고 보니 옆반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교칙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한숨.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학교에선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는데요,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면 급식실에선요? 학생들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사실 이유는 하나죠.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말이 안되지요? 학교는 학생을 위한 것인데, 학생이 주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시키는대로 따라야 한다면 그건 노예 대우니까요. 신체의 자유는 체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 뿐 아니라 자유로이 이동할 권리도 포함됩니다. 옆반 친구를 교실에서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자유권 침해, 기본권 침해입니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교칙을 지키는 걸까요? 법에 규정되지 않은 기본권 제한은 부당하므로 지키지 않아도 되고, 바꾸라고 요구할 수 있는데요, 학생들이 모르더라구요. 제가 그렇다고 말하니 정말요? 하고 되 묻더라구요. “아, 인권침해구나” 그러면서.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거죠. 주인 대우를 받아보지 못한 겁니다. 누가 주인이 결정하지 않은 일을 강요할 수 있습니까? 자유 의사가 아닌 강요를 따라야 하는 것은 노예뿐 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어리던 많던 모두 존엄한 존재이며, 존엄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인권입니다. 그리고 인권이 있다는 것은, 그냥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권을 지켜주는, 인권이 무엇인지 알리고, 인권침해를 예방하며, 피해가 있을 때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하도록 지원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이런 것들이 법과 제도가 있어서 실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할 책임과 의무(책무)가 국가, 정부와 국회에 있는 것이고요. 2등 시민의 대우가 지속되도록 방치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책무 방기이고 인권침해입니다. 국회가 학생 인권에 무관심하여 시민들이 지자체 수준에서라도 학생인권을 지키라고 만든 것이 학생인권조례이고, 지방정부가 주민의 인권보장에 책임을 다하라고 만든 것이 지자체 인권조례입니다. 지금 이것들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뿐인가요? 인권은 뒷전이고 성적이 최고라고 여기도록 하는 것은, 마치 사회에서 돈이 최고고, 잘나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네 탓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도록 강요하는 것과 똑같지 않나요? 문제는 이런 부당한 권력에 순응하도록 익숙해진 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부당한 대우에,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부터 인권이 소중하며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인권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청소년의 인권 보장은 사회 모든 사람들의 인권보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는 학교에선 교직원의 인격도 존중받습니다. 인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닌 이유입니다.
최근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 확대 실시를 요구하며 파업을 했습니다. 정부는 화물연대 분들이 개인사업자라서 노조가 아니라고 했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개인사업자는 허울일 뿐 결국 일하는 조건을 결정짓는 것은 화주, 대기업인데요, 일하는 사람만 힘들게 되어 있는 잘못된 구조를 단결해서 바꾸자는 것은 너무도 정당한 권리입니다. 노조할 권리, 단결할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는 기본권입니다. 그리고 단결할 권리에서 파업을 떼어낼 순 없지요. 그러니 애초에 불법파업이란 말은 틀렸습니다. 파업은 권리이니까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 완전히 합법이고 합헌입니다. 누가 파업을 좋아서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으니 파업하는 것인데요, 파업까지 내몰리도록 상황을 방치한 국회, 정부가 문제인거죠.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했다면 파업을 했을까요? 인권보장의 책임이 정부와 국회에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에게 불법 운운하는 것이 정작 불법입니다. 불법파업의 반대말은 합법파업이 아니라, 단결할 자유이고, 파업할 권리입니다.
정당한 권리 행사에 ‘핵위협’을 들먹이고, 재난 운운하면서 업무개시명령으로 강제로 일하라고 위협한 정부가 진짜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강제로 일하라 할 수 없습니다. 노예는 없으니까요. 지금 국회 앞에서 농성하며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촉구하는 노동자들은 기본권으로서 단결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어요. 바지사장 말고 결정권 가진 진짜 사장이 교섭에 나오라는 거고, 파업했다고 손해배상으로 노동자를 위협하는 파업권 침해를 없애라는 것인데요, 화물연대 분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려면 안전운임제 뿐만 아니라 노조법 개정도 필요한 것에서 보듯이, 하나의 권리가 온전히 지켜지려면 여타의 권리가 함께 지켜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를 인권의 상호의존성이라 부릅니다. 정부를 비판할 자유인 표현의 자유,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모두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 권리이며, 생존권이 보장되도록 하는 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대합니다. 학생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빈곤주민의 권리, 성소수자의 권리에 연대하는 것은 누군가 억압받고 차별받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권리도 온전히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 전문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국가가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그런데 지방정부, 김태흠도지사는 인권팀을 없애겠다 합니다. 성소수자와 이슬람에 대한 혐오에 근거해 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주민 서명도 진행 중입니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첫째는 지방자치에 걸맞게 지자체(지방정부)가 해야 할 주민 인권 행정의 근거 규범과 담당자가 사라진다는 점이며, 둘째는 차별과 혐오가 평등을 이긴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미흡한 점이 많이 있지만, 도지사의 주민인권보장 책무를 규정하는 자치법규를 잃는다는 것, 인권증진 업무 담당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주민의 권리를 뺏기는 것입니다. 김태흠을 위한 충청남도가 아니라 주민을 위한 충청남도여야 맞습니다. 인권을 배울 권리, 공무원이 행정에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교육하는 것, 행정이 주민의 인권을 침해할 때 이를 시정하도록 권고하는 것 등의 근거가 인권조례입니다. 조례와 담당자를 없애는 것은 여성농민 행복바우처를 줬다가 뺏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또한 인권은 모든 사람의 권리인데요, 인권을 누릴 자격을 심사하자는 것이 바로 차별이고 혐오입니다. 외모가 별로니까, 비정규직이니까, 장애인이니까, 외국사람이니까, 이슬람이니까, 성소수자니까 등등의 이유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뺏겠다는 것이 혐오차별이며, 인권조례가 사라지도록 도지사가 방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주민의 보편적 인권보장을 하지 않겠다는 인권침해행위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르지만 한 목소리로 이구동성입니다. 김태흠을 비판한다는 점이 같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두 권리를 보장하라 요구하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인권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자는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안전해야 하고, 농민도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도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고, 차별받지 말하야 하고, 의견을 내고 존중받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헬로윈 참사 49일째 되는 날입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지금 투쟁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연대합시다. 우리의 무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인권과 연대입니다. 중요한 것은 꺽이지 않는 마음이 요즘 유행이더라구요. 인권과 연대는 꺽이지 않습니다. 힘냅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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