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2011년 7월 31일 3차희망버스를 보내며
여러분들과 지척의 거리에서 207일째 아침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가까이서 볼 순 없었지만 두 번째만큼 참담하진 않았습니다.
그립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자리에서 만날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희망 때문입니다.
207일전 이 크레인에 오를 땐 몹시 추웠습니다. 한겨울의 새벽 세시 그 캄캄한 어둠속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삶에 대한 의지보단 죽음에 대한 결의가 더 비장했습니다.
207일.
유서를 세 번 썼던 주익씨, 유서조차 쓸 수 없었던 재규형.
그 마음들을 다 알 것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2003년에도 트위터가 있었다면 주익씨를 지킬 수 있었겠죠.
그때도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재규형마저 잃진 않았겠죠.
저를 여기까지 올라오게 한건 사람 목숨보다 돈이 훨씬 중요한 조남호였지만 저를 여기서 내려가게 하는건 여러분들 일겁니다.
207일전 그 캄캄한 새벽 여길 오를 때 저는 혼자였습니다.
배낭을 몇 번이나 쌌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숱한 시간을 번민했습니다.
52년을 살았는데 처분해야 할 것도 정리해야 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게 다행이면서도 서러웠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전선에 섭니다. 매일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KTX여승무원 동지들이 3년을 싸울때도, 기륭전자 동지들이 6년을 싸우는 동안에도 애처롭긴 했으나 그 싸움이 우리들의 것이 되진 못했습니다.
쌍용차에서 15명이 죽어나가는 동안에도 안타깝긴 했으나 우리 모두의 전선이 되진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연대가 어떤 힘을 만들어 내는질 보았습니다.
나약하고 소심한 개인들이 모여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 내는지를 놀랍게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짓밟는 야만과 광기에 대해서도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잊지맙시다. 그래야 우리가 그려갈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제 여러분들이 띄워 보내신 풍등이 이 크레인 위 다섯 사람의 머리 위를 거쳐 강정으로, 전북 버스로, 유성으로, 그리고 수많은 전선으로 날아갔을 거라 저는 믿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왜 울어야 했는지, 왜 패배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했는지, 희망버스는 뼈저리게 가르쳐줬습니다.
그 처절한 절망의 댓가로 이제야 비로소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모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먼 길 달려와 주신 여러분들.
2차 때 다친 다리로 3차 때도 기꺼이 앞장서 주신 백기완 선생님.
먼저 내려오셔서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땡볕에 앉아계셨던 박창수 동지 아버님, 여러 어르신들, 실무를 책임지고 계셨던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 얼만가 될지 모를 크레인의 날들.
건강히 잘 견뎌나가겠습니다.
훨씬 단단해진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꼭 이겨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놓아주신 견고한 계단을 네명의 동지와 함께 밟고 내려가는 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7월 31일
3차희망버스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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