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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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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프랑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의 사망 50주년이다.
각 분야에서 걸출한 유명 인사들을 상당수 배출한 프랑스에는 유명인들의 탄생 혹은 사망을 기리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 그런데 최근 사르코지 정부가 카뮈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평의회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카뮈의 팡테옹 이전 의사를 피력했다. 사르코지는 카뮈의 작품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면서 "알제리에 갈 때마다 카뮈처럼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유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르코지의 발언은 외국인 추방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사르코지는 또한 2007년 알제리 공식 방문 시에 티파자 해안에 가고 싶어 했는데 이 해안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알제리인을 사살했던 장소다.
프랑스인들에게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문화와 교양 수준이 낮은 대통령으로 알려진 사르코지가 갑자기 알베르 카뮈를 거론하며 그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전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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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위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팡테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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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사르코지 "소설가 카뮈 유해, 팡테옹으로 이전하겠다"
팡테옹은 프랑스 역대 위인들이 묻혀있는 곳으로, 파리 시내에 위치해 있다. 1885년에 빅토르 위고를 시초로 이후 볼테르, 루소, 졸라 등 프랑스 거물급 작가들이 안치됐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도 임기 중인 1996년에 앙드레 말로, 2002년에 알렉상드르 뒤마를 팡테옹으로 이전시킨 바 있다.
팡테옹 이전을 결정하려면 위원회를 구성해 후보를 선정하고 가족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엘리제는 지난 여름에 몇몇 장관들에게 팡테옹 이전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 자리에서는 카뮈 외에도 음악가 베를리오즈, 소설가 로멩 가리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베르 카뮈는 191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전락> 등 세계적 명작을 남긴 채 196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카뮈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던 부친을 생후 1년도 채 안 돼 여의고,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고 가정부 일로 생계를 꾸려야했던 모친 밑에서 고생스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뒤 그 상금으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마렝에 별장을 구입했다. 카뮈는 뤼베롱 산자락에 자리한 루르마렝이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알제리의 산악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며 이곳을 특별히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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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뤼베롱 산악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루르마렝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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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르마렝 별장에서 집필활동을 하면서 파리를 왕래했던 카뮈에게 불행이 닥친 건 그로부터 몇 년 뒤였다. 1960년 1월 4일, 기차로 파리에 갈 계획이었던 카뮈는 마침 친구이기도 했던 걀리마르 출판사장이 그의 집을 방문해 차로 같이 올라가자고 제안하자 그의 차에 동승했다. 그러나 카뮈와 걀리마르가 탄 차는 파리에 거의 다다른 지점에서 큰 나무를 들이받았고, 둘 다 사망했다.
당시 카뮈의 양복 윗주머니에는 파리행 기차표가 들어있었고, 그의 가방에는 당시 집필중인 'Premier homme'(첫번째 남자) 원고가 들어있었다. 카뮈의 나이 47세, 한창 집필력이 왕성한 시기였다.
카뮈는 생전에 자신을 '좌익', '무정부주의자'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늘 아나키스트의 대부인 바쿠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정치와 인간의 운명은 이상과 대의가 없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졌다"고 서술하기도 했던 카뮈는 정치계나 문학계 등에 항상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명예나 훈장, 보상을 사양했던 그는 드골 대통령의 점심식사 초대도 거절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루르마렝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뒤 카뮈가 밝힌 소감 또한 그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오늘날 역사를 만드는 자들 편에 서면 안 되고 그것을 견뎌내야 하는 자들 편에 서야 한다."
그런 그의 유해를 우익을 대표하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팡테옹으로 이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반발 "추락한 지지도 올리려고? 카뮈에 대한 신성모독"
대통령 임기가 벌써 반 이상 지난 사르코지 대통령의 인기도는 연일 하락세다. 사르코지의 당선으로 새 세상을 기대했던 유권자들은 모든 면에서 후퇴를 면치 못하는 사회현실 앞에서 그에게 심한 배반감을 느끼는 상태다.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가 잃어버린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뮈와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뮈를 등에 업고 자신의 가치와 인기도를 올리려는 얄팍한 정치적 심사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
문제는 사르코지와 카뮈가 불과 물의 관계처럼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상반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부유층과 세계의 독재자들을 친구로 삼고, 기득권 우월정책을 펴는 사르코지와 항상 없는 자 편에 서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힘써온 카뮈. 이런 상황에서 사르코지가 자신과 상반된 삶을 살아온 카뮈에게 팡테옹 이전이라는 대 명예를 선사하겠다는 의도가 곱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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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르마렝 공동묘지에 자리한 카뮈의 소박한 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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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가 카뮈의 팡테옹 이전을 두고 '상징'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좌파 주간잡지인 <폴리티스>의 미셀 수데 기자는 '신성 모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는 24일 <르몽드>에서 "카뮈를 팡테옹에 이전한다는 것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고 나눈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정의와 자유와는 거리가 먼 정책을 펴고 있는 사르코지가 어떻게 정의와 자유라는 두 단어로 대표될 수 있는 카뮈를 건드릴 수 있느냐며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카뮈의 아들인 장도 <르몽드>에서 "팡테옹 이전은 아버지의 삶과는 반대방향의 길이며, 아버지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심한 우려는 느낀다"고 말했다. 장과 쌍둥이인 카뮈의 딸 캬트린느는 같은 신문에서 "명예를 좋아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명예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팡테옹에 이전한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라면서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팡테옹 이전이 힘겨운 인생을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상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 혼란스러움을 내비쳤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카뮈의 유해가 팡테옹으로 이전된다고 해서 그의 작품의 가치가 더 상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카뮈는 사르코지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사르코지는 카뮈를 필요로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