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마지막 날 아침에 들렀다.
둘째 아들이라면서 내게 명함을 내밀며 어떻게 알고 왔는지 너무 반가와 하셨다.
연세는 족히 일흔도 한참 넘어 보였다.
자신의 가족사를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나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모르는 것처럼 경청을 했다.
특히 어머니가 미모에다가 수석 졸업할 정도로 영특하셨다는 자랑이 듣기에 거북스럽지 않은 것은 그 어른이 어머니를 이야기 하면서 지었던 그 순진무구한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외국인 들어섰다. 그 분이 재빨리 그 사람에게 영어로 유창하게 자기 가족사를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웃었다. 그 외국인은 영어로 이것 저것을 물어보았다. 알지도 못하는 한국월북작가에 대해서 말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탄생 백주년 기념 전시회라는데 물건이 50점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 맞다.
월북 작가가 해금된지 겨우 이십여년도 채 안되니까.
이제서야 자식들이 월북작가라는 그 빨간칠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을까. 그래서 전시회를 자비를 들여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거의 그런 느낌이었다. 작가 협의회나 하는 분들이 없이 혼자 앉아 계시다가 손님이 어쩌다 들어오면 맞이를 하곤 했다. 물론 화분들은 대여섯개 늘어서 있었다. 형식적인 축하 글이 적혀 있는 리본이 무색하게 하는 그런 무안함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글이 왜 그리 마음에 닿았을까. 끝도 없고 가도 가도 그 길 같은 삶의 여정을 닮아서 였을까.
너무도 썰렁하고 작다 못해 초라한 공간 속의 전시장은 아주 쓸쓸하고 외롭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청계천의 인조 미학이, 그 다리 아래서 발 담그고 책을 읽고 있던 한 남자가,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내게는 그것도 슬픔이었다.
천변풍경을 이렇게 몰상식스럽게 바꿔놓은 것을 보고 작가는 무엇이라 말을 할까 싶기도 했다.
그 따스하고 품위 있는 문체를 좋아한다. 간명하고 진정을 다하는 그래서 글에서 사람냄새가 진하게 퍼지는 것 때문에 가끔식 글을 읽다가 줄을 긋다가 감탄을 하곤했다.
말년의 초상화 모습이다. 젊은 날의 둥구스러운 모습은 간곳이 없고 삶에 얼마나 찌들였는지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얼마나 견결하게 삶을 버티어야 했을까.
인민의 해방을 꿈꿨지만 결코 그들은 인민을 위한 조국 건설을 하지 않았고,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족벌 세습을 하고 있는 시대 착오 속에 놓여져 있음에 대해 작가는 수긍이나 할 수 있었을까.
자유가 억압 당하고 표현을 제한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예술인에게는 삶 자체가 지옥이었을 듯 하다.
남북한 가족 상봉할 때 금강산에서 사촌 형제들을 만났다면서 좋아하던 둘째 아드님은 이 사진 속에 비친 아버지의 고단함을 읽어낼 수 있었으리라.
마음이 너무 쓰렸다.
시간이 되는대로 갑오농민전쟁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세 번을 벼르다가 간 곳이었지만,
해금된 작가의 탄생 백주년 기념 전시회니까
기대를 조금 했었던 내가 명백하고 명확한 현실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아득함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래, 아직도 한참이나 멀고 먼 뒤의 상황을 나는 지금 당장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념이라는 부분보다 사람을 더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인간 관계이고 서로간의 신뢰이고 믿음이다. 구보는 그런 자신의 믿음에 대해 후회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 때 그 순간의 소중함과 진심이 보석처럼 삶을 이어주는 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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