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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매월당 김시습

세상사 등지고 무량사에서 마지막 생을...
[충남 서해안 보령권의 문화유산 답사] ② 매월당 김시습
09.07.07 09:09 ㅣ최종 업데이트 09.07.07 09:09 이상기 (skrie)

명부전, 영산전, 원통전

 

  
명부전
ⓒ 이상기
명부전

 

극락전 앞 오층석탑 동쪽에는 명부전이 있다. 일반적으로 명부전은 주전의 뒤쪽에 있는데 이곳은 앞에 있다. 명부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옆에서 거든다. 요즘은 대웅전에도 협시보살로 지장을 모셔야 할 정도로 지장보살이 인기라는 것이다.

 

  
명부전 안: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시왕 중 제1,2왕이 보인다.
ⓒ 이상기
명부전 내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있고, 좌우에 5왕씩 시왕이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즉 지장의 왼쪽에는 1,3,5,7,9왕이 오른쪽에는 2,4,6,8,10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시왕 옆과 앞으로 판관과 사자, 인왕과 동자 등이 있어 전각 안이 꽉 찬 느낌이다.

 

극락전과 명부전이 한 공간에 있다면 영산전과 원통전은 극락전 오른쪽 뒤에 있다. 언덕에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영산전과 원통전을 배치했고 그 옆에 매월당 영각을 설치했다. 매월당 영각에는 현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다. 이들 세 개의 전각이 나란히 있고, 그 오른쪽 작은 시내를 건너 맞배지붕 형태의 선방 같은 건물이 보인다.

 

  
영산전과 앞의 이상한 탑
ⓒ 이상기
영산전

 

영산전 왼쪽 앞에는 배롱나무가 무성하고, 정면으로는 탑과 석등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탑이 있다. 2층 기단, 복련과 앙련, 화사석, 옥개석 두 개, 옥신석 하나, 그 위에 상륜부. 이건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여러 가지 부재를 모아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영 아니올시다'이다. 영산전 안에는 수많은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영산전 옆 원통전은 만들어진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목재나 단청이 아주 새것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천수관음이 모셔져 있다. 이 관음보살도 최근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 원통전에 원불 봉안 불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무량사는 지금 불사도 하고 수리도 하느라 한창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름이 없는 전각에 가야 매월당 김시습을 만날 수 있다.

 

  
매월당 김시습 초상
ⓒ 이상기
김시습

 

영산전과 원통전 옆에 있는 매월당 영각은 건물보다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매월당 초상으로 유명하다. 이 초상화는 보물 14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은 조선 전기 양반 가문의 문사를 그린 몇 안되는 귀중한 작품이다. 약간 찌푸린 눈매와 꼭 다문 입술, 눈에서 느껴지는 우수가 매월당이 살아온 삶의 굴곡을 대변하고 있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반신상으로, 야인의 옷차림에 검은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색으로 밝게 처리하였고, 윤곽선과 눈·코·입 등은 옅은 갈색으로 그렸다. 의복은 옅은 홍색인데 필요한 부분만 약간 짙은 갈색으로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얼굴의 옅은 갈색과 의복의 약간 짙은 갈색이 은근한 조화를 이룬다. 수염은 회색 바탕에 검은 선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매월당 영각
ⓒ 이상기
매월당 영각

세상을 등진다는 표현으로 갓이 아닌 패랭이를 쓰고 염주는 턱 밑으로 늘어뜨렸다. 전체적으로 얼굴 표정에서 불만과 우수가 가득하다. 나이는 50대로 보인다. 『매월당집』에 의하면 김시습은 생전에 두 점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초상화는 외적인 회화기법보다 내적인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매월당 김시습, 그는 누구인가?

 

  
김시습 초상화
ⓒ 이상기
김시습

 

매월당 김시습(1435-1493) 하면 우리는 생육신을 떠올린다. 조금 더 매월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사람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리고 조금 더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그가 쓴 시 몇 편쯤은 기억할 것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명리를 버리고 온 세상을 주유하며 평생을 살다간 자유인이다.

 

그는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가에 귀의한다. 이때부터 매월당 김시습은 설잠(雪岑)이라는 승려로 다시 태어난다. 그는 이때부터 관서, 관동, 영남, 호남을 유람한다. 그는 관서지방을 여행하다 오른 부벽루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있다.

 

                 부벽루                                            浮碧樓

 

높은 가을 하늘 부벽루 깊은 물에 드리우고             浮碧樓高秋水深

저녁놀 산에 비쳐 어슴푸레 어두워진다.                 暮煙山色共沈沈

다리 가 짙은 구름, 어둠 속 들풀                           靑雲橋畔野草暗

오래된 절 탑 위 새소리 그윽하다.                         古塔刹頭幽鳥吟

물가 먼 곳 바람 일어 손님 실은 배 돌아오고           遠浦風生歸客帆

황성에 해떨어지니 차가운 다듬이소리 들려온다.     荒城日落動寒砧

흰 갈매기 나라의 흥망에는 관심이 없고                 白鷗不管興亡事

푸른 파도 일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구나.           出沒綠波無箇心

 

  
용장사지 석불좌상과 삼층석탑
ⓒ 이상기
용장사지

 

영남지방을 유람하던 김시습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경주의 금오산(金鰲山)이다. 금오산은 지금의 경주 남산이다. 매월당은 1465년 금오산 용장사에 서재를 짓고 『금오신화』를 쓴다. 『금오신화』는 5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제목이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이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은 양생, 이생, 홍생, 박생, 한생으로이다. 이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세계에서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취유부벽정기〉는 송도에 사는 홍생이 평양에 갔다가 달밤에 부벽루에 올라 겪게 되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앞의 시 부벽루 체험이 환상과 결합하여 공상소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삼각산에서 중흥사는 절터만 남아 있고 그 옆에 태고사가 생겼다.
ⓒ 이호신
삼각산

 

매월당은 말년에 다시 삼각산 중흥사에 머문다. 이때 만난 대표적인 사람이 생육신 중 한 사람인 남효온과 사림파로 김종직의 문인인 김일손이다. 1491년 매월당은 다시 한양을 떠나 설악산으로 들어가고, 1493년 2월 홍산현(현재 부여) 무량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매월당의 시문은 그가 죽은 지 90년이 지난 1583년 선조의 명으로 『매월당집』으로 편찬되어 나온다. 『매월당집』의 서문은 아계 이산해가 썼고, 전기는 율곡 이이가 썼다. 이산해의 서(序)에 따르면 김시습은 문장과 언어를 통해 우주에 크게 명성을 떨친 사람이다. 그리고 명리를 버리고 선문(禪門)에 들어 구름처럼 새처럼 한 세상을 살다 간 사람이다.

 

무진암에서 만난 매월당 부도

 

  
매월당 부도
ⓒ 이상기
매월당 부도

 

이곳 무량사에는 매월당의 부도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부도는 무량사에서 조금 벗어난 무진암 가는 길가에 있다. 율곡 이이가 쓴 '김시습전'에 따르면 매월당은

 

"병이 들어 홍치 6년(1493) 홍산현 무량사에서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난다. 유언에 따라 화장을 하지 않고 절 옆에 임시로 장사지냈다. 3년 후 장사를 지내려고 염을 하는데 안색이 산사람과 똑같았다. 이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놀라 경탄했다고 한다. 불교의 예에 따라 다비를 했다. 이것은 승가에서 불태워 장사지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유골을 모아 부도를 만들었다."

 

  
부도밭
ⓒ 이상기
부도밭

 

매월당 부도 주변에는 모두 7기의 부도와 1기의 탑재가 있다. 이들 중 가장 크고 훌륭한 것이 매월당 부도다. 8각원당형의 조선 초 양식인데 전형성에서 벗어나 조금은 변형된 모습이다. 3단의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 모양의 머리장식을 올렸다. 모든 부재의 단면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여의주를 가지고 다투는 두마리 용
ⓒ 이상기
매월당 부도 기단 조각

 

기단은 아래와 위의 받침돌에 복련과 앙련을 새겨 넣었다. 가운데 받침돌이 가장 아름다운데 구름에 쌓인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연꽃 덮개가 조각된 지붕돌은 꽃장식이 달린 여덟 귀퉁이가 높게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 등으로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폭풍우로 쓰러진 것을 바로세웠다고 한다.

 

  
부도밭의 보리수
ⓒ 이상기
부도와 보리수

 

부도 주변에는 지금 보리수가 한창 열매를 맺고 있다. 붉은색으로 색깔이 너무 좋다. 열매를 따서 맛을 보니 단맛이 나는 게 맛이 있다. 육질이 약간 쫀득한 게 감칠맛이 난다. 나는 열매를 몇 개 따먹는다. 빨간 보리수 열매를 보니 김시습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