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느끼는 것이지만, 대전이라는 지역의 문화의 척박성에 대해 절망한다. 그도 아니면 그 표현하지 않은 내면에 더불어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에 아주 미온적이고 음흉하기까지한 그런 자세들과 태도들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작가는 낯설었다. 내게 익숙한 모습은 그리 젊지는 않았지만 신인을 갓 벗어난 그 때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나이가 있고 세월이 있으니 중후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마치 내가 패물을 치렁거릴만큼 달고 다니는 것과 똑같은 그런 모습일런지도 모르겠다. 일면 세련되어 있었다. 말은 의미의 되새김을 위해 아주 느리고 특유의 설명체이자 고백체를 쓰고 있지만 참 낯설었다. 내가 알고 있는 풋풋한 그런 모습을 기대했기 때문일게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갈림길에서 늘 헤매지만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동길과 금산길이 있는데 인동길로 가야 했다. 그런데 난 금산길로 접어들었고 계속 이 길이 아닌데 하면서 찾아서 빙 둘러가야 했다. 마치 내 인생살이가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풋하 하고 웃고 말았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분명하게 알고 있고 다니기도 했던 길을 놔두고 놓쳐서 다른 길로 돌아온다는 것. 그 의미가 뭘까.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철저함에 대한 그리고 내 속을 들키기라도 한 듯한 그런 모습 말이다. 진정으로 저 바닥까지 공감하고 슬퍼해서 참여했는가에 대한 자책과 함께 말이다. 가슴푯말을 달고 있는 전동지는 서둘러 일어나 박종태 동지가 죽어 묵고 있는 중앙병원으로 가겠단다. 검은 흉패가 내게 말한다. 너는 그렇게 진심을 다해서 슬퍼한 적이라도 있는거야?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문학을 한다는 또는 하고 싶다는 사람이 조합원 가입조차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성토하듯 말하고 말았다. 어떻게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조합에 가입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그것은 나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문학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아는 척도 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을 이야기하는 순간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문학을 뭘로 알기에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인지. 그저 글솜씨로 끄적거린다고 다 문학이냐? 기사라도 다 기사냐? 이런 마음이 컸던 것이다. 결례인 줄 알면서 힐난조로 말하고 말았다. 다음에 만나도 그리 서로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일테니까.
내 수준과 다른 문동지는 그런 사람을 몇년 동안이나 같이 함께 하고 있다. 역시 내 격조와는 아주 다른 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테지. 그래서 늘 비판하면서도 예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말을 했지만 정말 아무나 할 수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저 끄적임과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고심하고, 타인에 대해 관심과 사랑을 갖고 관계를 맺어서 뭔가를 형상화 해낸다는 것은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박동지는 너무 삭았다. 그래서 가슴이 짠했다. 못 본지 너무 오래이다. 반가와하는 내게 미소만 짓고 있어서 복수혈전이라면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작가와의 싸인에서 그 노동이 안쓰러웠다. 팬에 대한 서비스 차원이란다. 작가는 글로 작품으로 말하면 된다. 그리고 사회적인 요구가 있을 때 발언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팬 서비스인가. 출판사 돈벌어주고 작가에게 인세를 올려주기 위해서? 이런 것을 창비만큼은 안하기를 바랬다. 그러나 여지 없었다. 그만큼 궁색하다는 또다른 이야기 일 것이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막음을 해야 한다는 것을 돌려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간사에게는 여러가지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미리 가서 좀 도와줬으면 그런 일도 없었으련만 하는 생각이 드니 참으로 미안하고 속상했다. 그래서 위로의 말을 해줬다. 맑은 심성이 오늘 얼마나 괴로웠을까. 애를 썼음에도 그 빛을 발하지 못한 그런 일들을 자꾸 겪게 하다보니 내가 더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간만에 작가 강연회를 들었다. 오히려 작품 이해를 위해서는 강연회를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해석의 여지를 설명함으로 해서 애써 좁혀 놨기 때문이다. 모두들 줄서서 사인을 받는데 영미씨 사진을 찍어주느라 받지 않았다. 사실은 받을 생각이 없었다. 스냅사진처럼 찍었다.
YWCA를 처음 간 것 같다. 공간이 낯설어서 좀 그랬다. 4층 강당은 작은 창문을 열어놓았지만 소용 없었다. 너무 더웠다. 얇은 한복을 입었어도 너무 더운 그런 공간이었다. 아직도 지역을 알기에는 너무 멀은 것 같고,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왜 지역을 다 알아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
오겠다고 했던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그 자리만큼 내 마음도 서운함이 커져나갔다. 말에 대해 참으로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는구나. 아무런 의미없이 말도 잘 하는구나 싶었다. 자기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정말 싫은데 오늘 그랬다. 성동지는 고교 동창을 만나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언제나 순수하고 맑은 그래서 고해성사 이야기까지 거림낌 없이 하는 그런 수준이 난 늘 좋다. 숨김이 없어서.
고등학생들이 꽤 많이 왔다. 내 고교 시절 서정주 강연회 보다 훨씬 낫다. 그 불량스러운 자세와 태도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서정주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나 보다. 불량한 태도로 아주 무성의하게 진행되었던 문학 강연회를 잊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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