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졸업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아이들에게
2008년 너희들에게도 잊지 못할 한 해였다면 나 역시 잊혀지지 않을 한 해가 될 것 같다.
첫인상이 뚱땡이 아줌마여서 비호감이었고, 한복을 입고 있어서 이상했던 담임에 대한 소감을 읽었을 때 솔직해서 좋았다. 그런 솔직함도 1학기를 넘기면서 겨우 눈치 안 살피고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기간 동안 서로의 탐색이었을까.
무엇이 가장 마음에 남았을까 생각을 해보면 괴로운 것부터 정리를 하고 싶다. 그 중 가장 우선인 것은 채윤이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것. 이유야 여러가지 댈 수 있지만 최우선 했어야 했는데 내가 결국 지치고 말았다는 것이 부끄럽고 늘 죄짓은 기분이어서 우울하게 했다. 채윤이 말 들어주고 함께 해주었던 예인이 홍경이가 그래서 더 귀하고 나보다 낫구나 하는 생각으로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었단다. 그래서 힘을 낼 수 있었단다. 그냥 아무 것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 심정은 어떨까. 이제는 다른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보는구나 느끼고 있어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다는 것까지 알게 된 그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해주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해준 것이 기억나는 게 없어서 괴로왔다.
또 속상했던 것들이 먼저 생각나는구나. 그 중에서도 으뜸은 일제고사 때문에 있었던 일들이지. 선생으로서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너희들과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하게 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하도록 했던 까닭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어느 한 쪽만을 알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였다고 생각해. 힘들어 하던 몇몇 아이들이 떠오른다. 혼란스럽다는 아이도 생각이 난다. 내가 한 것들이 너희들에게 제대로 전달이나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지. 모둠활동을 해도 누구에게만 미루고, 청소를 하라고 해도 하는 척만 하고, 숙제는 아이들 것 베껴 내고, 일기는 대충 써서 대화 자체를 끊어버린 아이들 때문에 혼자 화내고 진정이 통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절망하고 내가 뭔가 부족함이 많아서 아이들이 저렇게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많이 힘들고 괴로웠단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목소리를 높이고 짜증부리고 화를 내기만 했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속상하다. 나도 웃으면서 즐겁게 행복할 수 있는 학교 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런 가장 보기 싫은 모습 속에는 너희들을 사랑하려고 무지무지하게 애쓴 흔적을 느낄 수 없었을꺼야. 맨날 혼내기만 하는 선생이 뭐가 좋겠어? 그런데도 너희들은 조금씩 나를 좋아해주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 아주 아주 싫었는데 조금씩 이해되어지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가끔씩 감동 받아서 울컥 눈물이 솟구칠 때도 있단다. 고마워. 너희들이 내 숨구멍이고 지킴이고 내 자랑이면서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 한다. 그래서 더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면서 너희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를 했었나 보다.
혼자 있을 때면 가끔 너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단다. 특히 병실에서 혼자 누워 생각하고 있을 때. 머리 속에서는 너희들이 한 명 한 명 끄집어 내어지고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면서 웃기도 하고 씁쓸해 하기도 했단다. 지금쯤 수업이 끝났겠구나. 지금 쯤 점심을 먹고 있겠구나. 지금쯤 숙제를 하고 있을까 이러면서 혼자 놀았단다.
내게는 잊혀지지 않을 아이들이 많아서 행복한 한 해였던 것 같다. 너희 모두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새겨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행복했던 추억을 끄집어 내어 그 속에서 위안받고 힘을 내서 씩씩하게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단다. 우리 남은 기간 동안 마음을 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단다. 우리 그렇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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