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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청소년 문학

1박2일 지리산과 남원

토요일 오전에 겨우 시간을 내어 정리한다. 

여행 계획은 혜림샘이 짰다. 작년까지는 내가 했는데 허술하고 헐렁하게 했더니 식당, 숙소, 카페까지 완벽한 정리였다. 선택지가 많으니 그도 좋았다. 

남편이 데려다주었다. 아침이 조금 늦어서 허둥대며 나섰다. 내가 준비한 것은 오렌지, 사과, 실상사 곶감, 김치, 김, 누룽지였다. 보따리가 3개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운전은 윤희샘 9인승 차량으로 운전까지 도맡았다. 렌트를 알아보니 30만 원이 넘었고, 윤희샘 차량은 너무도 훌륭한 최고급 차량이었다. 덕분에 편안하게 알뜰하게 시간도 절약하면서 다녀 여유가 철철 넘치고 안락하게 다닐 수 있었다. 또 채소 주스까지 준비해서 내려가는 길이 더 시원했다. 

빵을 준비한 문희샘, 고구마를 준비한 옥순샘, 아들이 공무원에 합격하여 근무를 시작한 종숙샘과 아들이 분가하여 직장에 나가는 순희샘은 비싼 카페에서 차와 간식을 내어놓아 첫 카페에서 황홀함을 주었다. 

 

실상사는 아주 고즈넉하고 정비를 잘해놓아서 시집 잘 간 딸 집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갔을 때는 을씨년스러웠다. 작고 소담하기는 했지만 위풍당당한 정지를 하지 않은 탓이었다. 지금은 지역 학생들이 조사 팻말을 쓰고 더 자세한 것은 큐알코드까지 달아서 더 좋았다. 8층 목탑터가 가장 인상 깊다. 대강당 터의 주춧돌도 드러내어서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선종의 첫 도입지. 천년 고찰은 금이 가기 시작하는 기둥과 처마를 받치고 있는 지치대에서, 그리고 단청을 칠하지 않은 빛바랜 처마 속 받침들이 뿜어내는 세월 흔적에서 울림이 왔다. 단청보다 칠하지 않은 나무 본연의 색이 더 좋다. 나무를 보호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더 내보이기 위해 칠해지는데 내 취향은 아니라서 그렇다. 꾸밈없는 본연의 모습. 

백장암 가람배치는 신라 불국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두 탑과 중앙의 석등, 여기서 두 탑은 석가탑의 모태가 되었으리라. 석등은 올라가는 계단까지 남은 유일한 모습이라고 해서 석등에 어찌 불을 켰을까 궁금했는데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사적이다. 돌이끼까지 낀 석등과 비바람에 귀퉁이가 부서진 채로 서 있는 탑 앞에서 그저 숙연해졌다. 여러 불상을 보았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부처님은 철로 된 불상이다. 불상 뒤가 손실이 되었는지 나무도 덧대어 놓았고, 양 손도 나무로 바꿔 보존하고 있었고, 실제 두 손은 따로 유리에 보관되어 있었다. (참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672)

절은 두 번만 했다. 3배를 하는데 그 까닭은 

절에서 세 번 절하는 데는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 절은 오직 부처를 공경하겠다는 뜻이며, 두 번째 절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뜻이고, 세 번째 절은 부처의 제자인 승려를 따르겠다는 뜻이다.

오만하게 가는 곳마다 두 배만 두 곳에서 했다. 그중 한 곳은 약사여래를 모신 곳에서 동화지기 한솥밥의 안녕과 건강을 빌었다. 

세월호, 이태원참사, 제주항공 여객 참사에 희생된 분들을 위한 '생명 기도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하나 창설하신 통일신라의 승려 수철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인 부도였다. 석등을 중심으로 왼쪽 끄트머리에 호젓한 곳에 숨어 있듯이 세워진 마당 앞은 두더지가 많은지 흙더미가 소복했다. 부도로 유골을 남긴다는 의미는 뭘까. 사후에 치러진 일이겠지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잠깐 죽은 뒤에 남겨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지리산을 빙 둘러서 사진으로 담았다. 운무가 아니라 초미세먼지로 노고단은 흐릿하게 보였다. 

 

첫 밥집은 '까만집'을 선택했는데 다슬기탕, 다슬기 수제비가 아주 일품이었다. 수제비에는 반찬이 김치만 나와서 옆 자리에서 반찬 나눔을 했는데 맛이 자연 그대로 정갈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그 큰 식당에 말이다. 아마 꽃피는 봄부터 가을까지 넓은 주차장을 다 채우리라 싶다. 

 

배부르다 노래를 하면서 간 '혼불 문학관'은 전주 생가에서 만난 최명희 작가를 온갖 겉치레로 꾸며놓은 듯했다.  그 아래는 도립 미술관인데 개인작가 이름이 붙여 있었다. 청호미술관(https://www.youtube.com/watch?v=Ml2A4nxuGSY) 전북 도립미술관이라는 이름 아래 청호 미술관이 같이 쓰여 있다. 아마 미술관 뒤 사찰이 있는데 송하스님이란다. 미술관 왼쪽으로는 소장품 전시장으로 도자기 중 중국 도자기풍이 많았고, 호랑이 그림도 병풍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안목이 없어서 그 호랑이에게 압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랑스럽거나 귀엽지도 않았는데 용맹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싶었다. 정길웅작가 마이산 사진전은 집념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았다. 사계절뿐만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마이산의 모든 방향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흑백 사진은 수묵화보다 더 뛰어난 감성을 느끼게 해서 눈호강을 한참 했다. 사진으로 보아도 자연은 언제나 푸근하고 다 내어줄 것 같지만 여차하면 내처 버린다. 바람으로 눈과 비로 휩쓸고 지나간다. 

미술관 오른쪽으로는 카페가 있었다. 그곳 풍광이 좋았다. 차와 다과를 시켜 속을 좀 다스렸다. 두 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면서 기쁜 웃음을 한참 나눴다. 

곧바로 미술관에서 위로 연결된 혼불 문학관.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없었다. 생가 툇마루에 앉아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문장들을 음미하기에는 민속관에 더 가까와 어리둥절하였다. 이렇게 하려면 안 하는 것만 못한 것 아닐까. 기리는 것은 좋은데 온전하게 그 뜻을 다 담아내기에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너무 많이 아쉬웠다. 남원시에서 주도하는 것이라면 이제 형태를 갖췄으니 내용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청호미술관 유튜브를 보면 문학관 안이 어떠한지 알 수 있는데 앵글로 잡혀서 그 허함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실제 가봐야 아는 것이다. 

실망을 가득 안고 서도역으로 갔더니 사진 설명이 아니면 휑한 그 곳이 뭐지 싶었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노량진역으로 기차 타러 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장소였다. 목조로 지어진 유일한 역이라는 것만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 옛날의 역사 풍광이 오밀조밀하고 공간 나눔도 오종종해서 우리가 한옥에서 방 한 칸을 보면 저렇게 좁은 데서 어찌 살았을까 싶은데 딱 그 마음이었다. 기관사들이 묵었을 듯한 다다미까지. 그곳도 가꿔지고 있었다. 철길에 사진 촬영하기 좋게 벤치가 여러 개 마련되어 있고, 심지어 소품으로 자전거까지 놓여 있었다. 철길 위를 걷는데 6번 걸음 걷고 탈락하였다. 

 

여유를 부리느라 남원 광한구에 도착한 시간은 5시가 좀 넘었다. 입장 시간이 제한될까 봐 서둘렀는데 표는 6시까지 팔고 그 뒤로는 자유관람이었다. 그것을 몰라 서둘러 표를 구매했다. 노인 무료를 확인당하면서 내 나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늙었구나. 그럼 어때 이러면서. 

광한루도 정지되고 꾸며지고 넓어지고 쾌적했다. 오작교만 여전한 듯하고 야경을 위해 온갖 곳이 전구불로 장식이 되어 있어 저녁을 먹고 다시 온 광한루는 화장을 아주 진하게 한 모습 같았다. 특히 춘향 다리는 더더욱 그러해서 촌스럽고 어색했다. 광한루 동서남북 길을 대부분 걷게 되었는데 청사초롱으로 범벅을 해놓아서 나중에는 괴기스러웠다. 이쁘고 고즈넉함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면이 늘 아쉽다. 박물관에서 제대로 된 큐레이터를 만나지 못한 듯한 산지사방으로 널려있는 수선스러움이 맛을 깎았다. 

저녁은 광한루 서문 앞에 있는 해물탕집인데 아구찜과 해물찜이 콩나물만 수북하고 몇 점 먹고 나니 없었다. 그나마 볶은밥이 가장 나았다. 공짜 식혜가 느글거리는 맛을 잡아주었다. 야경을 보고 난 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내 소원으로 오래간만에 아이스크림과 아이스떡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숙소가 요상했다. 찜질방과 해물탕을 1층으로 2층은 큰 방, 3층부터 작은 방으로 이뤄졌는데 2층까지는 계단만 이용해야 했다. 옛날 장판식이라서 맨발로 다니기에는 미끄러웠다. 더구나 특색 있게 투숙객 신발을 남녀로 나누어 퇴실 전까지 프론트에서 맡겨야 했다. 아마 찜질방과 같이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201호는 넓고 넓었다. 화장실 문짝이 귀신소리를 내는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짐을 풀면서 가져간 오렌지를 다 나눠먹었다. 느글거리던 속이 편안해졌다. 

 

아침은 가져간 누룽지와 김치와 김으로 대신했다. 남은 오렌지와 아침 사과라고 같이 먹었다. 빵도 내어놓고, 고구마도 내어놓아서 아주 풍성한 아침이었다. 옥순샘이 전날 미리 그릇들을 모두 애벌로 닦아 놓아서 아침이 수월했고, 모두 힘 모아 설거지와 정리까지 하니 순식간이었다. 

 

10시에 퇴실해서 김병종 미술관 옆에 있는 '미안 커피'로 자리를 옮겼다. 건축물들이 대부분 물을 담은 안도 다다오식이라서 식상했다. 물에 비친 모습이 언제나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데 그 모습조차 물을 빼어 자갈만 보였다. 김병종작가가 작품과 책을 모두 기증을 해서 남원시에서 그것을 기리기 위해 지었단다. 화가들은 좋겠다. 작품을 기증한다고 하면 저렇게 수십억 들여서 기념관을 지어주니 말이다. '페이퍼-잼' 이지희 작가(https://street-h.com/magazine/103118/)와 콜라보 전시였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단상을 스케치와 글로 해설처럼 작품 옆에 제시하고 있는데 감동이 없었다. 꽃길만 걸은 '화첩 기행'으로 알려진 서울대 출신의 자기 자랑처럼 느껴져서 비위가 상했다. 이곳은 혜림샘 말대로 노고단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계한 통창과 의자를 배치한 그곳이 없었다면 더 서운했을 장소였다. 

 

점심에는 전국수석회장 회의가 있다고 청주교대로 가야 하는 종숙샘 때문에 서둘러 두레 식당에 갔는데 대기가 만만치 않아서 남원역으로 가서 아침에 준비한 빵과 오렌지를 기차에서 가면서 먹으라고 챙겨주고 배웅했다. 그리고 다시 식당으로 오니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윤희샘이 대기 명단에 올리고 역으로 갔던 거란다. 해서 우리는 정말 맛난 가성비 최고인 청국장과 오징어 볶음을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오징어볶음 3인분이면 청국장 2개가 무료. 청국장이 맛이 있어서 하나 더 추가할 정도였다. 번데기가 나오는 게 특이했다. 양잠업을 어디서 하나? 아니면 중국산? 이러면서 맛을 보았는데 청양고추를 많이 넣어서 너무 매웠다. 젊은 주인장이 다리가 불편한 듯한데 너무 친절해서 더 감동이었다. 이곳은 아주 아주 흥해라 선전해주고 싶은 곳이다. 

 

산들다헌으로 갔다. 옛날 한옥을 덧댄 장소에다 전구를 노란색으로 한지까지 붙여서 들어서는 문도 작더니 캄캄한 소굴 같았다. 신 벗고 들어가는 곳과 의자가 배치된 곳이 두 곳이었다. 쌍화차가 일품이었단다. 대추차도 시켰는데 나는 아인슈페너를 마셨는데 내가 다닌 단골집이 더 맛이 나았다. 너무 침침하고 어두워서 피곤해지고 졸렸다. 운전하기 어렵지 않게 다른 곳을 더 보자고 하지 않았다. 남원시청 옆에 있는 '살롱 드 마고'는 이층이었고 간판도 없었고 설 다음까지 문을 닫는단다. 찾기 어려워 뺑뺑 돌다 찾았는데 알림글이 그렇게 떴다고 해서 아래에서 바라만 보고 왔다. 그러고 보니 작은 책방을 한 군데도 가지 못했다. 영화도 보지 않았다. 뉴스도 보지도 텔레비전을 틀지도 않았다. 한 달 웃을 웃음을 웃어서 그랬을까 끊임없이 먹었는데 오히려 체중은 줄어든 기이한 여행이었다.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했다. 여름은 강진으로 가기로 했다. 

 

이 글 쓰는데 2시간이 걸렸다. 이상 보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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