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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책 읽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은이) 문학동네 2023-08-07

목차와 수록지면

 

1.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007---<<릿터>>2019년 2/3월호
2.몫 / 047---<<한국문학>>2018년 하반기호 
3.일 년 / 085---<<창작과 비평>>2018년 겨울호
4.답신 / 125---<<현대문학>>2021년 6월호
5.파종 / 181---<<창작과 비평>>2022가을호
6.이모에게 / 213---<<문학동네>>2022년 겨울호
7.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267---<<문학수첩>>2022년 겨울호

해설│양경언(문학평론가)
더 가보고 싶어 /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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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분명하게 읽었을 듯 했던 <<일 년>>과 <<파종>>이 기억에 없었다. 

한 작가의 단편을 한 자리에 모아서 읽었을 때 작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서 의외의 경험이었다. 단편 하나로는 쉽게 익힐 수 없는 작가의 고유 성향과 속내와 말하고자 하는 깃대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1편은 희원이의 막막함이 그녀로 지칭되는 대학강사가 등대 역할을 해줬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를 가늠해보는 순간이다. 은행원을 관두고 더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왔다고 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 희원씨도 알죠"

대학강사가 어떻게 소모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비정규직이고, 4대 보험도 없고, 정교수의 궂은 일을 도맡아해야 하는 지금의 대학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에서 작가는 20대 청춘들이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에 대해서 희미한 빛조차 없는 상황을 버티고 살아내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2편  이해진을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바꿔 부르며 3자의 위치에서 객관화 시키면서 독자가 당사자로 느끼게 만든 장치였다. 정윤과 희정이 사이에 낀 당신이 겪은 편집실에서의 관계 설정의 어려움을, 글쓰면서 선배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받고 싶은 마음을, 기지촌 활동가 희정이가 글에 대해 말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글의 힘이 자기가 활동하는 것보다 더 나은지 지금을 잘 모르겠다는 말, 글만 쓰고 내 몫을 했다며 부채감을 털어버리고 자기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멸시가 담겨있어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산다.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것임에도. 심지어 정의로운 사람인 척 하는 것까지. 서로 다른 두 성향의 사람 속에서 갈등하고 성장하면서 편집실을 4학년 졸업할 때까지 지키고 이어간 '당신'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경험터에 대한 애증이 돋보였다. 

 

3편  풍력발전소 중국어 통역 인턴. 카풀을 하면서 서로의 관계가 진심이라고 믿었는데, 남들이 그 관계에 대해 묻자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그저 카풀하는 사이라는 애매한 대답이 다희에게 상처가 되었다. 마지막 한 달을 같이 다니면서 다희에게자신이 '어떤 기대도, 미련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을 느꼈을 때 자기 감정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겁쟁이.

일 년 동안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다희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내 줄 수 있을 정도의 성장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과정의 내면 묘사가 담담하다. 서로 마음을 터놓지 않으면 일년이 아니라 백년이 지나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두려워서 자기의 모습을 감추고 사는 삶은 행복한가 묻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맺고 잊고 사라지게 하면서 살아가는데, 한번쯤 멈추고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서운하다'는 의미를 폭력적인데 가 있고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는 문장에 밑줄 그었다. 

 

4편 23번째 조카 생일에 부치는 편지. 떠난 엄마,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두 자매. 언니는 자주 아빠에게 '천박한 노래' '창녀' 라는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매질보다 더 큰 폭력이 언어라는 것을 언니의 주눅든 행동, 나이 많은 남자가 베푼 허접한 상냥함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언니에게 폭행하고 쥐잡듯 하면서 또 다시 어린 학생들을 꿰어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알고 난 뒤 동생이 할 수 있는 무엇이었을까. 애써 외면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는 한가닥 희망과 변명을 빙자해서. 누구나 피하고 싶은 심리를 이렇게 농밀하게 그려내다니 싶었다. 결국 동생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언니를 인정할 때, 가스라이팅의 위험이 어떠한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자매의 끝이 이토록 비참하다니 싶어 진저리가 쳐졌다. 20여년이 지난 뒤에야 담담하게 자기가 그 당시 왜 그리 했는지에 대한 고백을 수신자도 없이 보낸다는 것은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족이라는 질긴 끈을 지울 수 없는 멍에처럼 말이다. '책읽는 씨앗'들은 이 단편을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꼽았다. 가족, 자매, 교사의 성착취, 잘못된 결혼, 가스라이팅, 파국이 무척 생소하고 처참했을 듯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생생한 내면 묘사와 편지라는 형식이 좀 더 친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5편  오빠와 이혼한 동생과 딸. 여기서도 오빠가 십오년 연상이다. 작가의 작품에는 십이년 연상인 언니 남편, 다음 작품도 이모가 12년 연상이다. 마지막 작품도 애 딸린 이혼남과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다. 3편에 흐르는 가족간의 불화, 가족 폭력, 상처로 얼룩이진 관계의 이야기다. 

 이혼하고 5살짜리 소리를 보듬어주던 오빠. 아빠의 폭력에도 동생을 보호해주던 8살 때부터 밥을 해주고 도시락을 싸주던 오빠. 세상과 관계는 어설퍼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오빠가 동생을 부축이고 작가의 꿈을 놓지말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없는 보살핌으로 8년을 돌봐준 사람. 죽어가면서도 동생의 짐을 자기가 짊어지고 가겠다고 손을 내밀던 사람. 작중에서는 오빠이나 헌신하신 부모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눈물이 났다. 그게 부모 마음이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쏟기만 할 줄 아는 어진 사람의 모습이 달관한 성인처럼 느껴졌지만 아주 외롭고 쓸쓸하고 모진 상처를 가진 인간이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6편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 이모에게 희진의 양육을 맡긴 동생. 그 이모는 국졸로 아기 낳은 기계를 요구하는 시댁을 벗어나기 위해 자궁을 들어내고 탈출한 여자다. 온갖 고생을 했지만 자기가 살고 싶은 꿈을 놓지 않는 사람.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자격증을 딴 사람, 클래식을 들으며 고급 의류를 선호하는 것이 자신을 높일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 동생 남편이 친정에서 받은 유산으로 사업을 도와주지 않아서 실패했다는 원망에도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기에 존경한다는 사람, 6번이나 유산을 하면서도 일하러 다니는 동생과 그 처지를 봐주지 않는 시댁사람들. 

이모가 따로 나와 하숙을 하면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았고, 자신의 과거에 지지 않으려 희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랑스러워한 그 이모의 바램을 잊지 않으려는 존재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안타까웠다. 우리는 왜 진실을 너무 늦게 아는 것일까. 통과의례이기도 하지만 가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다. 

 

7편 기남의 딸 진경과 우경. 가족에게 버려진다는 것이 어떤 슬픔을 갖게 하는 것인지 생모 생일 잔치에 초대 받으면서 느끼는 갈등이 애처로웠다. 잘 살았다는 집에서 넷째 딸이라고 남집에 돈을 얹어주며 식모로 보내는 부모가 제정신일까 싶었다. 남의 집살이를 하면서 누구나 여닫을 수 있는 잡동사니 문가방에서 살면서 온갖 멸시를 다 받아도 학교를 보내준다는 이유로 은인이라고 생각하던 기남. 국졸로 주인집 공장 주방일을 하면서 알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각. 애 딸린 이혼남의 꼬임에 온마음으로 진경과 우경을 키웠지만 비열한 남편의 짓거리는 어려운 시절을 겪은 아내에 대한 멸시로 되돌아왔다. 진경을 극도로 싫어하고 우경을 편애한 남편에게 뭐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마누라 또는 여편네의 권리는 생각지도 못하는 자세. 

우경은 친정엄마를 왜그리 무시했을까. 언니인 진경을 왜그리 못마땅해 했을까.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연구소에 다니는 진경을 왜그리 알콜중독으로 몰고 가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태생에 대한 자기 부정이 냉담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자식에게 그대로 스며든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할까. 자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엄마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속에서 열등감이 쌓여 회피하고 싶은 미국행을 택한 것이리라. 시어머니에게 대하는 깍득함이 친정엄마에게는 냉담과 무시와 손님처럼 대하는 것 자체가 자기 혐오이고 열등감이다. 그러기에 기남의 식모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정부 제인에게 일말의 배려도 하지 않는 모습에서 기남이 느꼈을 절망감이 읽는 내내 마음에 남았다. 특히 부끄럽다는 그 독백은 한 여자의 설움이자, 모든 약자의 아픔일 것이다. 

 

7편을 읽고 작가가 천착하는 가족, 관계, 타인과의 소통, 여리고 섬세한 내면을 가진 자들의 고통에 대해 연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재가 비슷하고, 관계 설정이 비슷하나 조금 다른 이야기로 계속 변주를 하여 기남의 이야기로 교향곡을 마무리 한 느낌이다. 글쓰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글쓴다는 것의 의미,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그래도 살아낸 사람들의 질곡어린 삶이 하찮은 것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어서 울림이 컸다. 

이 작품집을 계기로 전 작품을 살펴볼 마음이 생겼고, 한강 작가의 내면 묘사에 뒤지지 않아 단편이 갖고 있는 압축미를 더 돋보였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