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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알밤 파는 부부

양지바른 쪽 길 모퉁이에 라면상자 4개 정도의 넓이에 안깐 밤과 깐밤을 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다. 부부는 서른 후반, 마흔 초반으로 보였다. 작업복을 입어서 허름하였고, 떡진 머리카락과 까맣게 그을은 얼굴은 고생스런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남편은 양팔거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안깐 밤을 쪽칼로 벗겨내어 하얀 비닐에 담아 묶어 아내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피곤에 절은 얼굴. 표정이 없다. 

노점상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한다. 상점을 낼 돈이 없는데 그들에게 불법이라고 몰아부치면 어떻게 살라는 말인지. 

카드만 있고 현금이 없었다. 깐밤을 좀 사고 싶어서 물어보니 얼굴을 찡그린 아낙네가 그렇다면 자동이체를 할 수도 있단다. 그런데 아주 곤란해 해서 그냥 갈까하다가 다니는 약국에 가서 현금을 조금 빌렸다. 이체할 계좌번호를 받아왔다. 하필이면 그 때 전화기 업데이트를 하는 바람에 계좌이체를 할 수도 없었다. 

밤이 필요했다. 

얼마 안되는 밤을 가지고 나와 부부가 팔아서 돈을 사려는 것이 마치 교과서에서 배운 시 구절이 떠올랐다. 

"대추 밤 돈사야 /추석 차렸다" 

바람이 부는 그늘은 몹시 추웠다. 그나마 양지에서 볕바른 길모퉁이에서 다부진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 발이 멈췄는지 모른다. 얼마 안되는 밤을 모두 다 사주고 싶었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물건을 건네며 환하게 웃는 그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자녀가 있다면 집에 있을텐데 어른들이 돌봐주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또 어떻게 지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빨리 다 팔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정이나 측은지심이 아니다. 길모퉁이에서 그 작은 귀퉁이에 삶을 올려놓고 자기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굽힘없이 그렇게 끈질기게 살아가시길 빌면서 알밤 자루를 건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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