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해봤다. 콧 속이 좀 아팠다. 시청남문검문소에서 했다. 한가했다. 기다리지도 않고 금방 했다. 나보다 식구 생각에 걱정했다. 모임 자리에 안 간 것 잘한 일이다. 더 주의해야겠다. 3차도 신청해서 맞을 예정이다.
이런 문자를 받고 아주 뜨악했다. 어떤 증세도 없었지만 나 혼자 사는 집도 아니고 가족이 만에 하나 옮긴다면 어찌하나 그것이 내내 마음 쓰였다.
오전의 진료소는 한가했다. 밀리는 것도 없고 일하는 사람 6명이 한 팀처럼 움직였다.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그 종이를 들고 간호사에게 건네니 스티커를 붙이고 그 종이를 가지고 다른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해서 갔더니 입안에서 타액을 채취하고 난 뒤, 바로 뉴스에서 많이 본 콧 속에 면봉을 집어넣고 휘저었다. 찡하고 눈물이 날려고 했다. 따끔이 아
니라 뜨끔했다.
내가 간 뒤 몇 사람이 왔다. 모두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한 어린아이는 초등학생 같았다. 그래도 겁먹지 않고 씩씩하게 해냈다. 음성이어야 할텐데 하고 바라보았다.
나 역시도 열도 없고 증상이 없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정이 있었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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