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좋았다. 결코 주저앉지 않은 여자 아이와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가 눈발 속에서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해피앤딩을 예고해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의 실루엣만 그리고 있어서 겉모습이 아닌 온전히 내면의 모습을 보라는 암시처럼 보인다.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버려진 아이, 파양 3번, 이모 김은숙, 풀빛 보육원장, 곽은태 청소년병원, 온곡리와 48층이 견주며 변주를 만들어 갔다.
피디에 의한 극적 유기 신생아로 언론에 노출된 자신의 삶의 시작부터 3번의 파양에 대한 기억까지, 곽시현네 집으로 네번째 위탁이 되는 과정은 아주 어색하다. 사립초등학교의 모습을 그렸는데 학교폭력을 무마하는 조건으로 위탁을 한다는 것이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는 게 맞다. 경제적인 부러움이 있더라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라는 타인에 의해 시켜지는 것은 점점 자신의 삶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멈칫할 것이고 주저할 것이다. 안내를 할 수는 있지만 강요에 의한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자신하는 설이가 과도하게 설정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선택권을 달라는 당돌한 생각을 할 줄 아이였다.
대비되는 곽시현을 통해 작가는 물질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여러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설이를 통해 언급되는 모든 것들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너무 어른스러운 생각들이 툭툭 튀어 나오고 실천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결말 부분은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은 묘사가 이미지로 쉽게 들어오지 않아서 몇 번을 되풀이 읽었는데 상징을 찾아보고 연결을 시키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 읽은 뒤 첫문장과 끝문장을 연결해보니 동요와 춤으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출생의 비밀이 피디의 욕심과 원장의 후원금 모집에 의한 허위라는 것. 그로 인해 좀 더 형편이 나아진 풀빛 보육원에서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것, 원장이 원아들에게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에 대한 진심 부족을,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이모가 너무 순결하게 그리고 있는데 현실에서 그게 가능이나 할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하류 인생을 대표하는 이모가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다닐 수 있는지. 주눅든 이모의 마지막 선택까지 인간적인 모습이나 매우 부족한 모습으로 그린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많이 배웠다고 다 똑똑하고 자기 의견 잘 말하고 하는 것이 아닐텐데 너무 어눌하게 그린 이모의 모습이 많이 서글펐다.
읽으면서 이건 청소년 문학의 '스카이 캐슬'이군 싶었다. 마지막 2달 48층에서 사는 모습이 꼭 닮았다. 그리고 시현이가 설이를 계속 따라다녔다는 마지막 부분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하철 타고 다닌다고, 방문 떼겠냐고 소리쳤다고, 시현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버릴꺼냐고 물었다고 선뜻 설이에게 마음이 닿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뭔가 그렇게 되는데에 둘 사이의 교감이 너무 적은데 결말에 마치 서로 통한 것처럼 매듭지은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다.
1인칭 시점이라서 자기 내면을 잘 표현해서 설이라는 독특한 개성을 살렸으나 이모나 그 밖의 사람들의 내면은 말로 표현하지 않거나 태도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일반적인 도식이 거슬렸다. 부잣집 사람들의 갖는 태도, 가난한 사람들이 취하는 태도, 이런 것을 뛰어 넘어 설이는 2달짜리 경험이 아니라 파양으로 잠깐 잠깐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래서 행동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필연성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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