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51)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5m 높이 '85호 크레인'에 63일째, 전국금속노동조합 문철상(48) 부산양산지부장과 채길용(53)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50m 높이 '17호 타워크레인'에 24일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강병재(49) 의장은 경남 거제 대우조선 남문 옆 20m 높이 송전선철탑에 3일째 올라가 있다.
9일 저녁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한 김진숙 지도위원은 강병재 의장의 건강을 더 걱정했다. 김 지도위원은 강병재 의장과 함께 부산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송전선철탑은 15만4000볼트의 전류가 흐르고 있어 감전 위험 때문에 추위를 버틸만한 장치를 할 수 없어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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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은 7일 새벽 거제 대우조선 송전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 대우조선노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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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생산직 1/3(400명)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던 한진중공업은 230명으로부터 희망퇴직을 받고, 지난 2월 15일 170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또 한진중공업 사측은 2월 14일 직장폐쇄 조치를 내렸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파업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문철상 지부장, 채길용 지회장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강병재 의장은 2년 동안 '원청업체 고용' 등을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2년 전 그가 다녔던 하청업체가 폐업했던 것이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아래 하노위) 활동을 했던 그는 '하노위' 활동을 막기 위해 원청이 개입해 하청업체가 폐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9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4명의 노동자들과 전화통화를 했다. 이들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김진숙 지도위원 "조합원들이 뭉쳐 잘 싸우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지난 1월 6일 새벽 85호 크레인에 올라갔다. 한진중공업 사측이 정리해고(예고) 명단 통보를 앞두고 있었을 무렵이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때 용접공으로 입사했다가 1987년 당시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유인물을 뿌리다 해고됐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복직시키지 않았다. 그가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은 2003년 9월 9일 고 김주익 지회장이 자살했던 곳이다.
노조 지회는 '사수대'를 조직해 두 곳의 크레인을 지키고 있다. 사수대는 밧줄에 먹을거리와 오물통을 매달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평소 허리와 관절이 좋지 않았던 김 지도위원은 한때 건강이 나빠 조합원들이 한때 긴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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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지난 1월 6일부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 윤성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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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김 지도위원은 "잘 있다. 씩씩하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진 조합원들이 단결해서 잘 싸우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왜 올라왔는지 싶기도 하다"면서 "시간 싸움의 성격도 있어 버틸 것이다. 조합원들이 뭉쳐 잘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은 다른 사업장을 더 걱정했다. 부산 영도에 있는 고신대에서 일해오던 청소노동자들이 최근 해고되기도 했는데, 김 지도위원은 "작은 섬인 영도에서만 투쟁 사업장들이 두 곳이나 된다"며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병재 의장을 언급했다. 강 의장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부산에서 같이 활동해서 안다. 진정성도 있는 동지다. 그냥 쇼가 아니라 더 마음이 쓰인다"면서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 송전선철탑이라 천막은 물론 바람막이도 없이 덩그러니 혼자 맨몸으로 앉아 있을 텐데"라며 걱정했다.
김 지도위원은 "조선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가 심각하다"며 "강병재 의장은 2년간 싸웠다. 지난해 부산에서 만나 조선업종 하청업체 해고 노동자들의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8일 대우조선노동조합 간부가 올라가서 대화를 했다고 하는데, 잘 되었으면 한다. 혼자 맨몸으로 공중에 있으면 고립감이 더 클 것인데, 정말 걱정이다"고 말했다.
한진중 문철상-채길용 "정치권은 사회갈등 해결해야"
문철상 지부장과 채용길 지회장은 지난 2월 14일 새벽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 이들은 이날 저녁 전화통화에서 "건강은 괜찮다"고 말했다.
문철상 지부장은 "조합원들은 아직 견디고 있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누구든지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잇따라 자살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했다. 문 지부장은 "쌍용차 사건을 보듯이 그야말로 해고는 살인이라는 게 증명되고 있다"면서 "한진중공업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권이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갈등을 치유한다는 차원에서 정치권이 실질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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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조 문철상 부산양산지부장(오른쪽)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은 2월 14일 새벽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50미터 높이 17호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 최성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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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영도)이 한진중공업 해고·직장폐쇄의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문 지부장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개인의 발언으로 끝날 게 아니고, 실질적으로 사회갈등을 푸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정조사를 시도를 했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해서 반대했다"면서 "김형오 의원은 국회의장을 지낸 의원답게, 그 발언에 진정성이 있다면 같은 당 소속 환경노동위 의원들을 설득해서 야당의 요구에 응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이들에 대해 퇴거와 농성을 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문철상 지부장과 채길용 지회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며,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서는 업무방해로 하루 100만 원씩의 손해배상을 결정해 놓고 있다.
거제 강병재 의장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해야"
강병재 의장은 송전선철탑에 "해고투쟁 2년, 위장폐업·해고살인 차라리 죽여라"와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의 삶이 자본가의 이윤보다 더 소중하다"고 쓴 펼치말을 내걸어 놓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제조업의 모든 비정규직은 불법파견이다"며 "위장폐업, 해고살인 대우조선이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8일 바람막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합판을 올려주었다. 그런데 경찰이 감전 위험 등의 이유를 들어 설치하지 못하도록 했고, 강병재 의장은 9일 설치했던 합판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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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 강병재 의장은 7일 새벽부터 거제 대우조선 송전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 대우조선노동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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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의장은 이날 오후 전화통화에서 "바람이 많이 분다, 춥다"면서 "범죄자도 인권이 있는데, 노공농성자도 인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합판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부당하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사내협력업체의 실제 사용주는 원청이다, 원청이 개입해서 협력사를 폐업시켰으니까 원청인 대우조선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너를 갖고 올라간 강병재 의장은 지난 7일 전화통화에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같다.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딸과 어머니, 동생, 누나들이 있는데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