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중의 <바람처럼 달렸다>를 읽고
김남중의 <바람처럼 달렸다>의 목차를 보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꿰어진다.
도둑맞은 자전거/ 목이 부러지다/막걸리 아저씨/ 새 중고 덜컥 자전거/고기잡이 대모험/ 담배 한 갑/ 거꾸로 자전거/ 캘리포니아 건포도/ 이인용 자전거/ 네가 하면 천 원, 내가 하면 만 원/개호랑이 습격사건/무쇠다리 민경이 누나
‘도둑맞은 자전거’에서는 주인공 ‘동주’의 캐릭터와 함께 도둑맞았을 때의 그 심정을 너무잘 그렸다. 이것은 작가가 잃어버린 경험이 없다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게 찾으려고 애를 쓰는 그런 심리묘사에 크게 공감하였다. 자전거를 잃어버렸을 때 우리 아이들 심리가 저러했으리라 짐작하면서.
‘목이 부러지다’에서 그 또래의 영웅심이 어떤 모습으로 발현이 되는지 그리고 있다. 겁날 게 없어 보이고, 실제로 겁을 내지 않을 것 같은 그 아이들도 결국 마음 속에서는 겁내고 있고 떨고 있다는 거를 보여주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자전거 목이 부러질 정도인데 찰과상 정도만 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자전거를 잘 타는 아이니까 순발력이 그렇게 좋을 수도 있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이 필요한 것은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괜한 걱정은 아이들이 따라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한순간 드는 것을 보니 내가 늙긴 늙은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들인데. 다치면서 크는 거지. 자기 목만 부러지지 않게 놀면 되는 일인데.
‘막걸리 아저씨’에서는 세단 차와 맞닥뜨린 힘없는 일하는 노동자의 위치에서 그냥 그렇게 낭자하게 쏟아진 막걸리로 손해를 입고도 뭐하고 대거리를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마음이 알싸했다. 노동자는 상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세단 차주는 자기가 가는 길을 비키지 않았다고 오히려 자기 차가 얼마나 비싼지 아냐면서 겁박을 주고 있는 것이 꼭 세상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는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다른 차들은 비켜줬다고. 길이 자갈길이고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부적절한 길임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비켜줬는데 그 외지에서 온 세단만 비켜 가주길 바란 거였다. 얼마나 절묘한가. 동네 사람들이 쏟아진 막걸리를 보면서 어쩌겠나를 찾으며 쏟아진 막걸리를 거저먹겠다고 달려드는 모습도 눈물나는 익살이었다.
‘새 중고 덜컥 자전거’에서는 자전거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더불어 그것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터득을 통해 자기가 처해 있는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픈 대로 일을 할 때에도 그렇게 순간 순간 조절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자기 안의 탐색도 이제는 끝났고 내적 성장을 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잡이 대모험’에서는 드디어 마을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겁 없은 두 아이가 나온다. 갈 때와 달리 올 때 마실 물이 없어서 결국 잡아 온 것을 모두 내밀고는 고작 얻어먹은 것은 조금이지만 그렇게 삶의 순간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재화이든 수확물이든 노력이든 바꿔서 살아가야 함을 익혀야 한다는 것으로 읽혔고, 너무도 싸게 팔려가는 어린 노동들에 대한 댓가 같아서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그게 어디냐 하면서 부당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 한 갑’에서는 작가가 기교를 부리고 있지만 상당히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이 글 전체에서 가장 흠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를 숨기면서 쩔쩔매는 그 호기심에 대해서는 긍정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사촌 형에게 내밀면서 충동을 억제하는 것과 사촌 동생을 생각해서 끊었다고 말하는 것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렇게 천방지축인 아이라면 호기심에서라도 형 몰래, 또는 형하고 피워 물면서 눈물 나고 그래서 괴로운 것이 너무 상투적이라고 느꼈을까. 내가 작가라면 그래서 아빠한테 들키거나 해서 그런 해로운 일한 가족과의 대화를 찾아 그렸을 것 같은데, 이 작품에서 동주 아빠는 있지만 역할은 아주 미미하다. 이 작품 전체에서 어른들은 크게 ‘동주’의 삶과는 무관하게 그려지고 있다. 자전거를 사주는 사람 정도의 의미라고 할까. 그나마 고물 자전거를 목이 부러졌을 때 다시 붙여준 아빠가 딱 한 번 그려졌을 뿐이다. 그리고 경구처럼 자전거포 아저씨도 다음에는 네 목이 부러질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건포도’에서 이 작품은 빛났다. 아이가 슬쩍하고 싶은 심리묘사를 어쩌면 그리도 잘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친구에게 시치미를 떼면서 캘리포니아 건포도를 나눠먹는 넉살은 특유의 해학을 담고 있다. 아닌 척 그럴 듯하게 폼을 잡는 ‘동주’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유치한 장면을 몰입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치밀한 내면 묘사가 갖고 있는 힘이다. 그 갈등 속에서 덜컥 배고픔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에 질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할 것 같지는 않음을 알 수 있어서 정말 글맛을 아는 작가이군 싶었다.
‘이인용 자전거’와 ‘무쇠다리 민경이 누나’에서 발전된 연애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무조건 좋을 줄 알았던 퀸카가 결국 자기를 부려먹는 사랑이라는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없음을 깨닫는 과정이 힘겹게 그려져 있었지만 아주 생생했다. 그 힘듦과 그 뒤에서 깔깔대며 그 고통에 대해 아무런 감동이 없는 이런 부류의 여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같았다. 그러면서 민경이 누나에게 절대로 ‘누나’라고 부르지 않을 거라면서 새로운 상대를 찾아 좀 더 발전된 감정의 성장을 하는 모습은 대견하기만 하다.
다만 ‘네가 하면 천 원, 내가 하면 만원’에서는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재미가 적었다. 자건거 조립을 하는 장면도 전혀 경험이 없다면 머리에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이다. 더구나 갑자기 ‘개호랑이 습격사건’을 만나면서 시골의 인심이 좋다는 것과 우연하게 할아버지 친구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 개연성을 떨어뜨렸다. 작가는 꼭 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을까. 자전거를 주제로 하다가 괜한 옛이야기가 끼어든 꼴이 된 셈이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는 자전거라는 소재 하나로 13살짜리 남자 아이가 어떤 내적 성장을 해나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외부 공간에서는 집 주변에서 학교 주변으로 또 다시 마을 주변으로 더 나아가 마을 경계로 그리고 마지막은 마을을 벗어나기까지 과정으로 공간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내적 공간 또한 심리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의 우쭐거림으로 시작해서 다치고 ‘덜컥’거리면서 최고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이 같은 반 여자 아이를 지나 자기보다 세상을 조금 더 산 누나에게로 쏠리고 있다. 외모보다 자신의 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진짜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간다.
이렇게 심리적인 성장은 여러 장애를 극복하면서 커나간다. 현실을 그리되 아이 눈으로 슬쩍슬쩍 건드리기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동화적인 요소를 더 부각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서사 진행이 또렷해서 또래 아이들이 읽으면 성적 호기심도 채워질 수 있고 남자끼리의 유대도 느낄 수 있어서 쉽게 다가올 것 같은 작품이다. 위에서도 지적했지만 몇 가지 작위적인 흠결이 그래서 더 아쉽지만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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