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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8년 전 동료 목 맨 곳에서 다시 "함께 살자"

8년 전 동료 목 맨 곳에서 다시 "함께 살자"
[현장]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2003년 고 김주익 자살 현장... 김진숙 지도위원 고공농성
11.01.08 10:11 ㅣ최종 업데이트 11.01.08 10:25 윤성효 (cjnews)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6일 새벽부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고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7일 저녁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이 크레인 아래를 지키고 있는 모습.
ⓒ 윤성효
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3도크와 4도크 사이에 있다. 바닥에서 운전석까지의 높이가 35m, 총 높이는 70m이며, 총 중량은 100톤이다. 이곳에 8년 만에 또 한 생명이 올라가 목숨을 담보로 '함께 살자'를 외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김진숙(51) 지도위원이 지난 6일 새벽 고공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김 지도위원이 올라간 크레인은 고 김주익 지회장이 12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뒤 2003년 10월 17일 목을 매 스스로 자결했던 곳이다.

 

고 김주익 지회장은 '구조조정 중단'과 '근로조건 개선'을 내걸었는데, 김진숙 지도위원 역시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크레인에 침낭과 옷 등 간단한 물품만을 챙겨 올라갔다. 그는 계단에서 25m 높이에 있는 통로 출입문을 안쪽에서 잠궈 버렸고, 35m 운전석 아래 출입문도 잠금장치를 해놓았다. 사실상 아래에서는 접근할 방법이 없다.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6일 새벽부터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속에,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7일 저녁 크레인 아래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 윤성효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해고자다. 그는 1981년 7월 대한조선공사(한진중공업 전신) 직업훈련원에서 3개월 동안 용접교육을 받고 1981년 10월 1일 정식 입사했다. 1986년 7월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을 하다 '명예실추, 상사명령 불복종' 등의 이유로 해고되었다

 

해고 당시 같이 활동했던 17명의 동료들은 2003년 고 김주익∙곽재규 열사 투쟁 당시 모두 복직했다. 당시 김 지도위원만 복직하지 못했는데, 25년째 해고 생활을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한진중공업 사측은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2009년 말에도 정리해고 방침을 밝혔는데, 김 지도위원은 2010년 2월 5일까지 24일간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자 한진중공업 안팎에서는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8년 전 2명이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 2003년 당시 고 김주익 지회장이 자살한 뒤에도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재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한진중공업지회(지회장 채길용)는 항시 30명씩 '규찰대'를 조직해 크레인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줄을 매달아 밥과 죽, 고구마 등을 올려주고 있다.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은 50대 조합원은 "생산직 1200여 명이 모두 조합원이라고 보면 된다. 전국에서 100% 가입하고 있는 사업장이 드물 것이다. 2003년 고 김주익·곽재규 열사를 생각하며 조합원들은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면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건강하게 빨리 내려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7일 저녁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정리해고 철회 결의대회'를 열었는데, 전국금속노동조합 한진중공업지회 채용길 지회장 등이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윤성효
한진중공업

 

김진숙 "내 발로 크레인 내려가는 일 만들어야"

 

김진숙 지도위원은 7일 저녁 크레인 아래에 있는 기자와 전화통화를 했다. 다음은 전화통화 내용이다.

 

- 요즘 날씨가 추운데 걱정이다

"밤에 후풍이 있어 잠을 자는데 불편하다. 그래도 버틸만 하다."

 

- 높은 곳인데 겁이 나지 않는지?

"겁 난다. 바람이 불어 흔들릴 때 더 그렇다."

 

- 언제 내려 올 것인지?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다. 봄에 텃밭을 만들어 씨를 뿌릴 것이다."

 

- 올라가기 전에 누구와 상의했는지?

"누구하고도 상의하지 않았다. 아마 상의했더라면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혼자 생각해서 올라왔다."

 

- 하고 싶은 말은?

"한진중공업 조합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85호 크레인은 무겁고, 깊은 상처로 느껴진다. 이제는 그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 이곳은 죽은 공간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6일 새벽부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35m 높이 전체 크레인 가운데 25m 정도 위치에 있는 출입문으로, 김 지도위원은 안쪽에서 출입문을 잠궈버렸으며, 밖에서 조합원이 지키고 있는 모습.
ⓒ 윤성효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은 고공농성 둘째 날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편지는 이날 저녁 크레인 아래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분쇄 결의대회' 때 김둘례 민주노총 부산본부 선전부장이 대신 읽었다. 김 부장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85호 크레인은 생각하면 무겁고, 깊은 상처로 다가온다. 상처를 극복해야 한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죽은 공간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공간이다.

 

공기 좋고, 전망 직이고(죽이고). 젤 좋은 게 뭔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다 알루(아래로) 보입니다. 방이 좀 작아서 그렇지 발코니도 널찍해요. 봄이 오면 텃밭을 가꿔서 가을에 걷어 먹을 생각입니다.

 

저 나름으로 크레인 생활 수칙을 정했습니다. 양치질은 짝수 날만 한다. 세수는 윤석범 동지 장가가는 날은 꼭 한다. 샤워는 국경일 날 한다. 오늘은 빨랫줄을 매고 빨래해서 널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35m 크레인 위에서 군고구마 먹어본 분 계십니까? 아마 명바기(이명박 대통령)도 그건 못해 봤을 겁니다. 오늘 아침엔 밑에서 부르고 난리를 칠 때까지 늦잠을 자서 많은 분들이 놀랬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지닌 상처는 깊고도 아픕니다. 8년 동안(2003년 이후) 한 번도 주익(고 김주익 지회장)씨 이름을 편하게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김주익'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곤 했습니다.

 

저는 지금 주익씨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하루를 보내고, 주익씨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잠을 자고, 주익씨가 살아생전 나지막히 봤던 세상의 모습들을 봅니다. 그리고 저는 주익씨가 못해 봤던 일,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 끝내 못했던, 내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일을 꼭 할 겁니다.

 

그래서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이 되도록 제가 가진 힘을 다하겠습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속에, 김둘례 교선부장이 7일 저녁 크레인 아래에서 열린 결의대회 때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편지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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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크레인 아래 1300여 명 모여 촛불 들어

 

1300여 명이 모여 크레인 아래에서 촛불을 들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7일 저녁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가 열리는 동안 김진숙 지도위원은 크레인 운전석 밖으로 나와 불빛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채길용 지회장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연대 투쟁을 결의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반드시 잘못된 정리해고를 철회시킬 것이다. 사측은 지난 5일 명단을 통보할 예정이었다가 우리의 단결된 투쟁을 보고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간 것은 우리가 분열되지 말고 단결하라는 의미다. 지회장으로서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가 단결하면 정리해고 철폐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 첫째도 단결이고 둘째도 단결이다"고 호소했다.

 

이국성 부산지역일반노조 위원장은 "다른 선박회사들은 수주를 많이 하고 있는데 2년 넘게 수주를 못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김근주 건설기계노조 부산경남지부장은 "지역 모든 동지들을 믿고 정리해고 분쇄 투쟁에 나서자"고 말했다.

 

박양수 민간서비스연맹 부산경남본부장은 "6일 고공농성 소식을 휴대전화 문자로 받고 상당히 흥분했다. 허둥대지 말자고 다짐했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갔다고 생각하고, 언젠가 집들이 할 것이라 생각하자"고 말했다.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은 "현장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사소한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것이 김 지도위원이 올라간 이유이기도 하다. 김 지도위원이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는 입장을 밝혔다.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이 싸움은 승리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이 힘을 뭉쳤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자고, 함께 살자고 싸우는 것이다. 조그마한 차이를 극복하고 지도부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면서 "민주노총 본부는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속에, 민주노총 부산본부 연맹 대표자들이 7일 저녁 열린 결의대회에서 투쟁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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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사측 "정리해고 방침 변함 없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2010년 말부터 생산직 1/3(400명)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을 밝혔다. 지난 2일까지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49명만 응했다. 사측은 5일 정리해고 명단(351명)을 통보할 예정이었다가 연기했다. 노-사 교섭이 열렸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이 대규모 구조조정 방침과 관련해 갈등을 빚고 있는 속에, 사측은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안내문을 통해 출입과 농성 등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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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사는 지난 4일과 5일 두 차례 교섭을 벌였다.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교섭은 결렬되었지만, 노-사 실무팀 간사들이 연락하기로 해 여지는 남겨 놓았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추가 명예퇴직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사업장에서는 간부들이 나서서 명예퇴직 설득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정리해고 방침은 변화가 없다. 정리해고 부담을 최소화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측은 2년 넘게 선박 수주가 없어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에 들어가자 한진중공업 사측은 긴장하고 있다. 영도조선소 2도크와 4도크에서 건조 중이던 선박을 6일과 7일 사이 다른 곳으로 빼냈다. 조합원들이 점거 농성에 들어갈 것으로 보고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영도조선소 3도크에서만 선박 1척이 건조 중에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은 6일 정문 앞에 "영도조선소는 국가보안 목표 시설로, 승인 없이 함부로 출입을 하거나 점거, 농성, 손괴 등을 할 경우 관계 법에 의거 엄히 처벌받게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노조 지회는 2010년 12월 2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전체 조합원들이 영도조선소 안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다.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는 지난 3~5일 사이 '48시간 철야농성'을 벌이기도 있다.

 

새해 벽두부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은 노동계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부산지역 최대 기업체다. 한진중공업의 이번 정리해고 문제를 두고 노동계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의 관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