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에 저녁 때우고 잔업해도 해고, 우리가 벌레인가?"
[현장] 찬바람 감도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단식 농성장
기사입력 2010-10-27 오전 11:00:14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송경동 시인이 발을 헛디뎠다. 양말 바람으로 돗자리를 밟고 일어나 신발을 내던진 후 몸을 추스르지 못한 탓이다. 허우적대던 그가 결국 중심을 잃고 2미터가 넘는 포클레인에서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다리부터 떨어졌지만 이내 발목을 잡고 신음을 내뱉었다. 신발을 던진 방향에는 포클레인이 길을 막았다며 욕설을 하던 택배기사가 황급히 트럭에 올라타려다 조합원들의 항의에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된 기륭전자 구 사옥 앞에서 26일 늦은 오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조합원들이 시인을 앉히고 발목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는 순간에도 그는 "나 좀 포클레인으로 옮겨 달라"고 반복했다. 고성과 함께 만류가 이어졌지만 그는 기어이 부축을 받아 다시 포클레인 위에 펼쳐놓은 텐트에 몸을 뉘었다. 양말을 벗겨보니 발꿈치가 기묘한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시인은 끝까지 병원에 가는 걸 거부하고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2005년 8월 24일 공장 점거로 시작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싸움이 이날로 1890일째다.
▲ 기륭전자 구사옥의 농성장에 걸려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장갑들. 이들이 일손을 놓은 지도 6년이 지났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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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 파견 노동자, 그들은 왜 싸웠나?
자그마치 6년이다. 한 때는 목숨을 건 단식이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며 주목을 받았고, 타결 직전까지 갔던 협상이 엎어지는 걸 반복하면서 세인들의 기억에 사라지기도 했지만 그들은 항상 그 곳에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돼 아파트형 공장을 짓는 부지가 된 옛 사옥터 경비실 옥상에서 소복을 입은 기륭전자 조합원 윤종희, 오석순 씨가 다시 단식을 시작했다. 3번째 단식. 2006년 30일, 2008년 94일에 이어 이번에도 정해놓은 기간은 없는 것까지 똑같다.
달라진 풍경이 있다면 경비실 앞에 포클레인 한 대가 서 있다는 점이다. 기륭전자가 부지를 팔고 난 이후 새 땅 주인이 세워놓은 차다. 지난 15일 아침 이 차에 기사가 올라타 농성장으로 향했고 윤종희 조합원은 바퀴 밑에 드러누웠다. 사측이 물러난 이튿날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 위에 텐트를 얹었다. 경찰의 진압 시도에도 포클레인 위로 뻗은 전깃줄을 붙들고 내려오지 않았다. 포클레인에는 은박지로 만든 용머리와 조등을 매달아 꽃상여를 만들었다.
6년 동안 단식과 협상, 그리고 결렬, 다시 단식과 협상, 결렬이 반복됐다. 싸움이 오래되면 처음 싸우게 된 이유를 잃어버릴 만도 하다. 목적을 잊은 채 원한만이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해 파업을 시작했던 이유를 또렷이 기억한다.
▲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프레시안(최형락) |
"IMF가 오면서 정규직 중심이었던 구로공단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들어갔어요. 정규직의 빈자리를 계약직들이 메우기 시작했는데 2002년부터는 기륭전자가 거의 처음으로 파견직을 고용하기 시작했죠. 2002년 6월에 입사했는데 당시 50명이었던 직원이 연말에는 100명이 됐다가 이듬해 2월이 되니 다시 50명이 되더라고요. 고무줄 늘였다 줄였다 하듯 인원을 조정할 수 있게 된 거죠.
파견 노동자에 대한 해고는 정말 무차별적이었어요. 지각 한두 번 하면 나오지 말라며 해고, 업무지시 못 알아들었다고 해고, 애가 아파서 조퇴해야겠다고 말하면 그냥 집에 가서 푹 쉬시래. 특근하고 돌아가는 길에 20~30명이 한꺼번에 잘린 적도 있어요.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라 부품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번 주에 납품이 늦어지면 한꺼번에 자르고 다음 주에 새로 그 인원만큼 뽑는 식이죠. 물갈이 해고라고 하죠. 잘 알려진 '잡담 해고'의 경우엔 업무를 이렇게 하면 효율이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가 '너 그렇게 잘났냐'며 잘린 거에요.
그래도 잘린 사람이 뭔가 흠이 있었겠지, 하면서 일했어요. 내가 잔업, 특근 군소리 없이 다 하고 시키는 대로 일하면 안 잘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제일 어려운 공정에서 정말 일 잘하던 아주머니 하나가 목 디스크 때문에 공정을 바꿔달라고 하다가 잘린 일이 있었어요. 정규직 직원 하나가 출산휴가를 썼는데 그걸 핑계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 젊은 계약직들에게 3개월, 6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내밀었어요. 충격이었죠. 열심히 하기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6년의 싸움, 그들은 왜 포기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들은 2005년 7월 노조를 결성했다. 당시 해고자들이 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넣었고, 한 달 만에 판정이 났다. 조합원들은 함부로 잘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법파견 판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륭전자는 노조에 참여한 1년 미만 계약자를 모두 해고하고 진성도급화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갔고 직장폐쇄, 공권력 투입, 구속, 삭발, 단식이라는 '과정'이 뒤따랐다.
"불법파견 판정이 나면 당연히 직접 고용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진성도급하면 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기륭은 처음부터 자기들이 합법도급이라고 하고 있었고. 판정이 내려진 참에 진짜 합법도급 하겠다고 하청업체 4개를 끌어왔어요. 기륭이 무상으로 제공한 생산 라인에 무상으로 제공한 자재를 조립하는 거죠. 똑같이 출근해서 똑같은 라인에서 일하는데 작업복이랑 출퇴근카드만 하청업체 이름으로 바뀐 거예요. 정규직까지 사직서 받아서 하청업체 소속으로 돌렸는데 임금 격차는 똑같았어요. 특별 수당 같은 걸로 보전해 준거죠. 그런데 법원은 그게 합법이라고 하더라고요.어자피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기륭 측 연구진들이 투입되는 걸 알면서도요."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과 과징금, 임금을 받을 수 없어 심해지는 생활고는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파견 노동자들이 현장을 털고 일어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만든다. 기륭전자분회 역시 결성 초기엔 조합원이 200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32명으로 줄어들었다. 6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떠난 이들보다 떠나지 않은 이들이 더 신기할 정도지만, 그들에게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생계 때문에 많은 이들이 기륭을 떠나서 구로공단의 다른 업체에 취업해요. 하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에요. 파견직을 벌레 보듯이 대하고, 3등 노동자 취급하는 태도. 기륭 사태 덕에 다른 공단 업체들도 '아, 저렇게 하면 합법이구나'라는 걸 알아버린 거죠.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맺고 두세 번씩 해고당하는 건 기본이에요. 잔업하는 날 저녁시간이 없어서 휴식시간 10분 안에 김밥이랑 우유 허겁지겁 먹고 일해서 받는 돈이 한 달에 고작 120만 원이에요. 그런 현실이 너무 끔직해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곳도 기륭처럼 돼버린 거죠.
정말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문제인가 생각도 해봤어요. 사장 한 명만 마음을 바꿔먹으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이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싸워야 하나 싶었어요. 우리가 죽거나 해결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싸우면, 우리의 그런 마음이 절박하고 진실하다면 전달이 될 거고, 그들의 마음도 울리지 않겠나라고 생각한 거죠."
그렇게 시작한 94일의 단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김소연 분회장의 말에 따르면 "착각"이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단식에 동참하고 사회적 여론이 높아지면서 사측도 교섭에 다시 나섰지만 '끝장'을 볼만한 내용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900여일이 지났다.
▲ 다시 단식을 시작한 기륭전자분회 윤종희, 오석순 조합원. 2006년 30일, 2008년 94일에 이어 13일째다. 이번에도 정해놓은 기간은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
"이제는 끝내야 한다"
예전보다 대중의 관심에서는 멀어졌지만 그들은 출근투쟁과 선전전, 촛불문화제를 끊임없이 이어왔다. 회사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사옥도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그들은 구사옥 경비실 옥상을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전반의 문제로 대두됐다. KTX, 이랜드, 포스콤 등 비정규직 싸움이 새로 생겨났고 성과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여전히 6년 전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있다.
"현대자동차 판결은 반쪽짜리 판결이에요. 2년 이하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어요. 구로공단 비정규직처럼 초단기 계약에 해고를 밥 먹듯이 당해 근속연수가 짧은 이들은 여전히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요. 노조가 없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지난 8월 재개된 협상마저 결렬되자 그들은 다시 단식을 재개했다. 진보신당 심재옥 대변인이 국회에서 그들의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고, 야당 의원들이 모여 기륭전자 문제를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사옥 부지를 매입한 업체가 사업진척을 위해 중재에 나서면서 협상이 다시 급물살을 탔다. 정치권과 노동계, 사측까지 나서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생산 현장에 돌아가지 못해도 실패한 싸움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사회가 '아, 저렇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알 수 있게 됐잖아요. 2005년 당시 충돌로 부상을 입은 조합원들을 치료하겠다고 오신 한의사 분이 있었어요. 그 분 말씀이 언론 기사를 보고 '저 사람들이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내용을 과장했나보다'라고 생각했데요. 그런데 막상 현장을 와보니 '21세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더래요.
현장에 돌아가게 된다고 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불법파견 문제가 원천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비참하게 일하는 이들의 처우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에요. 집에서는 존경받는 엄마, 부인, 딸인데 회사에 오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 회식을 하면 정규직 파견직 따로따로 앉아 우리들은 좋은 술 하나도 못시키게 하는 현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정규직은 7일 휴가를 주는데 우리는 3.5일밖에 쓰지 못하는 현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서 느끼는 인격적 모멸감….
다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싸우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도 이렇게 오래 끌 줄은 몰랐어요. 시작했을 때부터 알았다면 엄두를 못냈겠죠. 그래도 그때 시작을 안했으면 후회했을 거라고 다들 말해요. 우리를 벌레보듯 하던 이들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면 떠나도 한이 맺혔을 거라고요. 다시 그 때도 돌아가도 싸울 것 같아요. 지금처럼 길게만 아니라면(웃음)."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 송경동 시인의 '낙마'사고가 벌어졌다. 택배기사와의 다툼에 몰려나온 조합원들, "우리도 당신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택배업체 측의 다독거림을 경비실 옥상 텐트에서 나온 윤종희 조합원이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경비실 앞 컨테이너 옥상에 펼쳐놓은 텐트에도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단식에 동참한지 5일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포클레인과 옥상 텐트에서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 농성장으로 밀고 들어오던 포클레인은 꽃상여로 '변신'해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의 농성장이 되었다. 재개된 협상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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