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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함께 따뜻한 콩국 먹겠습니다-김진숙 동지 단식에 부쳐

함께 따뜻한 콩국 먹겠습니다
[쿡! 세상 꼬집기14] 한진중공업 김진숙 누이께 띄웁니다
오도엽(작가)  / 2010년02월03일 0시36분

도시를 세우는 노동자

대형 조선소에서 배 한 척을 만드는 일은 황무지에 도시를 세우는 일과 다름없다. 배 한 척에 호텔이 있는가 하면 공장이 있다. 숱한 날을 망망한 바다에서 사람과 함께 떠있으려면 도시를 옮겨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을 것이다. 배의 설계에서 완성까지 세상의 갖가지 노동이 투입된다.

조선소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눈앞에 까만 머리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식당 앞에 사람이 모인다. 내가 일한 조선소에서는 식사 종이 울리고 식판에 밥을 받아 한 술을 뜨기까지 이십 분이 넘게 걸리곤 했다. 아예 밥을 타려고 줄을 서는 게 싫어 족구 한 판을 하고 느지막이 식당으로 향하는 동료도 있었다.

연초부터 조선소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어느 조선소인가보다 죽은 이가 원청 직원인지 협력업체 직원인지를 찾는다. 올해도 여전히 협력업체 직원의 숫자가 많다. 사망사고였으니 협력업체 직원이라도 산업재해 처리는 될 것이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협력업체에서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큰 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협력업체에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해마다 협력업체는 조선소와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때로는 배 한 척 당 공사를 계약하고 입주하는 경우도 있다. 원청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협력업체의 여건 때문에 산업재해가 많다는 것은 계약에 불리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당분간 벌어먹기 힘들겠다

산업재해 소식을 들으며 또 하나 떠오르는 생각은 없는 놈들 당분간 벌어먹기 힘들겠구나, 였다. 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지만 이들 가운데 일급이나 월급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오늘 하루 내가 철판을 용접한 길이에 따라, 내가 오늘 하루 철판을 갈아낸 양에 따라, 내가 오늘 하루 페인트를 칠한 면적에 따라 돈을 받아가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조선소는 온갖 호들갑을 떨며 안전교육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규정을 들이대며 현장 노동자에 대한 간섭이 늘어난다. 사망사고에 대한 화풀이를 하듯이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야 하루 일당을 맞추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얼마나 빨리 배를 건조하느냐가 경쟁력의 척도가 되는 게 한국 조선 산업의 현재가 아닐까 싶다. 도크에서 일년에 몇 대를 빼낼 것인가가 조선소의 생산 목표다. 안전과 품질은 말로만 앞세운다. 수십 톤이 넘는 거대한 철구조물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조선소에서 속도 경쟁은 곧 죽음이 언제든지 노동자의 곁에 있다는 뜻이다.

나도 한때 조선소에서 능력 있는 하청 노동자로 칭찬을 받기도 했다. 돈도 좀 만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가능하게 만든 공정 단축의 능력 때문이다. 방법은 쉬웠다.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일을 하고, 남이 쉴 때도 일을 했기 때문이다. 폭발 위험이 있는 페인트 작업을 주변에 불꽃이 튀는 용접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때도 했다. 순간 순간 아찔아찔한 경험도 많이 했다. 내가 일하던 탱크 안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유기용제에 질식해 쓰러진 일도 있었다. 한 동료는 작업대에 깔려 영원히 눈을 뜨지 못했다. 한쪽 눈을 실명한 동료를 업고 뛰어갔던 기억도, 그 동료가 한쪽 눈을 감으니 뭔가 아롱아롱하는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

죽은 자와 산 자

안전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 동료는 죽고 안전규칙을 지켜 나는 살았을까? 안전을 몰라 그 동료는 실명을 하고 나는 두 눈이 멀쩡했을까?

조선소에서 아침마다 안전조회를 했다. 말이 안전조회지 오늘 달성하지 않으면 내 목이 날아갈 생산 강요의 시퍼런 칼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칼춤이 끝난 뒤 동료들과 함께 검지를 원 중앙으로 모으고 ‘안전 안전 안전’ 세 번 외치고 박수를 치는 게 안전의 전부였다. 헛된 메아리가 새벽공기를 가르고 조선소의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 시절 돈에 눈이 어두워 목숨을 걸고 일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내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일터를 빼앗기기 때문이었다. 그 일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했다. 지금도 조선소에는 골리앗 크레인의 무시무시한 경보음 아래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가 숱하리라.

지금 저 남녘 땅 부산의 한 조선소에서는 용접사였던 여성 노동자가 곡기를 끊고 있다. “죽거나 병신이 돼가며 평생을 일했던 아저씨들이 죄인처럼 쫓겨나는 건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어서. 벌써 스무날이 넘었다. 그 조선소에서 수천 명의 노동자를 거리에 내몬다는 말에 그 노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길바닥에 나앉아 굶는 이것밖엔 할 게 없겠다”며 지푸라기처럼 푸석하게 말라가고 있다. “정리해고 방침이 발표되면서 아저씨들의 불안한 눈빛이” 자신의 눈에 보이기에 그는 조선소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곳에서 편지를 쓴다. “열에 여덟은 하청노동자들”이고, 그 하청노동자들 가운데는 “정규직이었다가 하청이 된 아저씨들”도 많다고. “이미 하청노동자들은 천명 가까이 짤려” 식당과 통근버스가 “텅텅비었다는 소문이 괴담처럼 떠”돈다고.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그의 이름은 김진숙이다. 그가 일한 조선소는 한진중공업이다. 누군가는 ‘김진숙에게 죄송하다’라는 칼럼을 일간지에 실기도 했다. 나는 그의 이름 앞에 죄송하다는 말조차 할 염치가 없다. 나는 죽음의 조선소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 나왔다. 김진숙은 노동을 하다 자신의 두 다리가 철판에 깔려 죽을 뻔한 그 조선소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아저씨들”의 죽음을 막으려고 목숨을 걸고 그 조선소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바닥에 나앉아 굶는 이것밖엔 할 게 없겠다고 마음을 굳히며 그래도 거창한 꿈을 품었습니다. 민주노총이 당장 천막을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단위노조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한진중공업 앞에서 태종대까지 천막이 늘어설 것이고 그럼 이길 것이다. 사람이 안 죽고도 이길 것이다. 김주익도 그런 마음으로 홀로 크레인 위에 올랐겠지요. 엿새를 이러고 있어보니 김주익은 … 우리가 죽였습니다. 내가 … 그럼에도 저는 따뜻한 콩국 한 그릇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민주노총뿐만이 아니다. 이 땅의 양심은 김진숙 함께 “따뜻한 콩국 한 그릇” 먹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날이 죽음의 조선소가 삶의 일터로 거듭 태어날 날이다.

김진숙의 꿈에 나도 동참을 한다. 그리고 편지를 띄운다.

“진숙이 누님, 저도 함께 콩국 먹을 날 예약입니다.”


[100129보도]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 '단식17일'에 부쳐

단식을 중단할 수 없는 해고노동자의 이유

김진숙 한진중공업 해고자 ‘단식 17일’에 부쳐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의 단식이 오늘로 17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26일 이후에는 급격한 건강상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난 1월 28일 한진중공업 1,000명의 조합원이 “우리들이 싸울 것입니다. 단식을 중단하고 함께 투쟁하자.”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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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조합원 동지 여러분’에게라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글을 통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저들은 여전히 30% 구조조정을 말하고 희망퇴직, 단협개악을 말하고 있습니다.”며 “그 결과들은 울산 다대포 율도의 폐쇄와 급기야는 영도의 폐쇄 내지는 축소 플랜트 사업 등으로의 업종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조합원의 염려와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단식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한 16일 동안 정문과 신관 사이를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승리하는 날까지 이 자리를 지키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도 1월 28일부터 한진중공업 앞 무기한 천막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진중공업 문제를 지역의제로 더욱 확대하고 투쟁과 실천을 조직할 예정입니다.

붙임 : 김진숙 지도위원의 자필 글


[레디앙] "눈물이 흘러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투고] "김진숙 단식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한 길은 투쟁 승리뿐"

한진중공업 신관 앞, 금속 부산양산지부 천막 옆 모퉁이에 조그마한 텐트 하나가 처져 있습니다. 텐트 안에는 나이 50이 넘은 한 여성동지가 "무차별 짤려나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고자"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19일째(1월 31일 현재) 하고 있습니다.

1981년에 21살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용접공으로 입사해 조선소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동지, 용접 맨을 눌려 쓰고 일에 열중해 있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 못할 정도로 일 밖에 몰랐던 동지, 억센 조선소 남성 노동자들 사이에 홍일점 이었던 동지는 평범한 조선소 여성노동자였습니다.

짓궂은 아저씨들은 진숙이가 여자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들만이 나누는 언행들을 무작정 주고 받습니다. 요즘 같으면 바로 성희롱으로 구속감인데 말입니다. 이런 짓궂은 아저씨들은 어느 날 갑자기 “진숙이가 대의원 한번 출마 해 봐라. 우리가 팍팍 밀어줄게” 순진하게도 늙은 아저씨들 말만 믿고 대의원에 출마했는데 당선이 된 것입니다.

그 후로 23년 동안 한진중공업 민주노조 역사를 등에 업고 살아온 동지가 바로 김진숙입니다. 의리도 자존심도 없는 사내들처럼 어용위원장 밑에서 줄만 서 있어서도 지금쯤은 좋은 데 시집가서 화목하게 평범한 주부가 되어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동지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조합원들의 피와 땀인 조합비를 눈 먼 돈인 양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내놈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간부자리를 벼슬로 생각하는 사내놈들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와 짝짜쿵이 되어 바른말하는 조합원들의 말을 막는 사내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을 그들의 놀이터로 생각하는 사내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조합비를 갈취하고자 멀쩡하게 살아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두 번이 나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 딸도 죽었다고 상조관계 서류를 조작했던 사내놈들을 그냥 볼 수가 없었습니다.

위원장 한번하고 나면 전셋집에서 연립주택 주인이 되어 있는 모습을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정기총회를 영도에서 가장 잘 나 가는 목장원 소고기 집에서 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영도경찰서장, 영도구청장, 영도 유지들과 함께 술자리 회의를 하는 어용위원장의 반 노동자적 행동을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어용 사내놈들 그냥 볼 수 없었던 김진숙

노무과 대신 조합원을 관리를 해주고 있는 사내들을 그냥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그냥 못 본 척했으면 이 곳에서 텐트를 치고 단식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김진숙 동지는 그들의 행위들을 그냥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폭로했습니다. 어용노조 사내들의 비리를 폭로했습니다. 그래서 무진장 두들겨 맞았습니다. 노동조합이 회사와 한통속이 되어 연약한 여성 노동자를 두들겨 팼습니다.

이번에는 안기부, 보안대, 시경정보과도 한패가 되어 동지를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김진숙 동지를 빨갱이로 알았습니다. 군대 갔다 복직하는 날 안전과 강의실에서 “김진숙이는 빨갱이다”라는 교육도 받았습니다. “사내놈들이 거시기 차고 저 빨갱이 여자에게 물들면 등신”이라고 하는 강사의 말씀을 듣고 나면 김진숙은 완전히 빨갱이가 되어 있습니다. 소위 고정간첩이 되어 있었습니다.

19일 전 단식에 들어가기 전만 하더라도 김진숙 동지는 노동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교육하는 이름난 노동운동의 강사로 알려져 있었지요. 23년 시절에 한진중공업의 늙은 노동자들과 짓궂은 사내들이 나누었던 언행, 어용노조 간부들의 행동들은 김진숙 동지를 통해 투쟁현장에서, 집회현장에서, 노동교육현장에서, 노조간부 수련회장에서 80년대 조선소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필수 교육자료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김진숙 동지의 목소리도 작은 텐트 속에 묻혀 있습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단식 13일째까지만 하더라도 출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출근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어나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빠져 있습니다. 물도 먹기 힘들 정도입니다.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와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만 할 뿐입니다. 함께 동조 단식이라도 하고 싶지만 한진중공업 지회가 '정리해고 철회'라는 큰 투쟁을 하고 있기에 지회 방침과 다르게 행동하면 오히려 조합원들의 단결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라 어찌할 바를 정말 모르겠습니다.

함께 동조단식 하고픈 맘 굴뚝같습니다

김진숙 동지의 단식 11일이 되는 날 저의 큰딸 예슬이, 작은 아들 슬옹이 그리고 각시를 데리고 농성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각시는 저보다 김진숙 동지를 더 많이 사랑합니다. 항상 "진정성을 가지고 김지도위원을 사수하라"곤 합니다.

아이들은 아직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릴 때는 아빠 엄마가 가자고 하면 어떤 집회든지 마다하지 않고 다니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나서는 절대 따라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나마 작년 김해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촛불집회는 온 가족이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해 가족발언도 하곤 했지만 말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각시가 어떻게 설득했는지 김지도위원 단식농성장에는 순순히 따라 나서 섰습니다. “오늘 농성장 방문은 체험학습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김 지도위원이 올린 글속에 “한밤중에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티코 지나가는 소리를 체험해 가며 하루 밤을 지새우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과 다릅니다. 오토바이, 자동차 지축을 뒤 흔들며 달리는 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가 삐뚤어지게 잠만 잘 잡니다.

아침은 단식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 부산을 떨 수가 없어 컵라면으로 정리했습니다. 오랜만에 아들과 회사 생활관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습니다. 일요일이라 생활관 목욕탕은 우리들의 전용 목욕탕이 되었습니다. 아빠가 아들하고 목욕 가는 일이 가뭄에 콩나듯 하여 아들은 집에서 대충 샤워 정도만 했던 모양입니다. 때가 무진장 많이 나왔습니다.

목욕이 끝나자 아들은 실평수 15평의 한진중공업 사원 아파트의 10배가 넘는 넓은 생활관을 독차지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아빠가 불러도 아빠에 대한 관심은 뒷주머니에 넣어 둔 모양입니다. 아들은 완전히 '쌩깝니다'.

오후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님과 박문진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님이 텐트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볼 때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문진 동지는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꼭 집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단병호 위원장과 박문진 동지는 우선 단식을 하고 있는 김진숙 동지를 잠시 만나고 지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회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30여 분이 지나자 다시 천막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던 단병호 위원장이 단식에 대한 주의사항을 알려주면서 어떻게든 조합원들을 조직해 조합원들의 힘으로 투쟁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하고, 이런 힘을 바탕으로 김진숙 동지의 단식도 풀게 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김진숙 동지 단식을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 당부의 말씀을 제가 다 받아 안을 수 있을지.

김진숙 동지 단식 헛되지 않게 하는 법

김진숙 동지의 단식 농성장 텐트를 최대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다보니 체력이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밤에는 불이 켜져 있는지만 확인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밤 11시면 수면을 취하는 것이 단식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방문하는 동지들도 참고 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김진숙 동지는 조합원들 방문에 시간 개념을 두지 않습니다. 무조건 좋아합니다. 조합원들과 대화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말도 정말 많이 하고, 잘 합니다. 조합원 앞에서는 자동입니다.

단식 14일이 되는 날 아침에는 김진숙 동지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하청노동자와 원청노동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출근하는 동지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선동도 오늘따라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원청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김진숙 동지는 단식 14일째입니다. 원, 하청 노동자가 하나 되어 정리해고를 막아 냅시다”라는 선동의 내용이 영 힘이 없었습니다. 자꾸만 울분이 복바쳐, 선동 내용도 까먹었습니다.

김진숙 동지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금속부양지부, 한진중공업지회에 총비상이 걸렸습니다. 산별대표자를 소집하고, 금속지부 차원에서는 한진중공업 전직 위원장들도 소집했습니다. 시민대책위에 소속된 지도급들에게 전화를 해 대책 마련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입니다.

수동적인 운동 모습에 한편으로는 화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운동이 정말 수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체성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사전에 더 노력할 수 있었을 것인데. 문제가 생기면 움직이는 이런 모습, 정말 이런 것은 아닌데.

현장 몇몇 동지들에게 문자를 보내 지금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다소 긴박하다고 돌출 행동은 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최대한 지회가 중심에 서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다들 노력하자는 내용의 문자였습니다. 의사가 와서 건강 체크를 했습니다. 상태가 너무 안 좋다는 말입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절대 병원에 갈 사람이 아니기에 포도당을 맞을 사람도 아니기에. 오직 단식을 중단시킬 수 있는 길은 전체 조합원들이 단결된 힘으로 한진자본의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시키는 것이고. 조합원들의 투쟁을 만들어내기 위한 지도부들의 실천적 투쟁 없이는 어떠한 말도 김진숙 동지의 단식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이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한진중공업 늙은 노동자들은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 꼭 승리할 것입니다. 이글을 보는 동지들 단식농성장 방문도 필요하지만, 시민대책위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회사 앞 출근 선전전에 몸을 실어주십시오. 매일 아침 7시부터입니다.

* 이 글은 금속노조의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ilabor.org/)

2010년 02월 01일 (월) 17:00:22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edit@ilabo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