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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한 줌 재로 사라진 20년 복직의 희망

한 줌 재로 사라진 20년 복직의 희망

풍산금속 안강공장 노동자 2명
1989년 파업농성 벌이다 해고
2008년 민주화심의위 복직권고
사측 거부 상태서 화재로 숨져

경향신문 | 경주 | 박태우 기자 | 입력 2010.01.31 18:12
"명예회복을 위해 20년간 복직투쟁을 벌여왔는데…."

졸지에 남편을 잃은 이모씨(43)는 안강중앙병원 영안실에 놓인 남편의 영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정 많고 자상했습니다. 언젠가는 복직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이씨의 남편 정병구씨(46)는 동료인 권태근씨(45)와 함께 31일 새벽 경북 경주시 안강읍 주택가 컨테이너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화재 때문에 숨졌다. 두 사람은 1989년 풍산금속에서 해고당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전날 밤 늦게까지 동료들과 복직 등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진 뒤 잠을 자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가 난 컨테이너는 2년 전부터 풍산금속 안강공장 해고노동자협의회 사무실로 사용돼 왔다. 이들은 해고 이후 냉동탑차 운전, 선반 기능공 등 온갖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20년째 복직을 꿈꿔왔다.

이들의 쓰라린 과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사람은 89년 1월 풍산금속 안강공장에서 노조활동을 하던 중 회사 측과의 임단협이 결렬되자 파업농성을 벌였다. 당시 정부는 풍산금속이 군수업체라는 이유를 들어 파업 해산 과정에 군병력까지 투입했다. 회사 측은 "불법파업"이라며 25명에 대해 해고카드를 내밀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이들에겐 청천벽력이었다. 해고 당시 대의원이었던 정씨는 6년 전부터 모 우유업체 냉동 지입탑차 운행에 나섰다. 월 100여만원으로 부인과 2남1녀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부인 이씨도 식당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보탰다.

이날 함께 숨진 권씨는 병역특례로 입사했다가 정씨와 함께 해고됐다.

동료들에 따르면 회사 측은 해고된 권씨에게 병역의무를 마치면 복직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권씨는 이 말을 믿고 90년 현역에 입대해 92년 제대했으나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98년부터 중고 선반기 두 대를 구입해 생계를 이어갔고 부인은 화장품 외판원으로 나섰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언젠가 복직될 거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08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회사 측에 복직권고 결정을 내렸다. 보상심의위는 이들을 정권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에 항거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현장에서 10여년간 떨어져 업무능력이 떨어지고 동료들이 거부감을 느낀다"며 복직을 거부했다.

김택관 풍산금속해고자협의회 총무는 "두 사람 모두 정이 많고 정의감이 넘쳤다"며 "해고 이후 힘겹게 살면서도 복직으로 명예를 회복하려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경주 |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 >